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 뮤지엄 그리고 네덜란드 B컷
네덜란드 여행기의 마지막이다. 시간 가는 줄 몰랐던 반 고흐 뮤지엄과 네덜란드 여행 속 틈틈이 적어둔 생각을 담아본다. 이번 글은 담담하고, 담백하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본 네덜란드. 많이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돌아다녔다. 이번 시리즈도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글이 되기를.
#The Potato Eaters, 1885
#A Crab on its Back, 1887
#일본 판화, 반 고흐 그리고 디자인
#Almond Blossom, 1890
#어디에나 서점 그리고 도서관
#네덜란드를 떠나며
반 고흐의 가장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입장료는 17유로, 오디오 가이드는 5유로다. 오디오 가이드를 추천한다. 고흐의 작품이 연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어 비전공자도 쉽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 사진 촬영은 안 되는 관계로 공식 홈페이지의 PRESS 용 사진으로 생각을 적어본다.
그 특유의 색감과 기법은 없다. 하지만, 오디오 가이드(PMP 기기)를 통해 본 스케치가 인상 깊다. 터치 스크린 형태의 오디오 가이드는 위 작품의 스케치 단계부터 완성까지 차례대로 보여주는데, 치밀히 계산된 스케치 위로 완성작이 오버랩되는 화면은 스스로 디자인에 얼마나 디테일한 스케치가 있었는지 반성하게 했다. 반성!
마음에 들어 엽서까지 산 작품이다. 고흐 특유의 붓터치와 색감이 과도기적 형태로 드러난 점이 좋았다. 거기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라 나만 알고 싶은 소유욕을 자극한다. 이 즈음 오디오 가이드가 고흐는 500여 장 이상의 그림을 그렸노라 말한다. 계속 반성만 하게 되는 것 같다. 브런치가 아니라 어도비를 켜야 할 텐데..
Bridge in the Rain (after Hiroshige), Vincent van Gogh, 1887 (모작)
Self-Portrait with Grey Felt Hat, Vincent van Gogh, 1887
Wheatfield with Crows, Vincent van Gogh, 1890
"나는 정말 질투가 난다." 일본 판화를 보며, 반 고흐가 한 말이다. 판화는 특정 재료를 파낸 뒤 그 위에 잉크를 입혀 찍어낸 그림으로, 대게 조각칼 따위로 파낸 자국이 남는다. 반 고흐 특유의 붓터치는 바로 이 목판화 속 파낸 자국과 닿아있다. 거기에 인상파에 영향을 미친 그 자극적 색감은 고흐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판화를 모사까지 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영향이었을지 알 수 있다.
일본식 판화를 우키요에라고 한다. 우키요에는 도안을 그리는 에시, 목판을 파내는 호리시 그리고 색을 채색하여 종이에 찍어내는 스리시 이 세 사람의 작업이다. 대게 도안을 그려낸 에시의 이름을 작가로 적었다고 하니, 그 뿌리는 디자인에 더 가깝다. 그리고 이 디자인이 고흐를 만나 예술이 되고, 후대에 뮤지엄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이 되었으니. 디자인과 예술은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다'는 한 디자이너의 말에 동감하면서도, 기존의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에 접목시킬 것인가의 연구가 새로운 혹은 새로워 보이는 디자인을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색감과 붓터치가 후대에 그의 아이덴티티로 기억되고, 좋은 브랜드 디자인을 만들었듯.
일 년 전쯤, 한국 반 고흐 카페에서 벽에 그려진 '꽃 피는 아몬드'를 본 적 있다. 색감이 너무 좋아서 몇 번이나 쳐다보고, 사진도 찍었건만. 내가 진품을 볼 줄이야. 손에 들고 있던 '압생트 그린'이란 이름의 유자차를 마셨던 나였건만. 고흐가 실제로 마셨던 그 술 압생트를 볼 줄이야. 사람일은 진짜 모른다. 많은 생각이 교차했던 작품이자 작품의 그 어떤 설명보다 눈에 보이는 색감이 가장 좋았던 작품.
오디오 가이드는 친절하고, 유럽 여행 중 갔던 어떤 뮤지엄보다 색감이 좋았다. 뮤지엄샵으로 작품의 여운이 이어지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도 좋다. 고흐라는 작가에 대해 많이 배웠다. 네덜란드에 간다면 꼭 가보길 추천.
글에 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B컷이라 부르는 그 사진들에 적어본다.
이번 네덜란드 여행 중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부터 아인트호벤 반 아베 뮤지엄까지 어디를 가도 도서관과 디자인 서점이 있었다. 뮤지엄 기념품으로써의 책이 아니라 학문으로써 디자인을 다룬 책들이 그곳에 있다. 책을 읽는 사람은 물론 사가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디자인은 학문이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디자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디자인은 학문으로써 성취의 대상이지 재능으로써 발현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생각.
네덜란드의 마지막 날은 화려했다. 버거킹에서 콜라를 엎어 버거만 간신히 먹었고, 스히폴 공항의 검문은 왜 그렇게 힘든지 신발까지 벗은 채로 검색대를 통과했다. 화가 났지만 잘 참았다. 그래도 경유 일정이 항공기 지연으로 직항으로 바뀌고, 비엔나로 무사히 돌아왔다. 다 추억이 되었다. 나는 그 쌀쌀하던 네덜란드가 참 좋았다.
감사 인사로 글을 마친다.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하늘을 본 것에, 자전거를 탈 수 있던 날씨에 감사를. 휴가 잘 다녀오라시며 챙겨주신 회사 직원분들과 항상 나를 응원해주는 우리 가족에게 감사합니다. 끝으로 씩씩하게 졸업 전시를 마친 나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감사 인사를. 다음엔 같이 네덜란드에 올 수 있기를.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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