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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애할 권리 Apr 28. 2018

연극 <하이젠버그>

불확정성의 원리

Heisenberg: The Uncertainty Principle


연극 <하이젠버그-불확정성의 원리>는 2015년 영국의 희곡 작가 사이먼 스티븐이 쓴 작품입니다. 비교적 최근 작이죠. 사이먼 스티븐은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영미권에서 주목받고 있는 젊은 작가인데, 연극 <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사건>(2012)을 전작으로 발표했었죠.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는 작품이라 친숙한 분도 있을 것 같네요.


제목

일단 제목인 하이젠버그(Heisenberg)는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를 지칭하는 게 맞습니다. 네, 부제로 붙은 '불확정성의 원리'를 주장한 그 과학자예요. 하지만, 이 작품은 과학 이야기가 아니고, 과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도 않습니다. 하이젠버그가 주장한 불확정성의 원리, 그 관점에 영감을 받아 이야기를 풀어갔을 뿐이에요. 완전히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계속 마주하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인생은 말 그대로 정해진 것도 확실한 것도 없다는 거죠. 결론은, 연극을 볼 때 하이젠버그에 대해 몰라도 관람에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그냥 이 연극의 줄거리와 배경을 알고 보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될 거예요. 따지고 보면 사이먼 스티븐에게 낚인 거나 다름없는데, 시선을 끄는 제목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c) 리앤홍
2인극

이 연극은 2인극입니다. 주인공은 42세 미국인 여성 조지 번스, 그리고 75세 아일랜드인 남성 알렉스 프리스트 두 사람입니다. 2인극의 등장인물 치고는 생경한 조합이다 싶은데, 심지어 두 사람이 사랑을 하죠. 성격도 나이도 사는 곳도 다른, 공통점이라고는 하나 없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기까지. 서로 얼마나 다른 지 탐구하고, 놀라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신뢰를 쌓습니다. 사실, 저는 두 사람의 출생이 꽤 중요한 설정이라고 봅니다. 번역극이라 우리나라 공연에서는 두 사람의 출생이 제대로 묘사되지는 못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작품을 어려워하는 관객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친절한 설명도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작품인데, 영미권이 아닌 그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국내 관객은 당연히 빠르게 캐치하기 어렵죠. 대사에 정보도 많고, 장소에 대한 설명만 해도 그렇고요. (직선적이고 저돌적인) 미국인 vs (무뚝뚝하고 우직한) 아일랜드인 / (중년의 기혼) 여성 vs (노년의 독신) 남성이라는 대비는 그 설정 자체로 강력한 성향이 생깁니다. 어쩌면 선입견이라 볼 수도 있는데, 어차피 이 작품은 한 인물이 다른 인물을 만나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그 전형성이 효과적이긴 하구요.

(c) 리앤홍
장소의 변화-심리의 변화

이 작품은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 역 ST Pancras Station에서 시작해 미국 뉴저지에서 끝나는 6주간의 시간을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세인트 팬크라스는 킹스크로스 근처에 있는 역인데, 런던에서 규모가 큰 기차역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역정도 될까요?) 장소가 변하면서 씬이 바뀌는데, 그때마다 인물들이 조금씩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 합니다. 마음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는 거죠. 또한 공간 안에서 누구가 호스트고 게스트인지를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공간의 주인이 주도할 때도 있고, 지배당할 때도 있죠. 연극에 등장하는 장소는 -세인트 판크라스 기차역- 알렉스의 정육점-홀본에 있는 터키 레스토랑-알렉스의 침실-클랩튼 공원-링컨파크입니다.


우연한 만남이 가져온 인생의 변화

연극이 시작되면 조지와 알렉스가 서로 당황한 표정으로 티격태격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어지는 대화에서 드러나죠. 조지가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알렉스에게 다가가 돌연 목에 키스를 했기 때문입니다. 깜짝 놀란 알렉스가 영문을 묻자 조지는 자신도 왜 그런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알렉스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는데, 조지가 알렉스에게 관심을 보이며 도발적으로 접근합니다. 자신을 런던에 사는 웨이트리스라고 소개한 후로 알렉스에게 뭐하는 사람인지, 몇 살인지, 어디 사는지... 그렇게 처음 만난 사이에 무례하다 싶은 질문을 쉴 새 없이 쏟아냅니다. 알렉스는 황당해하면서도 조지의 페이스에 점점 말려들어가고, 결국 그러다 기약 없이 헤어집니다. 하지만 며칠 뒤, 조지가 알렉스가 일하는 정육점으로 찾아갑니다. 구글링으로 가게 주소를 알아냈다고 하면서요. 그리고 그 시점에서 조지는 알렉스에게 진짜 자신을 소개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도무지 뭐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이죠. 하지만 조지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알렉스도 점점 마음이 끌리고,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둘이 첫 섹스를 한 날, 만감이 교차하는 알렉스에게 조지는 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뉴저지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찾으러 가기 위한 자금이라고 설명합니다. 순간 알렉스는 이 모든 게 계획된 것이 아닐까 의심합니다. 조지가 돈 때문에 자신에게 접근했다고 생각한 거죠. 하지만 모든 상황을 부정하고 없었던 일로 하기엔 알렉스가 너무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조지를 만나고 알렉스는 달라졌거든요. 결국 알렉스는 조지에게 돈을 주고, 조지는 알렉스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합니다. 그리고 뉴저지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솔직한 심경을 털어놓습니다.


