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편입 준비해'
갑작스런 친구의 편입 통보에 오던 잠이 달아났다. 노어노문과에 다니던 친구라 내가 가끔 러시아어 숙제도 도와줬었지만 그날 왔던 연락은 꽤나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잘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갑자기 편입을 하겠다니. 듣자마자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 결정했으니 열심히해' 따위의 말은 나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해주었을테니.
자신의 편입 계획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때가 6월 쯤이었으니 준비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게 첫번째 문제였다. 반 학기만에 많은량의 공부를 해야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친구의 희망 학과에 있었다. 공대로 편입을 하고 싶다는 거였다. 그때 감이 왔다. 주변의 반대와 동기들의 차가운 시선에 밀리고 밀려 내 번호까지 찾게되었을거란게. 어문학과 학생이 공대로의 편입을 원한다니. 그것도 6개월 미만의 시간 안에
#2
그 친구의 계획에 대해 듣는 동안 나는 무슨 말을 해줘야할지 생각했다. 나는 일단 도전하는 것은 늘 유의미한 것이라며 편입 준비를 해보는게 좋겠다고 했다. 어쨌거나 해본 것보다 안해본 것이 나중에 후회되는 것은 사실이니까. 불안했던 건 오히려 도전이 어려워보여서라기 보다 그 친구의 굳은 결심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주변의 반대와 날카로운 시선이 박혀있는데 아직 그 끄나풀을 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 희망이긴 했으나 여전히 굳은 결심이 필요해보였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준비를 어떻게 하면 좋겠다는 조언 아닌 조언과 함께 진심이 담긴 응원을 해줬다. 그 응원에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넌 할 수 있어.'
#3
그 이후로 그 친구와 했던 이야기는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졌고 전화를 했었던 것 조차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렀고 겨울이 찾아왔다.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날이었다. 그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합격 소식이었다. 지원한 곳 중에서 두군데나 붙었다는 것이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성공 일화가 내 주변에서 벌어지다니 정말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합격보다 더 놀라운 게 있었다. 그건 그 친구의 다음 말이었다.
이 말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때 나한테 될거라고 말해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4
응원의 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됐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내 한 마디 말이 그렇게나 따뜻해서 다른 모든 차가운 말들을 녹여버린 경험이.
사람들은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에게 꼭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거란 것보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힘들 때 이렇게 말 한마디라도 따스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글_김준
스치는 생각을 써요 #스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