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식물생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철쑤 Oct 18. 2017

떡갈고무나무: 어느 정도의 빈틈

아파트 엘레베이터를 타고 11층 버튼을 누르고, 엘레베이터 안쪽 벽에 기대 선 채로 고개를 까딱하여 옆쪽 벽에 달린 거울을 한번 흘긋 보고, 다시 고개를 움직여 엘레베이터 윗쪽에 달린 광고용 모니터를 보았다. 생각이랄 것도 없이 느릿하게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행동들 끝에 화면 속의 글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 하고 집에 도착한 날은 심장에 불이 꺼진 것 같은 기분”


그러게, 지금 내 심장에 불이 꺼졌구나. 어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까. 나중에 찾아보니 이 글귀는, 싱고라는 시인의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라는 시의 일부였다.


    마음에도 없는 말을 / 많이 하고 / 집에 도착한 날은 / 심장에 불이 꺼진 기분

    타인의 기분을 / 억지로 맞추다보면 /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 고르게 되고


             <詩누이> , 싱고, p.17~18,  '당신은 다정한 사람입니까’


무엇무엇과 비슷하게 생겼다하여 무엇무엇이라 부르게 되었다, 라는 설명이 붙은 이름들을 가진 사물들, 동물들, 식물들이 많다. 떡갈고무나무도 그 잎모양이 떡갈나무의 잎과 비슷하다고 하여 떡갈고무나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떡갈고무나무의 잎은 진한 청록색을 띠고 마분지처럼 빳빳하면서도 잎면 전체가 우글쭈글 굴곡이 져 있다. 큼직하고 시원스런 매력이 물씬하지만 거칠어 보일 때도 있고, “내 손은 사람 손이 아니고 수세미다”라고 말씀하시던 외할머니의 손바닥처럼 투박하고 두껍기도 하다. 굵직하고 또렷하게 보이는 잎맥은 할머니 손등에 불거져 나온 핏줄 같기도 하다. 이런 잎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 몸통은, 굵은 뼈마디 말고는 별로 잡히는 것이 없던 외할아버지의 팔다리처럼 가늘고 거칠다.


떡갈고무나무가 닮았다는 떡갈나무는 도토리 같은 열매가 달리고, 동아시아 산지나 숲속에서 자생하며, 나무도 단단해서 고급 목재 축에 속하고, 술통 재료로도 많이 쓰인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오크가 떡갈나무이다. 그런 반면 고무나무는 온대나 열대, 한국의 남해안 지방에서 자생하는 ‘고무’ 액이 흐르는 그야말로 고무나무이고, 나무의 단단하기는 떡갈나무에 비해 무르다.


떡갈고무나무의 잎이 무슨 연유로 떡갈나무의 잎처럼 테두리가 뭉게뭉게 둥글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무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이 나무의 이름을 짓고 나무의 특징을 잡으면서 마치 나무에게 잘 재단된 옷을 입혀놓은 것 같다. 옷감도 좋고 디자인도 좋고 재단도 잘 되어 나무에게 아주 잘 어울려서 사람들의 호응도 좋지만, 나무의 본질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옷이라고 해야 할까. 자꾸 떡갈, 떡갈 하고 불리우다 보니 고무나무 주제에 상수리라도 하나 내야 할 것 같고, 온열대지방 출신인지라 추위엔 영 젬병이면서도 엄동설한에 냉수마찰이라도 해내야 할 것 같고, 삼나무처럼 무른 나무인 주제에 물푸레나무와 견줄 정도로 단단한 척 해야 할 것처럼 느낄 때도 있을 것 같다.