알렉스

알렉스는 혼자입니다. 부모님은 전쟁으로 일찍 돌아가셨고, 두 살 위 누나도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났습니다. 알렉스의 인간관계는 어린 시절에 모두 사라진 겁니다. 갑자기 뚝 끊겼다고 해야 할까요? 게다가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는 독신남입니다. 젊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제대로 고백도 못하고 헤어졌죠. 이후 알렉스는 혼자인 삶을 택했고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며 살았습니다. 수십 년간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곳을 걸으며, 안정된 일상을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 방어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고 싶은 말도 최대한 미루고 삼키고 웬만하면 혼자 삭힙니다. 혼자 살면서 만들어온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 틀을 벗어나길 두려워합니다. 유일한 취미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것. 그가 음악에 얼마나 많은 애정이 있는지 중간에 나오는데, '덕밍 아웃'이라고 할까요?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할 기회를 잡은 사람처럼, 아주 흥분해서 떠들어 댑니다. 죽은 동물의 고기만 만지던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을 안고 따뜻함을 느낍니다. 이렇게 그를 변화시키고, 그의 삶을 흔들어 놓은 사람이 바로 조지입니다.


조지

이 작품에서 조지는 미스터리 한 존재입니다. 그녀가 말하는 것들을 이야기 속에서 증명해주지 않거든요. 아이의 존재, 집의 존재도요. 정말 사기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연극이 막을 내린 후에도 계속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가정하면, 왠지 조지가 알렉스를 실컷 이용하다가 버릴 것 같거든요.) 무튼!

조지는 뭐든 일단 저지르고 보는 캐릭터입니다. 연극의 시작부터 조지가 대화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저돌적이고, 막무가내고, 충동적이고,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하는 성격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지른 일에 대해 수습을 하기 위해 거짓말도 술술 하는 거죠. 학교 상담사로 일한다고 하는데, 제대로 상담을 해줄 지도 의심이 가요. 알렉스를 처음 만난 날 조지는 자신이 '살인자'라고도 말합니다. '아이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아이가 있고, 그걸 후회하지도 않는다'고도 이야기합니다. 조지는 쉴 새 없이 말하지만, 그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내면의 무의식이 무심코 튀어나오듯, 알 수 없는 말도 끼어들어가 있어요. 관객은 그 파편들을 요리조리 짜 맞추며 진짜 조지를 찾는 미션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런 식의 말을 합니다. '너무 가까이서 보면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빨리 도착하는지 알 수 없다'라고. 이들을 알기 위해서는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볼 필요가 있다는 걸까요?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장면
들어주는 일, 믿어주는 일

<하이젠버그>는 배우가 중요한 작품입니다. 2인극이라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주제면에서도 배우에 집중해야 하는 연극입니다. 말과 반응... 즉, 리액션의 변화를 관객이 인지하고 잘 따라갈 때 좋아져요. 서로가 서로에게 반응하는 감정의 화학작용을 보여주니까요. 자신의 이야기만 하던 조지는 경청을 하게 되고, 자신을 숨기던 알렉스는 표현을 하게 됩니다. 상대의 성향을 조금씩 닮아 가죠. 불완전한 두 존재가 만나,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 더 완전해집니다. 하지만 여전히 두 사람은 다릅니다. 조지를 사랑하게 된 알렉스는 이런 식의 대사를 합니다. '인생은 너무 짧다. 나는 너무 늙었고, 이건 불공평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전에 앞서, 정체성에 대한 확인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여줬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이 연극은 두 사람이 어디로 가고 어디에 도달하는 지를 따라가게 하는 작품입니다.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죠. 강한 드라마가 중심인 연극이 아니라, 심심한 측면도 있습니다. 작품은, 이 불확실로 가득한 현실에 충실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음을, 조용한 탱고를 통해 다시금 확인시켜줍니다. 상대를 믿고 따라가는 즉흥적인 춤. 두 사람의 미래를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 장면
오프 브로드웨이-웨스트엔드

