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맨씨어터'에 대하여
맨씨어터는 배우로 구성된 극단이다. '맨'이라 해서 남자 배우들이 가득한 곳이라 생각하면 안 된다. 극단 맨씨어터를 말하기 앞서, 이름의 사전적 정의를 짚어본다.
아래는 극단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맨씨어터
; '맨'의 두 가지 사전적 의미
- 국어 사전: 맨 [부사] 아무것도 섞이지 않고 오직 그것뿐인
- 영어 사전: man [m'æn] [관사 없이] (남녀를 불문하고) 사람, 인간, 인류
극단 “맨”은 이 두 가지 사전적 의미를 더해 ‘오직 사람’이라는 가치를 품고 탄생한 집단입니다. 모든 분야의 예술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소재인 사람. 또 연극의 가장 기본이 되는 두 요소인 배우와 관객, 그리고 그들- 연극과 배우와 관객 사이의 소통을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극단으로서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예술”이라는 이름의 자아도취에 빠지지 않을 것임을 약속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맨씨어터는 젠더를 막론하고, 인간이란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2006년 가을, 극단 대표인 우현주 배우는 정재은, 정수영, 박호영 배우와 함께 극단을 창단한다. 모두 여자 배우다. 2007년 창단 공연 <썸걸즈>(연출 황재헌)를 성공적으로 이끌고, 2010년 <디너>(연출 이성렬), 2011년 <갈매기>(연출 오경택), 2012년 <벚꽃동산>(연출 오경택), 2013년 <터미널>(연출 전인철), 2014년 <은밀한 기쁨>(연출 김광보), <유쾌한 하녀 마리사>(연출 김한길), 2016년 <데블 인사이드>(연출 김광보), <흑흑흑 희희희>(연출 김봉민), 2017년 <프로즌>(연출 김광보), <14인 체홉>(연출 우현주) 등의 연극을 꾸준히 선보였다. 현재는 이창훈, 김찬형, 김부심, 박소정, 정지윤, 정상용 등의 배우가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2018년 플레이디비 기준)
배우가 중심에 선 극단이다 보니, 작품마다 배우의 색깔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형식적인 실험보다 입체적인 캐릭터와 동시대 주제의식을 강조된 드라마가 주를 이루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전을 다루더라도 현대적인 해석과 젊은 감각을 내세워 대중성을 부여한다. 맨씨어터 작품이 다수의 관객에게 재미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단순히 코미디적 재미를 뜻하는 게 아니다. 관객은 작품에 공감할 수 있을 때 재미를 느끼는 법이다. 연극을 처음 보는 사람도 맨씨어터의 작품은 어렵지 않게 즐기며 감상할 수 있다. 진입 장벽이 낮지만 작품의 수준은 높다. 희곡, 배우, 관객이란 연극의 필수 요소를 매력적으로 드러내기에, 맨씨어터의 작품은 '극장에 앉아 연극 보는 맛이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을 절로 들게 한다. 전미도, 박호산, 이석준, 정수영, 서정연 등 기량 좋은 배우들의 참여도 맨씨어터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관객이 좋아하는 극단이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우현주 대표의 노력이 크다. 그는 작품 선정부터 제작 전반을 책임지면서, 작품과 관객 사이에 단단한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고전도 좋지만, 맨씨어터의 현대극은 특히 좋다. 극단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된 작품도 많으니, 작품의 다양성에 있어서 연극판의 저변을 넓혀주는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맨씨어터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번안극을 보면 작품성과 대중성을 균질하게 충족한다. 우대표는 좋은 희곡을 찾으면 직접 번역을 도맡고 제작하기도 하는 프로듀서로서의 적극성도 보인다.
맨씨어터의 작품 대다수에서 주체적이고 다양한 여성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특히 작품에서 소외되기 쉬운 30~40대 중년 여성이 극의 중심에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사랑스럽고 광적이고 애처로우며 강인하다. 다양한 군상이 맨씨어터의 작품에서 튀어나온다. 그간 많은 공연에서 중년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그 스테레오타입을 한번 떠올려보면 차이를 가늠할 수 있다.
2012년에 발표한 <죽은 남자의 핸드폰>이란 작품에서는 우연히 죽은 남자의 핸드폰을 발견하고 그 남자의 삶을 추적하게 되는 30대 후반 여성 진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추상미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해 화제가 된 <은밀한 기쁨>은 탐욕, 시기, 개인주의, 이기심과 같은 현대인의 민낯을 섬세하게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 후 삶을 둘러싼 부조리를 겪는 주인공 이사벨이 극의 중심에 있다. 천명관 작가의 희곡을 원작으로 한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서는 코믹하고 히스테릭하고 개성 강한 여성 캐릭터들을 총출동시켰다. 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연쇄살인범이 된 남자와 그에게 딸을 잃은 엄마의 이야기를 통해 용서라는 행위를 돌아보게 하는 독백형 3인극 <프로즌>에서도 (물론 연쇄 살인범 역의 랄프의 캐릭터가 중심에서 강렬하게 서사를 이끌지만) 엄마 낸시와 정신과 의사 아그네샤가 힘 있게 극을 지탱한다. 2014년에 이석준 연출로 공연된 <썸걸즈>는 주인공 성별을 여자로 바꿔 여자 버전을 공연했다. '나쁜 여자'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그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수많은 공연이 극장을 채우고 있지만, 여성 캐릭터는 다양성에 있어서나 주체성에 있어서 여전히 부족하다. 그동안 맨씨어터는 나이, 성격, 직업, 역할에 있어서 폭넓은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다. 앞으로 맨씨어터가 선택할 작품이 궁금하고, 계속 보고 싶은 이유다. 그 어느 때보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민과 의식이 필요한 시기. 아니, 사실 오래전부터 필요했지만 무관심했던 지난 날을 반성하는 시기. 더 많이 사랑할 준비를 하고, 맨씨어터의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