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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Jan 24. 2018

계산대가 없어진 편의점, 아마존 고 리뷰

훔치지는 못할거다.왜냐하면 아마존 고는 당신이 무엇을 집었는지 알고 있다

계산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유쾌한 기분이 드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리고 그 줄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디자이너들은 문제를 인지해 왔었다. 1999년에 진행된 아이데오의 쇼핑카트 프로젝트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안전함, 쇼핑한 물건을 담기에 용이한 변경 가능성, 그리고 간편한 계산을 도와주는 카트를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불편함이었고, 아직까지 이것을 해결할만한 적절한 솔루션은 없어 보였다. 바로 어제 아마존 고가 오픈하기 전까지 말이다.


2016년 후반에 아마존 고는 아마존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오픈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베타 테스트 후에 2017년 초반에 대중들에게 문을 열 것으로 발표하였다. 하지만 시스템의 완전성 문제로 그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고, 기존 목표일보다 1년 늦어진 바로 어제, 2018년 1월 22일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문을 열었다.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에 가입할 필요도 없다. 필요한 건 단지 폰에 깔려있는 아마존 고 앱과 결재 가능한 신용카드 정보만 등록되어 있으면 된다.


아마존 고가 대단한 이유는 바로 모두가 원했지만, 누구도 기술적으로, 비용적으로 구현해내지 못한 것을 구현해 내었다는 데 있다. 또디지털 경험이 오프라인 경험을 얼마나 편리하게 서포트할 것인지에 대한 것도 꽤나 흥미로워 보였다.


그래서, 나는 저녁 9시까지 영업하는 아마존 고 스토어로 계란, 발사믹 식초, 치즈 가루, 케일, 바나나의 장 볼 리스트가 적힌 쪽지와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 아마존 고는 내 오피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나는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아마존 고, 다른 말로 하면 아마존고는 100개의 카메라가 소비자가 어떤 물건을 집는지에 대한 기술적 분석 대신에, 사용자가 직접 경험하는 디자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담겨 있었는지에 대해 중점적으로 알아보고 싶었다.


0. 아마존 고 앱

아마존  매장에서 쇼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앱이 필요하다. 그래서 금방 다운로드를 하여본다. 내가 받은 앱에 대한 첫인상은 "이게 출시된 앱이라고?"라는 느낌이었다. 첫 on boarding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을 때 나는 디자인 리뷰에 들어가서 Proof of concept 디자인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마 아마존은 제품의 완전보다는 Time to market을 더 중요시 여기나 보다 싶었다.

아마존 고 의 앱 on boarding



1. 아마 고 도착, 입장

아마존고는 이 최근에 완공한 새로운 아마존 본사 옆에 위치해 있다.
아마존 고의 매장 입구. 직원들이 쇼핑백을 나눠준다.
QR코드를 찍고 입장

다행히도 비가 와서 그런지 매장 앞에 줄이 길지는 않았다. 아마존 고에서 나갈 때는 계산대가 없어 줄이 없지만, 어제 오픈 첫날 많은 사람들의 방문 때문에, 들어갈 때 줄을 서야 한다는 단점으로 비판을 좀 받았었어서 걱정을 했었다. 들어서자마자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입구가 보이고, 거기에 내가 받은 앱에 있는 QR코드를 판독시켜 입장하는 형식이었다. 덤으로 쇼핑백도 같이 주었다. 여기에 물건을 담으면 인식하는 무언가가 있나 싶어 쇼핑백을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일반 쇼핑백과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쇼핑백의 밝은 주황색이 아마 카메라가 "어, 쇼핑백이다"라고 판독하는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싶었다.


2. 쇼핑

크기는 약 50평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대규모 마트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일반 우리가 흔히 보는 GS25보다 살짝 큰 정도이다.

50평 남짓의 매장 전경

파는 것들은 과자, 케첩, 아마존고에서 직접 만드는 샌드위치, 샐러드, 인스턴트식품 같은 것이 주류를 이루었다. 공통점을 찾아보자면 팩키징으로 쌓여 있는 것들만 찾을 수 있다. 위 사진을 보면 위에 검은 것들이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이는가? 이게 누가 무엇을 집었는지 볼 수 있는 카메라와 기타 장치들이다. 자세히 한번 더 봐보자.

천정에 숨겨져 있는 기술 집약체

종업원들에게 살짝 말을 걸어본다. "How's it going"으로 말을 붙여 이런저런 기술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세한 내막은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들이 말하기로는 선반의 위치와 물품과 천장에 달려있는 센서들의 위치가 정확하게 계산되어 있어 누가 무엇을 집었는지, 무엇을 놨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정확하게 계산이 되어서 매장 전체가 설계되어야 한다면 이 기술은 과연 대형매장으로 Scalable 할 것인가"

이제 매장 구경을 어느 정도 마치고 정신 차려 처음 가지고 왔던 장 볼 리스트를 다시 한번 들춰 본다.

