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불만이 많은 당신에게
동갑내기 친구와 10개월째 한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침에 뒤적뒤적 일어나면, 룸메이트는 이미 외출을 했고 나는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간다. 화장실엔 여기저기에 흩날려있는 룸메이트의 머리카락들이 있다. 짜증이 났었다. 대체 왜 이걸 치우지 않고 그냥 갔을까. '어질러 놓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정말 공감이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이곳저곳에 있는 머리카락을 보았다. 그런데 문득 이 머리카락이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봤다. 룸메이트는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머리를 말린다. 내가 자고 있기 때문이다. 곤히 자는 날 깨우지 않으려고 배려를 한 것이다. 밖에서 편하게 앉아서 머리를 말릴 수도 있었는데, 뿌예진 거울을 보며 힘들게 서서 머리를 말렸을 것이다. 이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배려의 결과였다. 배려가 이곳저곳에 묻어 있었다. 배려 한 가닥이란 생각을 하니 치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어제는 룸메이트와 같이 청소를 했어야 하지만 일이 있어서 먼저 외출을 했다. 밤에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왔는데, 룸메이트가 곰팡이 핀 벽을 다 닦고 바닥에 있는 먼지와 머리카락도 다 쓸어 놓았다. 전에 나 혼자 곰팡이 핀 벽을 닦을 때가 생각나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는 청소를 혼자 해야 하는 상황이 화나고 서러워서 악으로 계속해서 곰팡이를 닦아냈었다. 룸메이트는 혼자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에 대해 원망하진 않았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룸메이트에게 혼자 치우느라 고생이 많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룸메이트 입에서 나온 말은 나의 예상과는 너무 다른 것이었다. 닦아도 닦아도 끝나지 않는 곰팡이와, 쓸어도 쓸어도 계속 나오는 먼지와 머리카락을 보면서 자신의 '죄'와 같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뉘우치고 다짐해도 계속해서 짓게 되는 죄를 닦아내는 심정으로 청소를 했다고 했다. 어떻게 같은 청소를 하고도 이렇게 생각하는 게 다를 수 있을까.
어떤 분이 내게 마음 밭이 좋은 친구라고 말해주었던 게 생각이 난다. 같은 씨앗을 심어도 가시밭에 떨어지는 것과 잘 일구어진 밭에 뿌려진 것은 다르게 자란다. 사실 내 마음 밭은 돌이 가득했다. 비가 내려도 땅에 골고루 적셔지지 않는 영양분이 부족한 땅이었다. 똑같은 청소를 해도 혼자 하는 것으로 불만을 가지고, 배려를 해주어도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진정으로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옆에 있었다. 비가 오면 골고루 밭이 촉촉해지고, 그 안의 씨앗들은 좋은 영양분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난다. 혼자 힘들게 청소를 해도, 수많은 약속 때문에 잠잘 시간이 없어도 그 안에서 느끼는 기쁨과 감사로 행복해하는 친구였다.
좋은 마음 밭을 가진 친구 옆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 지 모르겠다. 함께 지낼 수 있는 날이 이제 얼마 남지는 않았지만, 남은 시간 동안이라도 옆에서 좋은 점을 보며 배우려고 한다. 친구의 마음 깊숙이 심어져 있는 긍정 에너지를 내 마음 밭에도 심어야겠다.
비가 투둑투둑 떨어지는 오늘 같은 날, 내 마음 밭에도 골고루 비가 내려 좋은 열매를 키워내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