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햄릿'이 트렌드를 입다
서울시극단의 신작 <함익>은 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기념해 고전 <햄릿>을 모티브로 쓰인 창작극이다. 연극계에서 각광받는 김은성 작가와 서울시극단의 색을 차곡차곡 구축하고 있는 김광보 연출의 만남으로 시작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작품이기도 하다. 그간 수많은 <햄릿>이 다양한 변주로 무대에 올랐지만, <함익>은 '여자 햄릿'이라는 지점을 새롭게 제시했다. 즉, 서사의 중점에 선 주인공 햄릿의 성별이 여자라는 것이다. 여자로 뒤바뀐 햄릿의 전개는 어떻게 될까? 어떤 시각으로 드라마를 바라볼까? 게다가 김은성이 쓰는 햄릿이라니. 많은 기대와 궁금증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차적인 성별 도치
결과적으로 <함익>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여성을 위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함익'이란 이름의 여자 주인공이 원작 <햄릿>의 모티브를 받았으나, 나머지 설정과 관계는 원작의 결을 따라간다. 시대는 동시대로 변환했다. 왕가는 재벌가로 바뀌었고, 함익은 부와 권력 속에 고독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버지와 계모를 설정해 치정 살인에 얽힌 주변 관계도 어느 정도 그대로 반영했다. 그러다 보니 이 작품의 변주는 단순히 1차적인 성별 도치에 머문다. 여자가 된 '함익'의 시선에서 드라마가 전개되지만, 결국 모든 것이 원작의 골격 안에 있다. 결국 '함익'이 여자가 된 이유가 모호해진다. 한마디로 '함익'에 남자를 대입해도 이 작품은 무리 없이 흘러간다는 것이다.
재벌가 딸이자 대학 교수인 함익은 집안이 정해준 대로 사랑 없는 결혼을 한다. 겉으로는 차갑고 강해 보이지만 현실과 이상의 자아를 분리시킬 만큼 그 누구보다 고독하고 심리적으로 연약한 존재다. 그러다 학교 연극반 학생인 연우를 만나고, 그의 열정과 패기에 마음이 움직이고 흔들린다. 연극반 학생들에게 <햄릿>을 지도하면서 함익은 작품 속에 자신을 이입시킨다. 아버지를 향한 복수의 마음과 사랑 앞에서의 고독한 갈등이 현실과 이상 속에서 그녀를 괴롭힌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결국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임을 되뇌며 복수의 칼날을 갈던 함익의 선택은 원작의 메타포를 따라가며 끝난다.
트렌드의 총집합
이 작품은 유려한 텍스트와 말끔한 연출에 힘입어 100분간 막힘없이 흘러간다. 지루할 틈 없이 매끄럽게 타고 들어가는 전개에는 김은성 작가의 필력이 한몫한다. 그는 텍스트가 주는 운율, 화음, 리듬감을 아는 작가다. 한마디로 말발 좋은 대사를 잘 살리는 작가다. 특히 동시대적인 말을 빠르고 재치 있게 받아치는 실력이 상당히 좋다.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나 그 재미에 빨려 들어갔다. 극 중 극으로 표현된 논리 정연한 햄릿의 해설에도 설득당했다.
하지만 함익, 그녀가 하는 말이고 그녀가 하는 행동이기에 공연을 보고 나서 아쉬움이 들었다. 그녀의 복수에는 햄릿과 다른 시선이 있길 바랐지만, 결국 햄릿이 어머니를 보는 것과 함익이 아버지를 보는 것은 평행선에 놓여 있었다. 과연 같을까? 더 아쉬운 건 그녀의 사랑이다. 오히려 사랑이 복수보다 더 메인 플롯의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게 너무도 트렌디 드라마의 한 장면 같다. 함익은 똑똑한 유학파 교수이고 누구보다 자기를 사랑하는 여자이다. (자아를 둘로 나눈 다는 설정은 심적으로 약하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남 앞에서 자기 자신이 무너지길 원치 않는 자아애가 강한 사람이란 해석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 함익이 연우에게 끌리는 지점이 꽤나 단순하다. 연우의 연극적 열정과 통찰력이 밑바탕으로 있지만, 두 사람의 감정이 고조되는 접점은 백마 탄 왕자 같은 타이밍으로 발현된다. 오히려 남자가 여자에게 끌리는 과정일 때 자연스러울 수 있는 설정이다. 함익과 같은 여자라면 다른 이유로 사랑에 빠지지 않을까? 정말 섬세하게 마음이 닿는 사람, 모든 긴장을 놓아버리게 만드는 편안한 사람... 그런 이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극 중, 햄릿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햄릿의 극단적인 선택과 행동에는 분명 그가 가진 고뇌와 까닭이 있다'는 식의 대사가 나온다. 맞다. 납득하기 어려운 햄릿의 행동에 타당한 이유를 들어주는 건 결국 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달렸다. 하지만 '함익'이 여자였던 이유에 대해서는 극 안에서 더 보여줬어야 했다. 그녀가 비극의 주인공인 이유도, '햄릿'이 아닌 '함익'의 비극이 필요했다고 본다.
냉소적이고 시니컬한 풍자
앞서 아쉬운 점도 있었지만, <함익>은 분명 재미있는 작품이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풍자와 <햄릿>을 중심으로 펼치는 연극적 해석도 또렷하고 힘 있게 박혀있다. 캐릭터의 해석과 연기 방식도 극에 힘을 실어준다. 다소 관조적이고 차갑게 그려낸 함익은 마치 무기력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대변하는 것 같았고, 이와 반대로 열정적이고 천진한 연우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 속 이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뚜렷하게 대비됐다. 함익의 내적 자아를 드러내는 거울 씬 역시 효과적으로 자리 잡는다. 분리되기도 하고 일체 되기도 하는 함익의 분신은 실제 함익과 닮지 않은 모습인데, 아마도 그녀가 일탈하고 싶은 이상의 모습에 더 가깝기 때문인 것 같다.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을 듯한데... 그 또한 재미일 터)
김광보 연출이 단장이 된 이후, 서울시극단의 작품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 하나는 조화로움이다. 가끔 극단의 작품을 보면 등장인물의 배역과 분량을 배우에 따라 억지로 쪼개 배분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최근 서울시극단의 작품은 배우들의 연기 밸런스가 상당히 잘 어우러져 있었다. 객원 배우들과 함께 할 때도 이질감이 없었다. 작품 자체로도 극단의 배우들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방향까지 고려한 측면이 보인다. 김광보 연출의 색과 서울시 극단의 색이 점차 개성을 찾고 자리매김하고 있는 듯하다.
연극 <함익>은 트렌드를 한껏 흡수한 작품이다. 그러면서도 현실에 굵직하고 충실하게 메시지를 던진다. <햄릿>을 과감히 여자로 탈바꿈시켰고, 그 변주에 엔터테인먼트 적인 요소를 충분히 녹였다. 시대를 벗어나 현대인의 고뇌와 쓸쓸한 고독에 집중하면서 주제적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창구도 마련하였다.
극 중 나오는 대사처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결국은 살아가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더 잘 살아있길 바라는 마음, 살아 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햄릿의 외침이 우리의 숙제이자 지켜야 할 도리로 들린다. 간만에 팔딱팔딱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창작극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