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한 이에게
최근에 두번째 임용고사 시험을 치렀다. 시험 날짜에 가까워질수록 마음은 계속해서 요동을 쳤다. 원인 모를 두통이 하루에 두세 번씩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임용 준비생이라는 말에 의사는 스트레스성 두통이라고 확진을 했다. 그날 그날의 내 기분과는 상관없이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었다. 그동안의 삶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격려를 해주었고, 근근이 응원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대망의 시험 전 날. 그 날은 타인의 위로도 내게 닿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계속해서 개념들은 외워지지 않았고, 당장 내일이 시험이라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이런 상태로 시험을 칠 수 있을지 마음을 붙잡기가 너무 힘들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 자체로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힘든 마음을 괜찮은 표정으로 감추기도 싫고, 그렇다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유도 없을 때. 그 순간이 딱 그랬다. 하지만 마음을 위로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어떻게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위로를 하기로 했다. 개념을 끄적이던 연습장에 내게 해주고 싶은 말,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적기 시작했다.
안녕. 벌써 내년엔 스물다섯이구나. 어찌 보면 벌써 나이가 많이 들기도 했지. 지금까지 해 놓은 것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말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계와 나를 비교하면서 초조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은 정말 길~고 일 년, 이 년이란 시간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까 말이야. 시간에 쫓겨서 더 소중한 걸 잃지 말았으면 해.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 나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는 것'말이야. 잊지 마. 내가 하는 공부나 일의 성패와 상관없이 이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작년보단 올해를, 어제보단 오늘을 더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걸로도 이미 충분히 가치 있는 인생이 아닐까? 세상은 돈을 벌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할지 모르겠지만, 그것 하나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으면 해. 내가 아직 경제력이 없고, 누군가에게 내세울 직업이 없다고 해도 나의 가치는 동일하게 귀하고 나는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야.
힘을 내자. 고개를 들자. 어깨를 펴자.
오늘을 사랑하자. 나를 사랑하자.
죄책감 느끼지 말자. 넌 수고했어, 충분히.
웃어도 돼.
나에게 편지를 쓰면서 울컥했던 순간이 많았다. '넌 수고했어, 충분히'를 말할 땐 특히 그랬다. 도서관에서 이게 무슨 청승맞은 짓이냐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청승맞은 짓이 나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받는 위로의 효과는 위대했다. 듣고 싶었던 말을 할 기회를 남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가 스스로 잡았다. 그냥 기분이 좋아졌다. 누군가를 위로했다는 따뜻함과 누군가에게 위로받았다는 따뜻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다른 사람이 붙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이 무너져 가고, 그 모습을 내가 발견했을 때. 우리는 위로해 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린다. 따뜻한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위로를 받고는 싶은데 아무도 만나기는 싫을 때, 따뜻한 음악마저 가식으로 느껴질 때, 내 마음을 아는 이가 없는 것 같은 때가 있다.
내 안엔 참 많은 '나'가 있다. '절망하는 나, 위로하는 나, 분노하는 나, 공감하는 나...' 내 기분은 내가 가장 잘 안다. 나의 모습을 하나 꺼내서 힘든 나에게 위로를 건네 보는 건 어떨까? 나를 가장 잘 아는 이가 해주는 위로에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