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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15. 2015

군주의 자세 <군주론>

동양고전인 논어와 주역을 살펴봤으니 잠깐 서양 고전으로 넘어와보겠습니다. <군주론>은 15세기 말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마키아벨리가 16세기 초에 관직에서 축출당한 후 쓴 글입니다. 앞의 두 고전에 비해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이전 글에서 진정한 리더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한 김에 현실정치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군주론>도 한 번 꺼내보고 싶었습니다. 



 

쉽게 얻은 것은 보존하기 어렵다



갑자기 군주가 된 사람들은 그들의 무릎 위에  가져다준 운을 지키는 방법을 빨리 배울 자질을 가지고 있지 못하며, 그리고 다른 이들은 군주가 되기 전에 해두는 기초 작업을 자신은 군주가 된 후에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군주론 제7장>


주변의 도움이나 행운 등에 의해서 무언가를 얻는 것이 순수 노력에 의한 것보다는 수월할 것입니다. 문제는 얻은 것을 보존하는데서부터 시작됩니다. 혼자 걷는 것이 서툴어 엄마 손을 잡고 걷는  어린아이를 상상해봅시다. 손을 꼭 잡고 있는 한 절대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아이는 이제 혼자 두발로 서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에 한 번 걸어봅니다. 하지만 웬걸. 몇 걸음 가지 못해 이내 넘어지고 맙니다.


무언가를 얻을만한 그릇이 아닌데 얻게 된다면 이  어린아이처럼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아무리 강한 바람이 불어도 그것을 이겨냅니다. 약하다면 이내 부러져 생명을 잃고 말겠지요. 꾸준히  갈고닦아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즉, 해야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만이 역량 있는 군주가 되는 지름길이자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갈고닦는 때를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시기라고도 합니다. 빛을 감추고 밖에 비치지 않도록 한 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다는 뜻이죠. 






악덕의 오명을 쓰더라도 두려워말라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방식과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방식 사이에는 많은 거리가 있다. 그러므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열중한 나머지 현실을 포기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멸시키는 것이다. <군주론 제15장>


<군주론>에서는 상상에 바탕한 견해보다 구체적인 실체를 따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에게 파멸당할  수밖에 없으니 군주는 악덕을 행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논리입니다. 선만을 추구하다가 자기의 지위가 위협받는 것보다는 악덕의 오명 쓰는 것이 낫다는 것이죠. 


이것을 제 나름대로 해석해보았습니다. 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에는 괴리가 존재합니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해야 하는 것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일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에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고 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그것만 밀고 나간다면 파멸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만약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정치인이 있다면 그는 오히려 사기꾼에 가까울 것입니다. 


소신을 갖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해야 하는 일에 대한 큰 슬로건을 내미는 것보다 힘든 일입니다. 악덕한 리더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난세에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문제의 본질을 고치려 하는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소수의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되 뜻을 분명히 하라



좋은 조언은 그것이 어디에서 오든 간에 군주의 깊은 지혜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현명한 조언에서 군주의 신중함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군주론 23장>


즉, 군주가 현명하지 못하면 신하가 아무리 좋은 조언을 하더라도 무용지물이라는 뜻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군주는 충언을 잘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조언을 어떻게 조화시킬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조언자들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지도 못한 채 국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현명한 군주는 이미 자신의 뜻이 뚜렷하기 때문에 충언을 충언으로서만 받아들일 뿐 결정은 군주 자신이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충고를 구하지 않거나 그렇다고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지 않는 군주는 우유부단하다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말하면 군주에 대한 존경심이 떨어지게 되니 소수에게만 그것을 허락하고 자신의 뜻은 분명히 하여 중도를 따르라는 것이 마키아벨리의 처방입니다.  







 # 짧게 알아보는 시대적 배경  


15세기경 이탈리아 반도는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그리고 교황청이 서로 견제하며 세력균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는 여러 전쟁들이 일어났지만 1454년 로디평화조약으로 이탈리아 반도에는 평화가 오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평화가 있으면 그것을 깨는 세력이 꼭 나타나기 마련이죠. 당시에는 피렌체, 밀라노, 베네치아가 협력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피렌체가 밀라노와 대립관계에 있었던 나폴리를 지지합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밀라노가 프랑스에 원조 요청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후에 화를 자초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당시 마키아벨리가 있던 피렌체에서는 사보나롤라가 프랑스의 지원을 받아 메디치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합니다. 하지만 이 정권은 시민들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호응을 받지 못해 4년 만에 붕괴하게 됩니다. 이런 불안정한 정세에 프랑스와의 동맹이 계속되다 보니 정치적 독립성을 상실해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중부 러시아에는 체사레 보르자라는 새로운 인물이 피렌체의 위협적 세력으로 등장하는 등 여러 곳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죠. 


1502년 곤팔로니에레(최고 실권을 가진 자)가 된 소데리니의 신임을 받은 마키아벨리는 외교사절단의 일원으로 활발한 활동하게 됩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1512년 소데리니 정권이 몰락하고 메디치가가 복귀합니다. 소데리니 정권에서 외교관으로 활약했던 마키아벨리는 반 메디치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 생활하다 특사로 겨우 풀려나게 되죠. 이후 피렌체의 작은 근교 시골 농장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합니다. 바로 이 힘들고 외로운 시기에 현대까지 회자되는 고전 <군주론>이 탄생하게 됩니다. 


<군주론>은 마키아벨리가 메디치가에 바치는 이력서입니다. 그래서 책의 모두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저도 충성의 징표를 가지고 전하를 뵙고자 하였습니다만, 제가 갖고 있는 것이라고는 근래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오랜 경험과 위인의 행적에 대한 지식 외에는 별로 소중히 여기거나 존중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신중하게 검토한 지식을 여기 이 작은 책으로 엮어 전하께 바치고자 하는 바입니다....







<군주론>은 읽다보면 불편함을 느끼게됩니다. 착한 행위만이 착하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과 마주하는 것 자체가 원래 불편한 것이겠지요. 그 불편함이 반성적 성찰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 고전이 지금도 많이 읽히는 것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인간 행위의 방식이 시대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고전이 고전인 이유는 시대의 흐름에 의미가 희석되지 않고 여전히 울림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15. 12. 15



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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