<하이젠버그>는 2015년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습니다. TV와 스크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Mary-Louise Parker(미드 Weeds에도 출연했었죠)와 70대를 훌쩍 넘긴 Denis Arndt가 주인공을 맡았죠. 블랙박스 같은 빈 무대에 의자 두 개만 놓고 아주 미니멀한 연출을 보여줬습니다. http://heisenbergbroadway.com/ 홈페이지에 그때의 자료를 찾아볼 수 있으니 궁금하신 분은 참고하시길. 작년에는 런던에서 매리언 엘리엇의 연출로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한밤 개>의 획기적인 무대를 완성한 무대 디자이너 버니 크리스티와 조명 디자이너 폴 콘스타블이 함께 참여를 해 또 한 번 마법 같은 무대 미술을 보여줬죠. 저는 작년 겨울, 마침 볼 기회가 돼서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뉴욕 버전이 블랙박스였다면, 런던 버전은 화이트 박스였어요. 아크릴 같은 소재의 순백의 사각 무대는 씬마다 색이 전환됐습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작품처럼 신비로운 빛이 만들어낸 무대는 그 자체로 환상적인 판타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연극 역시 우화 같은 설정이 있기 때문에 무대가 주는 힘이 컸습니다. 또한 장마다 무대의 폭이 변하기도 했는데, 인물의 심리까지 물리적으로 표현해낸 것 같았습니다. 두 버전의 공통점이라면 심플했다는 거예요. 대본에서는 구체적인 장소가 언급되고 있지만 무대는 특정 공간을 구현하지 않았죠.

(c) 리앤홍
국내 초연

국내에서 소개된 버전은 해외 공연에 비하면 조금 구체성을 부여한 셈입니다. 뉴욕 버전처럼 의자와 테이블을 이동하며 공간을 만들었는데, 대신 바닥에 설계도면처럼 극 중에 등장하는 장소를 그려 넣었어요. 처음에는 동선도 그림에 맞게 움직이나 했는데, 꼭 그렇진 않더군요. 객석에서는 그게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아쉽더군요. 프레임 없이 무대를 사방으로 노출했는데, 무대 위에 ㄱ자 형으로 객석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좌석이 그리 효과적이진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연극을 하기에 연강홀 자체가 너무 크긴 합니다. 그래도 가벽을 쳐서 무대 사이즈를 줄이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왜 무대 위로 객석을 올렸는지, 그 의도는 모르겠습니다. (좌석 수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죠) 하지만 무대 쪽 관객까지 고려해서 연기 동선을 짜다 보니 어색하게 걸리는 부분도 많았습니다. (대사를 할 때 몸을 360도 회전을 한다든지, 과도하게 이리저리 움직인다든지...) 앞서 말했듯, 두 배우가 중요한 작품입니다. 두 배우의 물리적인 거리도 심리를 드러낼 수 있고, 몸짓과 표정도 변화를 감지하게 해주는 단서니까요. 하지만 사방에 앉는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해 움직임이 많다 보니 두 인물을 가만히 들여다볼 기회를 차단합니다. 저는 무대 쪽이 아닌 객석 중앙에서 봤는데도 그런 느낌이 들었는데, 무대 쪽 좌석은 그 기회를 더 많이 뺏기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알렉스 역은 정동환 배우가, 조지 역은 방진의 배우가 맡았습니다. 방진의 배우를 연극에서 만날 때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조지와 잘 어울렸습니다. 움직임이 많았지만 가뿐했고, 대사가 많았지만 잘 들렸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도 알맞게 이끌어 갔어요. 사실 저는 이 작품이 국내에서 개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알렉스를 누가 할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어울릴 거라고 떠오른 배우가 딱히 없었거든요. 70대 중반의, 로맨스의 감정을 순수하고 따뜻하게 소화할 수 있는 배우... 나중에 정동환 배우가 캐스팅이 됐다고 해서 호기심이 더 생긴 것도 그런 이유죠. 제게 정동환 배우는 그간 연기한 모습으로 봤을 때 지적이고, 묵직하고, 권위적인 느낌이 강한 배우였거든요. 여기서도 노년보다는 중년의 이미지가 더 강하긴 했어요. (실제 나이는 아마도 70세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70대 중반이라고 하기에는 에너지도 강하고, 더 젊어 보였죠. 이건 제가 이미 ‘누가 봐도 노인!’인 캐릭터를 먼저 봐서 더 그럴 수도. 이 작품의 초반은 알렉스가 조지에게 서서히 자석처럼 끌려가면서 시작되는데, 등장부터 힘이 팽팽하고 비등하단 생각은 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배우 고유의 힘이 있어서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알렉스가 조지보다 더 주도권을 가질 때나, 후반부의 모습이 더 좋았습니다.


장면이 전환되는 사운드가 익숙하다 했는데, 런던에서 봤을 때와 같아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보니까 국내 버전도 데이비드 반 티그헴 David van tieghem의 음향을 섰더군요. 아마 오프 브로드웨이부터 쭉 일관성을 유지한 것 같습니다. 멋스러운 일렉트로닉 한 사운드인데, 시공간을 지워버리는 것 같은 느낌을 줘요. 어디론가 휙 날아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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