싱고의 시에서, ‘타인의 기분을 맞추다보면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고르게’ 된다고 했는데 정말 그럴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날,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즈음에서는 심장에 불이 꺼진 듯한 기분이 들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집에 있는 떡갈고무나무의 모양을 좀 더 세련되게 잡아주겠다는 생각에 아래쪽에 달린 잎을 자른 적이 있었는데, 자른 부분에서 하얀 물이 새어나와서 놀란 적이 있었다. 고무나무니까 고무액이 흐르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인데, ‘떡갈’이라는 선입견에 휩싸인 나 역시 아마 우리집 나무가 고무나무라는 것을 잊고 있었나보다. 그런 주인과 살다보니, 또 그런 주인에게 맞춰주다보니 우리집 떡갈고무나무도 심장에 불이 꺼지는 날이 많아서 그렇게 하얀 눈물을 흘렸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고무나무의 하얀 눈물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수준도 아니어서 얼마 가지 않아 말라서 사라진다. 수시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타인의 시선과 사회의 기준들에 영향을 받다 보니, 지금 내 모습이 남이 원하는 건지 내가 원하는 건지 잘 판단이 서지 않아서 어느 순간엔가는 눈물을 흘릴 만큼 슬프지도 않은 단계에 이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그대로 그냥 그러려니, 다들 그렇게 죽이면서 살아가는 거려니,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이 아니라 내 자신이 짜놓은 것들이 나를 가둘 때도 있다. 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작은 종이 상자에 잔뜩 웅크린 채 들어가 있으면서, 종이상자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뚫고 나갈 수 있고 찢어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못하고 그 좁은 상자 속에서 버둥거리는 내 자신을 보는 때가 더러 있다. 남이 재단해 놓은 옷이든, 내가 들어간 종이상자든, 결국 나를 닥달하고 죄이는 것은 나 자신이다. 결국은 다 충족시키지 못해서 힘들어 하면서도 왜 그리 안간힘을 쓰는가 말이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보니 떡갈고무나무에게 애잔한 마음이 드는 건지, 타인의 시선과 자신의 기준이 뒤섞인 함정과도 같은 비좁은 종이 상자 속에서 꿈지럭거리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지 조금 헷갈리기도 한다. 상자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바람에 팔다리에 피도 안 통하고 관절도 아프고 하는 것이,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많이 한 날 심장에 불이 꺼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웬지 조금 가라앉으려 할 때는, ‘DOC와 춤을’이라는 곡을 생각하자. 내게 빈틈을 좀 주자. 벌써 이미 많이 흘러버린 시대의 히트곡이지만 지금 들어도 여전히 신나서 어깨가 들썩이고, 가사도 생각보다 ‘생각 있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젓가락질 못해도 나는 편해서 좋기만 하고 밥도 엄청 잘 먹으며 밥상에도 전혀 불만 없으니 내 젓가락질에 시비 걸지 말고 다 같이 신나게 춤을 추자고 한다. 또, 몇 올 안 되 보이는 옆머리로 대머리인 속알머리를 가리려고 무진장 애쓰는 옆집 아저씨더러는 그렇게 억지로 감추지 말고 아예 빡빡 밀고 다 같이 신나게 춤이나 추자고 한다. 사람들 눈 의식하지 말고 내 개성으로 이 세상을 즐기면서 살자고 한다.


그래, 떡갈고무나무야, 너는 고무나무 치고 참 특이하게 생겼구나. 떡갈나무잎이랑 비슷하다고들 하는데 내 보기에는 네 잎사귀가 훨씬 더 멋지다. 그거면 됐지. 떡갈나무를 닮았건 말았건, 심장에 자꾸 불 꺼트리지 말고, 나와 같이 즐겁게 살자!



식물생각 핸드북


간단프로필


국내유통명: 떡갈고무나무

학명: Ficus lyrata

영명: Fiddle-leaf fig

생물학적 분류 (문/강/목/과/속): 피자식물문 쌍떡잎식물강 쐐기풀목 뽕나무과 피쿠스속

원산지: 서아프리카 열대우림


햇빛:

우리집 떡갈고무나무도 베란다 안쪽의 거실에 자리를 잡고 있고, 떡갈고무나무를 키우는 많은 사람들도 거실이나 방과 같은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 나무를 둔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떡갈고무나무가 많은 햇빛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베란다에도 둬보았고 거실 (단, 베란다 창문에 면한 쪽)에도 둬보았는데 큰 차이가 없었다. 해가 드는 환한 곳이라면 실내 어디에 두어도 괜찮을 것이다.


