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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웨터필름 Nov 28. 2022

투명한 우산의 낭만


투명한 우산은 창문을 닮았다. 어두운 곳을 싫어하니 비 오는 날에는 빛 들일 창문 하나 쥐고 밖을 나선다. 방 안에서 나가도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의 모양을 계속 볼 수 있다. 오늘 투명한 우산의 낭만은 잠깐. 빗살이 거세져 바지 자락을 다 적시고, 바람은 웃옷 자락을 자꾸 들춘다. 기사에서 봤던 '가을장마' 두 단어 같은 한 단어, 여름 끝자락에 아직 낯선 단어가 떠오른다.


바람은 오늘 힘이 세다. 우산살을 꺾어 우산을 뒤집는다. 우산살을 되돌려보지만 우산은 이미 제 모양을 잃었다. 한 번이라도 뒤집힌 우산은 늘 볼품없이 휘어진다. 그래도 버리지 않는다. 어디를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접었다 편다. 몇 군데 볼 일을 보고 나니 우산살은 마침내 부러진다. 부러질 예정이었다는 듯 확실하게 동강 난다. 우산은 알고 있었다는 듯 나머지 부분을 멀쩡히 지켜냈다. 나만 몰랐던 결말처럼 당황스럽다. 그래도 우산을 버리지 않는다. 너덜거리지만 그리 창피하지 않다.


계속 쥐고 걷는다. 거짓말처럼 파랗게 맑아진 하늘에 아직 구름이 남은 탓이다. 새하얀 구름.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구름. 요즘은 마른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고 벼락이 내리친다. 오래 전부터 예보에 비가 없어도 우산을 챙겨 나가면 반드시 비가 내렸지만, 이제는 가늠하기 어렵다. 예보에 없어도 비는 내리고 우산을 사면 비는 금세 그쳐버린다. 예보도 소용 없고 우산도 소용 없는 날들. 언제 다시 비가 올지 몰라 부서져가는 우산만을 소중하게 접어 들고 다닌다.


어차피 젖은 김에 흠뻑 젖어버린 나는 축축한 바지를 입고 계속 돌아다닌다. 신촌에서 혜화로, 혜화에서 시청으로. 가깝다는 핑계를 들어, 가고 싶은 곳에 없던 볼 일을 만들어 돌아다닌다. 집에 가는 길, 하늘은 마침내 다시 흐리다. 비가 내린다. 실은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산살 부러진 우산을 편다. 모양은 엉망인 그러나 여전히 투명한 창문을 펼쳐 비를 피한다. 부서져가는 걸 아직 소중하게 쥐고 있어 편안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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