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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Jan 28. 2016

퇴사일기

낭만을 위하여

                                                                                                                                                                                                                                                                                                                                                                                                                                                                                                                                                                                                                                                                                 



Q. 왜 그만뒀어요? 그래도 그 정도면...





"직장생활 6년 차 쯤 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사표를 내고 긴 여행을 떠나거나 직업을 바꾸거나, 백수가 되거나, 결혼을 하는 나이.
 애매하게 불안하고 불안해서 신경질적이고 터무니없이 자신에게 화가 나는 나이"
<곧 어른의 시간이 시작된다, 백영옥> p31






짐 정리하면서 한 컷.



사회생활 나이 6살.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 
회사생활 6년차와 20대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있던 나 역시 '애매하게 불안한'이었던 시간이 많았다.

나는 남의 말 잘듣는 어린 아이이자 어른이었다. 튀는 결정은 하지 못하고, '보편적'이라 말하는 것들을 믿었다.
시험범위 안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 한 번에 가고, 휴학없이 남들보다 조금은 '급한 듯' 쉼 없이 졸업하고, 취업해서 일 하기.
이것이 남들보다 빠른 길이고 '잘 되는' 길이라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이, 다른 어른들이 '어이구 잘했네.' 하는 것들을 믿었다.

바빴다. 돈도 벌었고. 그 돈 덕분에 여행도 많이 하고, 부모님에게 큰 부담 주지 않으면서 결혼도 했다.
명함의 회사 로고만 있으면 은행이든 해외에서든 친구들 앞에서든 초라해지지 않았다.
주변에 보물같이 좋은 사람들도 많이 생겼고, 일찍 취업한 덕분인지 어딜가도 막내여서 '막내 면제권'을 마음껏 누렸다. 

그런데 조금 정신 차려보니 내가 무얼 하고 있는 지 모르겠더라.
 
'너 뭐하고 살아?' 
라는 질문에. 글쎄, 내가 뭐하고 살더라.
새벽같이 출근하고, 출장도 가고, 회의도 하고, 사무실이며 핸드폰으로 오는 고객 전화도 받고.
근데 이상하게 뭘 해도 뿌듯함이 없는 시간.
'내가 과연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는가'와 '회사 경영진의 배를 불려주는 일을 하고 있는가' 사이에서의 고민.




신혼여행 직후에 팀이 바뀌었다. 연구원으로 입사해서 연구기획일을 하던 나에게 영업이라니.
회사에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연구소를 축소하고 없애는 과정에서 인력조정은 필수였을 테니까.
사회는 대부분 이런 식일 것이다.
나는 인사팀 보고서의 숫자였고, 그들의 실적이었다. '문제없이 한명을 이렇게 옮겼어요.' 이런 느낌.
회사에서 그동안의 내 경력과 앞으로의 계획까지 고려해서 결정해 주기엔, 여긴 사회다.

그래도 기회일 수 있으니 버텨내고 해보자. 이것저것 가리지 말고. 딱 6개월 만.
3분의 1일이 지방출장에, 갑질하는 거래처의 휴대폰 연락에 시달렸고, 삼촌 뻘 아저씨에게 성적 농담까지 듣고 있었다.
더 혼란스러웠다. 
'딱 육아휴직까지만 버텨보자. 끝내더라도 그 복지까지는 누려보자' 라는 생각을 하며 버텨냈다. 그 얼마나 달콤한 당근이니. 
그런데 더 큰일은 그 당근을 먹고 난 뒤였다. 
더 나이가 들고 아이 엄마가 되면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없을 껄. 가족이 최우선인 나는 아이에게 푹 빠져 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급해졌다. 
아이가 생기기 전 몇년만이라도 내가 꿈꾸던 일을 저질러보자! 
이 시간이 나에겐 골든타임-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하다 결정.
퇴사. 
그리고 새로운 곳에서 좀 더 내가 푹- 빠져서 할 수 있는 일을 다시 시작해보기.




퇴사하겠다고 하니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를 자극하는 말을 했다.
나 없는 자리에서 한 임원이 올해 안에 내가 그만둘 것 같다고 얘기 했으며,
동료는 내가 그렇게 정신력 약한 애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얘기했단다.
그러니 좀 더 버텨보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

순간 자극은 되었다. '어머, 저를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그런데 '버텨낸다'라는 건 내가 원하는 뭔가의 목표를 두고 하는 말이다.
목표 없이 버텨내는 건, 
내가 무너지고 있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버텨내는 건, 
의미없는 멘탈 자랑이다. 
이보다 수동적일 수는 없다.  





그래서 20대의 절반이 넘는 시간동안 있었던 삼성을 퇴사했다.
삼성 로고가 박힌 명함이 아니라, 진짜 내 '업'을 담은 명함을 만들어야지.

매월 21일마다 맞았던 마약같은 월급이 아쉬울 때가 올테고,
매일같이 보던 사람들에게 잊혀질 거라는 불안감,
내 선택이 과연 100% 옳을 것이냐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퇴사 후 2달반이 지난 지금. 
좀 더 고민이 많아졌지만, 온전히 나의 것이기에 담담히 해결해나가고 있으며
그 어느 때 보다 행복해 :)





리더는 자기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새로운 길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새로운 미래를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새로운 세상이 존재하는구나. 그것이 가능하겠구나' 생각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나의 리더이고 스승입니다.
<사생활의 천재들, 정혜윤> p.258


이런 리더를 많이 만나야지. 그리고 이런 리더가 되어야지. 


사원증 안녕. 법인카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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