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준 Jan 06. 2016

끝의 미학

모든 것은 끝나기에 아름답다.



#1



무언가가 끝날 때가 되면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신나는 일이었건 고난의 과정이었건 그 매듭의 끝에 서면 기쁨, 슬픔, 아쉬움, 기대감 등 한가닥으로 모이기 힘든 감정이 내면에 가득 찬다. 시작과 끝 그리고 끝과 시작의 반복은 요람부터 무덤까지 계속된다.



예를 들어보자. 여행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집으로 돌아오면 당장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 그래서 귀국 비행기를 타기 전에는 '아 현실로 돌아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은 비교적 시작과 끝이 짧은 일에 속한다. 반면 가족이나 친구 등 인간관계는 여행에 비해 시작과 끝의 길이가 길다. 가족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되는 인연이고 죽마고우도 어린 시절부터 추억을 함께 하는 친구를 의미하니 그 길이를 가늠하기 조차 힘들다.



이런 짧기도 하고 때론 길기도 한 시작과 끝의 반복이 인생 전체에 고루 흩어져있다.







#2


여행지에 도착한 순간 밀려오는 벅참에 하루하루를 소중히 보냈다. 짧은 여행이니 만큼 일정도 빡빡하게 짰다. 조금이라도 더 보고 싶었으니까. 남는 게 사진이라면서 여행을 위해 구매한 카메라로 가는  곳마다 열심히 찍었다. 나를 피사체로 한 사진은 물론이고 풍경까지. 나중에 돌아와서 그 여행지를 추억하며 사진을 돌려 봤다. 참 아름다운 추억이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약 끝없는 여행이었다면 과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을까?



내가 운명에 의해 우리 아빠와 엄마의 아들로 태어난 순간 나는 가족의 일원이 되었다. 대화를 몇 번 하다가 잘 맞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누군가의 친구가 되었다. 또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 나를 좋아한 순간 서로의 애인이 되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인생 어느 시점에서 시작된다. 가장 먼저 가족이란 관계가 시작되고 이후로 친구 혹은 애인으로 관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인간관계는 이렇게 인생의 길에 켜켜이 쌓여간다. 하지만 이 관계는 언젠간 끝이 난다.



만약 끝이 없다면 이 관계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을까?








친구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여자친구가 해외에 있는데 내가 거기 걔 보러 다녀왔거든. 같이 놀 때 정말 좋았는데 시간이 금방 가버려서 너무 아쉬워.."




"그것도 끝이 있으니까 좋았던 거야. 그런 달콤함이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해봐. 그때 느꼈던 것 만큼 좋을까?"






#3




인생에는 참 좋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아무리 힘든 시기여도 그 빽빽함 속에 즐거운 틈이 있기 마련이다. 곰돌이 푸가 말한  것처럼 매일 행복할 수 없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다. 이런 일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그 좋은 일들이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면 그 달콤함을 같은 당도로 맛볼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것은 가까이 있건 멀리 있건 끝이라는 놈이 오기 때문에 즐겁고 행복하고 그 순간이 달콤한 것이다.




모든 것은 끝이 있기에 아름답고 소중하다.













요즘은 짧은 대화에서도 글감을 찾게 됩니다. 스쳐가는 대화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되네요.



2015.01.06



글_김준


매거진의 이전글 비전을 공유한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