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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지 Oct 24. 2020

결혼하면 매일이 첫날밤 같을 줄 알았지

친한 언니에게 아이를 낳을 계획이 있냐고 물었다. 언니는 우스갯소리처럼 “야, 하늘을 자주 봐야 별을 따지.”라고 말하며 헛웃음을 쳤다. 당시 미혼이었던 나는 그 말에 다소 충격을 받았다. 

‘결혼한 지 2년밖에 안된 언니의 해탈한듯한 저 말투는 뭐지?’

집에 가는 내내 심각해진 나의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우리 부부는 결혼 전 5년간 장거리 연애를 했다. 그동안 H는 속초와 대전을 옮겨 다니며 직업 군인으로 복무했고, 우리는 거리가 멀어 한 달에 많아야 두 번 정도 데이트를 할 수 있었다. 가끔 보는 게 너무 아쉬워서, 어떨 땐 만나자마자 돌아갈 걱정부터 불쑥 들었다. 모든 게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H가 갓 임관하여 훈련소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그땐 부대 발령 전 교육을 받는 기간이므로, 규율이 엄격한 훈련소에서는 편히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주말에는 외박이 허용된다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나는 H가 외박 나오는 금요일 오후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외박이 통제되었다는 거다. 주말 한번 못 보는 건데 그때는 그게 정말 청천벽력 같았다. 통제라는 무시무시한 소식을 전해 들은 나는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나를 흘끔 쳐다봤지만 그런 건 안중에도 없었다. 그때의 나는 우리의 만남이 불발되었다는 슬픔만이 전부였다. (기억을 더듬어 다시 쓰고 있자니 지금과 너무 다른 낯선 내 모습….) 

그때는 카페에 가도 꼭 옆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몇 시간이 우습게 지나갔다. 

이따금씩 함께 보내는 밤이면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온몸의 감각으로 세세히 기억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상대방을 눈에 담았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 순간을 떠올리고 있으면 심장이 쿵쾅거리다 못해 가슴이 저려오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렇게 애틋한 장거리 연애로 대부분을 보내서 그런지 당시 언니가 했던 말은 내게 꽤나 강렬한 인상이었다. 나는 언니가 특수하고 불행한 상황에 놓였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결혼을 했다. 즐겁고 낯선 몇 달의 신혼을 보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신혼 초반의 새로운 환경과 처음 겪는 감정들은 서서히 일단락되었고, 우리는 안정된 생활 패턴을 찾아나갔다. 그 무렵, 나는 언니의 말이 그리 어마 무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어쩌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야기였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결혼 전에는 막연하게 결혼이 연애의 연장선상 같은 느낌일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의 밤은 일주일에 며칠이고 뜨거울 것 같았고, 매일 몇 번씩은 로맨틱한 키스를 나눌 것 같았다. 

물론 그런 날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날 것의 리얼한 삶이었다. 심미성보다 편리함과 실용성에 초점을 맞춘 속옷, 그리고 늘어난 티셔츠.(파자마도 여러 번 사봤지만 이상하게 늘어난 반팔 티가 제일 편했다.) 눕자마자 느껴지는 건조함에 기어코 창고를 뒤져 가습기를 꺼내야 하는 지랄 맞은 내 성미. 게다가 공과금 납부는 왜 꼭 침대에 누우면 그때 생각이 나는 건지. 

어떤 날엔 뽀뽀만 하려고 해도 웃음이 터져버렸다. 심지어 H는 개그 욕심에 취해 뽀뽀하려다 말고 방울뱀처럼 혀를 낼름거리며 내가 진저리를 치도록 만드는 데 꽂혀 있기도 했다. 그렇게 장난이 격해져 난투극을 벌이다 보면 누군가 한 명 침대에서 떨어져야만 끝이 났다. (로맨틱은 어디에….)

가아~끔, 어쩌다 한 번 드디어 방해 요소가 없는 날! 그런 날에는 누군가가 회사 일에 쩔어 장난칠 힘도 없이 뻗어버리거나 내가 생리통으로 된통 고생을 했다. 하, 순탄하게 잠자리에 드는 날이 참으로 드문 거다. 아니면 그 모든 걸 제쳐버리고 분위기를 잡는데 쏟을 열정이 한풀 꺾이는 걸 수도 있고. 아무튼, 우리의 결혼은 손꼽아 기다려온 연애 시절의 하룻밤과는 사뭇 달랐다. 


그래서 가끔은 그 시절의 우리가 그립기도 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저리고, 만날 날을 하루하루를 세어가며 기다리던 그 시절의 우리.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이 점점 줄어간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열정을 느끼는 일에는 체력이 필요하다고.’ 남 일인 줄만 알았던 이 구절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게 되는 날이 올 줄 꿈에도 몰랐다.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할 필요 없이 마음을 다할 수 있었던 시절에 서로를 뜨겁게 사랑해서 다행이었던 20대였다.


이제 우리는 카페에 가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진 않는다. 대신 같은 테이블에 앉아 각자 책을 읽거나 할 일을 한다. 코드와 기분이 잘 맞는 날엔 집에서 넷플릭스를 함께 보지만, 그렇지 않은 날엔 드러누워 서로에게 발만 틱 걸쳐놓고 각자 보고 싶었던 영상을 보기도 한다. (그럴 땐 둘 다 이어폰 끼는 게 기본이다.)

뜨거웠던 연애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확실한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나는 사실 지금 이 순간도 좋아한다. 연인 때보다 헤어짐을 훨씬 무겁게 생각해야 하는 묵직함이 좋고, 같이 돈 걱정을 하며 잘 살아보자고 머리를 맞대는 것도 좋다. 서로의 미래를 내 미래처럼 여기며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도, 서로가 무탈한 하루를 보내길 매일같이 빌어주는 것도 좋다. 

그러고보니 연애는 서로를 바라보는 거고, 결혼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라던 말은 사실이었다.


참, 지금 이 순간도 다 좋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제 H에게 똥침 놓는 짓은 그만해야겠다. 조금은 차분한 무드를 가져가야지. ‘just 플라토닉 러브’가 되는 건 원치 않으니까. 

오늘은 에로스야!!!!! 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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