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의 뜰 / 탁현규 저 / 안그라픽스
저자는 책에서 그 어떤 강요도 없다. 그 담담한 어조가 참 좋았다. 그의 내공이 느껴지면서도, 그가 얼마나 한국 미술을 좋아하는지 느껴졌다. 나도 그처럼 사임당이 참 좋아졌다. 이번 글은 저자의 머리말 속 작품을 감상하는 오감 중 색色, 향香, 미味를 중심으로 적어본다. 그대도 사임당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 나비는 흰색 안료인 호분으로 칠하고 먹을 주로 썼다. 꽈리 열매가 더욱 붉어 보이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붉은색은 광물성 안료인 주사이다. 붉은색 안료는 호남성 진주에서 채취되어서 ‘진주의 모래’라는 뜻으로 진사라고도 부른다.
한국적 색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 구절이다. 미술은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처럼 사용한 재료도 시대를 반영할 텐데, 한국 미술 속 색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반 다이크 브라운, 피코크 블루, 샐먼 핑크 등 색에는 사람 이름 혹은 동식물의 이름이 붙곤 한다. 한국만의 색 이름이 나와서 디자인에 사용되면 어떨까 싶다. '진주의 모래'라니 이쁘다. 오방색은 좀 쉬게 해주자.
... 사임당이 붉은색과 푸른색을 대비시키기 위해 꽃의 색깔을 변화시킨 것은 실제 색보다 색의 대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결과다. 따라서 사임당 초충도는 현장에서 사생한 그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구성의 작품을 여러 점 그릴 수 있었다.
색의 구성과 구도를 고려했다는 점은 사임당의 그림이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디자인적 가치도 지녔다는 것이다. 사실 디자인 전공자라면 한국적 디자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그럼에도 사임당을 몰랐다면 조금 반성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어딘지 바우하우스 아카이브가 겹쳐 보이기도.
(신사임당의 수박꽃 그리고 앤디 워홀의 꽃)
추규는 가을에 피는 해바라기, 가을 아욱이라는 말이다. 우리에게는 추규보다 접시꽃이란 이름이 더욱 친숙하다. 촉규, 덕두화, 일일화 등 다른 이름도 많다. 담황색 꽃은 정원에 심어 가꿨다. ...
참 예쁜 구절이다. 읽기만 해도 '후레지아'를 발음할 때 느낄 수 없는 향이 있다. 그 꽃을 담아낸 사임당의 그림은 더 그렇다. 향수鄕愁이려나. 나비가 작품에 날아와 앉았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리라. 앤디 워홀의 꽃 그림을 보고 큰 감정이 전해지지 않아 의아했는데, 이제는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향이 없었다.
(향의 발음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鄕愁와 이어진다는 생각에 적은 구절)
지금까지 여러 책에서 이 그림의 꽃을 ‘물봉선화’라고 설명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여뀌를 산차조기라고 부른 것만큼 잘못했다. 아스팔트 시대에 사임당 초충도를 감상하는 것이 이만큼 힘들다.
후대에 와서 사임당의 그림을 해석하고, 작품의 이름을 붙이는 와중에 학자들이 꽃의 이름 혹은 곤충의 이름을 혼동해 작품에 잘못된 이름을 붙인 경우가 있었다. 한국에 더 이상 '뜰'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는 아스팔트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사임당의 작품에서 향기를 느끼기 어려운 시대에 산다.
우리 마음에도 뜰이 사라지고 아스팔트가 들어선 듯하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눈엔 온통 검은색만 보인다. 고시원에 사는 우리네에게 뜰을 논하는 것은 사치일지 모르나 마음에 뜰을 논하는 것은 필요해 보인다. 사임당의 그림이 더 세월이 지나도 향香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
옛사람들은 뜰에 사는 작은 생물에서도 사람이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보았다. 미물은 더 이상 미물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생명이다. 미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생명을 사랑한다. 그렇기에 초충도를 그리고 감상하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교육일지도 모른다.
오감은 색, 성, 향, 미, 촉, 즉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지는 것. 사임당 뜰에서 우리는 오감이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할 것이다. 오감을 열고 발걸음을 옮겨 뜰 안으로 들어가 보자. - 머리말 중에서
처음부터 오감을 글의 각 목차로 적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책과 사임당의 작품을 감상하다 보니 자연히 따라가게 되는 듯하다. 듣는 것(성)은 저자의 말이요, 만지는 것(촉)은 책이니 다른 것도 채워진 듯하다. 미味는 아름답다는 뜻이 아닌 맛보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맛있었던 두 작품으로 글을 마쳐본다.
쏘가리는 한자로 궐인데 이는 궁궐의 궐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쏘가리는 급제하여 궁궐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함께 그리기에 좋은 생물이 새우이다. ‘쏘가리가 새우를 놀래키다’를 한자로 바꾸면 입궐경하가 된다. 이는 ‘궁궐에 들어온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입궐경하와 발음이 같다.
재미있었다.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다. 외국 친구가 물어보면 한국에서 가장 재밌는 그림으로 소개할 수 있는 스토리를 이제야 알다니! 한국이라 담을 수 있는 그 스토리가 참 좋았다. 순수 미술을 보고 순수하게 좋아해보긴 오랜만이다.
<사임당의 뜰> 속 매창의 그림은 이 부분이 이래서 좋았다는 것 보다는 순수하게 좋다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거기에 책의 설명이 더해져 가장 인상깊었던 그림이 위의 '화간쟁명'이다. 새를 그린 그림에서 새의 얼굴을 그리지 않을 생각을 하다니.
안그라픽스에서 진행하는 벗님 4기에 선정되어 책을 선물 받아 글을 쓰게 되었다. 그래서 좋은 말만 쓴 것은 결코 아니다. 선물용으로 한 권 더 샀을 만큼 책이 세상 좋다. 한국 미술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덤덤하게 잘 풀어간 탁현규 선생님의 식견에 감탄했다. 다만, 끝으로 아쉬운 점 한 가지를 말하자면, 책의 도입부를 들 수 있다.
눈이 보고 싶어 하고 귀가 듣고 싶어 하고 입이 먹고 싶어 하고 코가 냄새 맡고 싶어 하는 것 중에 뜰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윌리엄 모리슨
표지 디자인을 통해 책을 열 때, 마치 한옥의 뜰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책의 첫 장에서 만날 수 있는 윌리엄 모리슨은 신사임당으로 이어지는 몰입을 잠깐 멈칫하게 한다. 한국적 문예를 잘 담아낸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이 아닐 수 없다. 2쇄, 3쇄가 들어간다면 좋은 한국 문학이 실리길 바라본다. 총총.
“창조적인 사람들은 한결같이 앞선 사람의 성취를 기반으로 삼는다. 누구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는 않는다.”
- 폴 존슨, <창조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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