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꿈이 뭐야?"
어려서부터 귀가 닳도록 들은 질문이다. 보통 이런 류의 질문은 길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보다는 짧고 명료한 답변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질문은 모호한데 간결한 답변을 원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보통은 허허 웃으면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넘어간다. 지루한 이야기가 길어지면 듣는 사람이 힘들기 마련이니까.
'전 000가 되고 싶어요'식의 답변은 알맹이가 없어 보인다. 특정 직업을 가지는 것이 목표는 될 수 있지만 그것은 달성되면 다음 목표를 세워야 하는 소멸적인 것이다. 인생 전체를 관통할만한 답변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런 큰 틀에서 대답하자니 구체적이지 못한데다 초점이 흐려질 것 같다. 그래서 꿈에 관한 질문에 대답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예전에는 그런 질문에 대기업에 들어가거나 전공을 살려 일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했었다. 그것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든 아니든 듣는 사람이 끄덕이고 넘어갈 만한 답을 하고 싶었다. 좋은 글을 쓰고 싶다거나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내는 것이 꿈이라고 하면 현실적이지 못하고 추상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꿈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지만 평가하는 사람은 늘 있다.
나도 친구에게 꿈이 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몇 년 전 겨울에 부산에 갔었어. 골목을 걷고 있었는데 길에 그림들이 쭉 놓여 있더라고. 근처 카페 사장님의 그림이었는데 골목길에 전시 중이었던 거야. 그림이 마음에 들더라고. 내가 감성 감성 한걸 좋아하는데 딱 그런 그림이었어. 쭉 보면서 따라가다 자연스럽게 카페로 들어갔지. 거기서 우연히 사장님이 쓰신 책을 읽었어. 수필과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이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야. 내가 책을 돈 주고 사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어."
"그때부터 그림이 그리고 싶어 졌는데 일단 배워야 할 거 아냐? 그래서 알바했던 돈으로 미술학원을 등록했지. 그리다 보니까 내 생각이 그림에 스며들더라고. 내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 그림이 된 거야. 내 꿈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단 내 생각을 그림에 더 잘 표현하는 거야. 좋은 그림이란 생각이 잘 표현된 그림이니까."
그 친구는 그림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미술학원을 등록했던 건 수년전 이야기였고 지금은 다른 것들 때문에 붓을 놓은지 꽤 되었다고 했다. 물론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마음속 구석진 곳에 꽁꽁 숨겨둔 담아둔 작은 꿈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뜬구름 잡는다거나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각박한 세상에 분홍빛 야들야들한 꿈은 차가운 시선을 받기 마련이니까.
친구의 이야기처럼 사소한 사건에서 피어난 끌림이 꿈과 연결될 수 있다. 이 끌림은 일상에서 뜬금없이 일어난다. 생각 없이 길을 걷다가도, 버스에서 창 밖을 바라보다가도 혹은 음악을 듣다가도 무언가에 끌릴 수 있다. 우리가 마음속에 숨겨 놓은 꿈은 이런 끌림에서 태어난 꽃이다.
꽃은 관념적인 것이다. 장미꽃이나 할미꽃은 그릴 수 있으나 꽃은 그릴 수 없다. 그저 우리 관념 속에 존재하는 추상적인 것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꽃은 꿈과 닮았다. 실체가 없고 관념적이나 아름답고 숭고하다. 마음속에서 핀 꽃은 한 번 피어나면 좀처럼 시들지 않는다. 시들었다고 생각하면 살아나고 또 살아난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보면 이 꽃의 존재를 잊기 마련이다.
바로 그때 이 마음속의 꽃은 죽고 다시 피어나지 못한다.
나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리 현실에 치여도 그걸 놓지 않고 계속 마음에 담아 둬야 해. 그 작지만 소중한 꿈을 잊는 순간 조금 남아있던 분홍빛마저 사라지고 남는 건 회색 현실일 뿐일 테니까"
2015.12.30
김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