 - 계란

 - 발사믹 식초

 - 치즈 가루

 - 케일

 - 바나나


이 중에 케일, 바나나는 팩키징에 쌓여 있지 않으므로 아마존고 스토어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발사믹 식초는 종류가 너무 적어 다른 곳에서 사야겠다 싶었다. 찾은 건 치즈가루와 계란인데, 다른 스토어보다 살짝 가격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암튼 뭐라도 사야겠다 싶어서 스토어를 보면서 물품들은 슬쩍슬쩍 바구니 안에 집어넣었다.

아마존 고에서 직접 만든 샌드위치들. 평균 가격은 8불 정도
여기서 아이스크림이 세일 한다길래 하나 집었다.
물건 리필
주류코너에는 아이디 검사를 하는 직원이 서 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과연 얼마 나의 에러를 잡아낼 수 있을 것인가. 기술이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나는 자세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내가 무슨 물건을 쇼핑백에 집어넣었는지 알고 그것에 따라 자동적으로 계산이 된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우리가 식료품 쇼핑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하는 것들을 한번 시도해 봤다.


 여러 물건 집었다가 쇼핑백에 넣지 않고 반복 하기

 쇼핑백에 넣지 않고 그냥 들고나가보기

 쇼핑백에 물건을 넣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제자리에 갔다 놓기

 쇼핑백에 물건을 넣고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아무 데나 놔두기


이런 상황들을 다 생각해서 만들어진 기술일 테지만, 시도해보고 싶었다. 여기서 뭔가 물건을 하나 훔쳐 나가보겠다는 신념 하나로. 그러나, 위에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정확하게 내가 가져간 물건들만 계산되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다 마신 콜라캔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새것과 바꿔치기했지만, 정확히 계산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결론은 시스템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3. 퇴장

쇼핑백에 담긴 물건들을 들고 그냥 나왔다. QR코드를 다시 찍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출구로 가면 개찰구가 열리고 그냥 나가면 된다. 앱에서 뭔가 알림이 바로 올 것 같았는데, 조용했다. 계산을 안 하고 그냥 나오니 물건을 훔친 느낌이 들어 약간 죄책감이 들었다. 그러다 약 5분에서 10분 정도가 흘렀을 때 앱에서 알림이 왔다. 아래와 같이 내가 들고 나온 물건들은 정확하게 계산은 완료되었다는 알림이였다. 편했다. 줄을 안 서도 된다는 장점. 그건 칭찬할만했다. 이제, 크리틱 타임이다.

내가 집어온 물건들

4. 총평

장점:

 - 계산대를 거치지 않아 편하다


단점:

 - 약간은 일반 마트에 비해 높은 가격

 - 다양하지 않은 상품들

 - 패키징이 없는 채소 같은 상품들은 없음


사실 아마존 고 앱은 아쉬운 부분도, 크리틱 할 것도 너무나 많은데, 건드리다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생략했다. 또한, 디자이너는 이 매장의 설계의 어떤 부분에 참여했는지도 궁금했지만, 매장 자체의 경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매장에서 찾을 수 있는 건 기술의 완성도이지, 디자인의 힘이 발현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었다.


만약 아마존 고가 집 앞에 있으면 자주 가겠는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겠다. 만약 내가 살 물건이 정확하게 아마존 고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살 물건의 개수가 많지 않고, 그 가격이 다른 마트만큼 이 된다면 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시나리오라면 가지 않을 것 같다. 다른 마트가 더 싸고, Self-checkout도 나름 괜찮기 때문이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싼 가격과 다양한 물건들을 볼 수 있는 편리함을 택할 것 같다.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마트에게 바라는 것은 질 좋은 상품들, 저렴한 가격이지 계산의 편리함이 고객을 끄는 주요 요소가 될 수는 없다. 물론 알고 있다. 아마존 고가 "이게 가능하다"라는 Proof of concept형식의 매장이고, 정식적으로 사람들의 삶 속에 깊숙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가 남아 있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과연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서 이 아마존 고가 다음 레벨로 도약했을 때는 꽤나 기대가 된다.


그래서, 남은 질문은 이 기술을 가지고 아마존이 세우고 있는 계획이다. 아마존은 홀푸드의 매장에 이 기술을 접목시킬 것인가? 아니면 다른 대형 마트들에게 이 기술을 팔 것인가?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계획은 없지만, 이 기술의 Scalability는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아마존고가 어제 오픈 후에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의 주가 상승 때문에 약 3조 정도를 벌었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계산원이 없는 편리함 때문에 필요 없는 것을 사지 말아야 하겠다.


extra)

만약 아마존 고에서 산 물건이 맘에 들지 않는다면 앱에서 버튼 하나로 환불할 수 있다. 더욱 놀라운 건 물건을 다시 매장으로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돈만 돌려받고 물건은 가져도 된다.

아마존고의 환불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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