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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 Dec 18. 2015

연말의 상념

시간은 강물과 같다



#1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부터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자고 있는 동안 온 알림을 보는 것이 하루의 첫 시작이다. 한국과는 시차가 6시간이니 자기 전에 보내 놓은 카톡이나 메일의 답장이 와있다. 핸드폰과 충전잭을 분리하고 일단 다시 눕는다. 얼굴 반쪽은 베개에 파묻고 다른 쪽 눈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알림을 확인한다. 다 확인을 했으면 이제 자연스레 페이스북을 킨다. 뉴스피드를 내리면서 이것저것 읽어보다 괜찮은 것이 있으면 이불 밖으로 나와 공책에 메모하기도 한다. 


오늘 아침에도 그렇게 페이스북을 켰다. 그런데 이런 문구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나의 한 해 돌아보기' 


페이스북은 연말이 되면 그 해 올린 사진들 중 몇 장을 골라 모아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작년에는 영상으로 만들어줬었는데 올해는 사진을 쭉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2015년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니 이제 한 해가 진짜 끝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빨리 지나간 것 같았지만 사진을 하나하나 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그래서 눈 깜짝할새 지나갔다고 말하는 동시에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고 표현하나 보다. 





#2


매년 연말이 되면 자주 가는 카페에 가서 한 해를 돌아보는 글을 쓴다. 쓰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반성해본다. 내가 그때 날카로운 직언을 해서 상처를 줬던 건 아닌가 라던지 진실되지 못하게 대했던 건 아닌가 따위의 생각을 해보는 거다. 내 기억에서 이미 지워진 실수들도 어떻게든 꺼내보고 싶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던 다툼에도 내 잘못은 분명히 있을 테니까.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추억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원래부터 좋은 일이건 시간이 지나며 미화가 된 일이건 중요치 않다. 힘들었던 일도 나중엔 결국 추억이 되기 마련이다. 나는 추억에  빠져들기보다는 문을 살짝 열어서 엿보길 좋아한다.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고 문을 열어보지 않으면 인생의 한 편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타협을 본 것이 엿보기이다. 문 밖의 세상이 눈보라 치는 시베리아라면 그 안은 이불속처럼 따뜻하고 평온하다. 


고마운 사람들도 생각해본다. 고마움을 잘 표현하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는 이유는 주변 사람들의 끊임없는 도움 때문이란 것을 잘 알고 있다. 본래 자기가 베푼 것만 기억하고 받은 건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게 인간이라 이렇게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고 말 것이다. 


또 새해 다짐을 해본다. 나는 학점이나 자격증 등의 정량적인 것을 기준으로 하는 다짐보다는 내면적 성장에 더 무게를 두는 편이다. 끈기가 부족하니 시작한 일을 무조건 끝까지 해보자거나 말을 좀 더 아껴서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자는 종류의 다짐들 말이다. 꼭 숫자로 결과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도 1년 후에 어느 정도 발전했는지는 스스로 느낄 수 있다. 숫자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현실도피이지만 이런 인격수양적인 것들을  갈고닦다 보면 그것은 따라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연말에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두 가지 일을 한다. 


한 해를 돌아보는 것. 


그리고 새해를 위한 다짐을 해보는 것







#3


1년 전을 돌아보면 바뀐 것도 많지만 고치지 못한 것들도 많다. 또 목표가 있었는데 달성하지 못한 경우도 허다하다.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이건 왜 안 고쳐지는 걸까', '저건 왜 달성하지 못한 걸까'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1년 안에 남들은 저만치 멀리 갔는데 여기까지밖에 오지 못한 나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1년이란 시간이 진짜 존재할까? 1년이란 건 지구의 공전 주기일 뿐 우리에게 시간은 흐르고 있는 강과 같다. 강을 상류와 하류로 나눌 수 있겠지만 그것은 지속되는 흐름을 인위적으로 분류해놓은 것일 뿐이다. 시간도 그런 흐름인 것이다. 시간을 임의로 멈출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단위로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시간은 지속적이고 끊김 없이 나아간다.


한 해를 돌아보는 것은 시간을 우리 인생으로 해석한 것이다. 하지만 새해에 했던 다짐이나 세워놨던 목표에 얽매이는 것은 우리 인생을 시간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해석될 수 없다. 단지 다른 것들만이 우리 인생으로 해석될 수 있다.






Plitvice Lakes, Croatia








2015.12.18



글_사진_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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