바람:

햇빛과 마찬가지로 바람에도 별 까탈스러움이 없는 우직한 식물이다. 우리집 거실에는 행운목과 떡갈고무나무가 나란히 있는데, 이 두 식물 모두 베란다 창문에 면한 거실에서 무탈하게 살고 있다. 조금씩 문을 열어두기는 하지만 통풍이 아주 왕성하지는 않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벌레가 생기거나 크게 시들해진 적이 없다. 햇빛과 바람에 우직하여 실내에 두어도 무탈한 데다가 잎사귀도 오래 도록 멋스럽게 달려있으니 효자식물이 아닐 수 없다.


물주기: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신경을 쓰지는 않고 흙색깔이 말라보이면 겉흙을 만져보고 푸석거린다면 물을 준다. 조금씩, 여러번, 그리고 흠뻑 준다. 나는 물주기가 좀 인색한 편인데,  성향상 그렇기도 하고 직장인인지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아 그야말로 깜빡하는 날들도 많아서 그렇다. 어떤 식물은 물을 조금 말리면 금새 시들해지고, 시들해졌다가도 살아나는 식물이 있는가하면 한번 시들해지면 영영 작별하는 식물도 있는데, 떡갈고무나무는 키운지 3년여가 되었건만 아직 시들해진 적은 없는 것 같다.


내한성/월동:

추위를 잘 견딘다는 말도 있지만, 서아프리카가 원산지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남해안 일부지방에서 자생하는 식물임을 생각하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계속 거실에 둘 생각이라 월동 걱정은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베란다에서 키우더라도 서울의 1~2월 겨울 동안에는 거실로 들여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성장:

일년전 혹은 이년전 찍은 사진을 보면 아, 그새 꽤 자라긴 했구나 하는 것을 새삼 느끼긴 하지만, 평소에는 성장세를 그다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성장이 더디다. 잊을만 하면 한번씩 새끼잎들이 돋아나긴 하지만 그 역시 꾸준하되 더디다. 인테리어 사진에 나오는 나무처럼 두툼한 나무 몸통을 갖고 싶은데, 우리집 떡갈고무나무는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잎들에 비해서 몸통이 너무 가녀리다. 예전에 어느 화원 주인에게 물어보니, 우리집 나무가 이상한 것이 아니고 원래 그렇게 나무 목대가 가느다란 것이고, 굵직한 나무 몸통은 온대나 열대에서 그렇게 키워낸 것을 수입해 온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환경에서 그렇게 굵게 키워내려면 십년은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번식:

줄기삽목이 가능하다고 하다. 떡갈고무나무의 번식을 해본 적은 없지만, 예전에 엄마가 멜라닌고무나무의 물꽂이를 했었는데, 몇 달이 지나도 뿌리도 안 나고 이것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도통 알 길이 없어서 거의 방치해 둔 적이 있었다. 뿌리가 내리기까지 몇 달이 걸렸는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주 오래 걸렸다. 그리고 그 고무나무는 무언가 조금 부실해 보이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고, 떡갈고무나무보다 더 더디게 새끼잎을 하나씩 내고 있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고무나무의 삽목은 전문가적인 손길, 말하자면 온도, 특별한 흙 혹은 생장촉진제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나 한다.


매력포인트:

우글쭈글한 큼직한 잎사귀는 정말 멋스럽다. 몸통까지 굵직하다면 금상첨화의 멋이다. 명불허전이라고, 떡갈고무나무가 인테리어 잡지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가 있다. 게다가 집안에서 키우기에도 크게 어렵지 않은, 가드닝 난이도로 따지자면 상중하의 ‘하’에 속하는 식물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식물이니 사람이 가까이 하기에 참 좋은 식물이다.


또 하나. 떡갈고무나무의 새끼잎은 말랑거리는 부드러운 연두빛 바탕에 자주색 점들이 흩뿌려져 있다. 이 연둣빛 바탕의 자주색 점들은 마치, 외국 아이들의 얼굴에 난 주근깨 같기도 하다. 은근히 촌스럽지만 정감이 간다. 신나게 떠들고 웃어제끼고 하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그냥 흐뭇한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행운목: 소원이자 약속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