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청춘 / 조원경 저 / 쌤앤파커스
이것이 너의 나라다. 이것이 너의 세계다. 어떻게든 여기서 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종 차별로 인한 흑인 사망 사건을 보고, 한 저널리스트가 본인의 아이에게 한 말이다. 지독히 이지적인 이 말은 '청춘에게 경제 현실감을 주자'는 책의 목적을 잘 드러낸 문장이다. 허나, 이지적인 태도가 어쩌면 겉핥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번에 이 책을 통해 배웠다.
나는 이 책이 별로였다.
책의 '경제학의 관점으로 본 청춘의 선택과 기회'를 잘 풀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의 관점으로 청춘(한국인)을 해석한 허태균 교수님의 책 <어쩌다 한국인>과 그 깊이가 비교되어 더 그렇게 느꼈다. 정리하면, 경제학 교양서로서 경제 이론을 배우기 좋은 책이나 책의 목적을 달성하진 못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안 좋았던 책에 대한 리뷰는 오랜만이다. 저자가 청춘에 대해 조금 더 따뜻했다면 어땠을까 아쉬워해본다.
이번 글은 책 속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다소 비판적이다.
'정보의 비대칭'은 거래 당사자들이 거래 대상에 대해 서로 다른 정보를 갖고 있거나, 한쪽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쪽은 그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나마 책에 가장 부합한 이론이 아닐까. 정보 비대칭으로 청춘의 많은 부분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은 예로 청춘의 스펙 과다를 설명한다. 취준생은 기업의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반면, 기업은 취준생의 정보를 스펙 외의 것으로 얻기 어렵다. 그래서 스펙 과다가 발생한다.
... 끝이다. 좋은(?) 현상 분석이지만, 책의 깊이를 느끼기 어렵다고 생각한 것은 이런 부분이다. 좋은 스펙은 뭔지, 스펙 과다가 잘못된 현상이라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면, 서로 어떤 정보를 교환해야 취준생(청춘)과 기업의 정보 비대칭이 해소될 것인지 조금 더 친절히 알려줬으면 어땠을까.
'청춘의 스펙 과다가 어쩔 수 없다면, 어떤 스펙을 쌓을 것인가?' 아쉬워서 한 번 생각해본다. 정보 비대칭에서 정의된 바, 스펙은 '서로 같은 정보'이자 '정확한 정보'를 기반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정보의 비대칭에 대해서는 책에 자주 언급되지만, 속 시원했던 곳은 없었다.)
뮈르달은 '빈곤이 빈곤을 부른다.'는 누적적 인과 이론을 전개했다. ... 그는 부유한 나라와 빈곤한 나라의 경제 발전 격차는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확대되며 결국 부유한 나라는 규모의 경제로 이익을 누리는 반면, 빈곤한 나라는 제1차 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태에 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아주 이지적으로 표현했다. '누적적 인과 이론'이라니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청춘은 고인 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제적으로 구속된 청춘은 사회의 역동성을 죽인다고. 누군들 이런 현실을 모를까. 굳이 짚어내 열심히 하라고 다독이다니. 참 잔인하다. 저자는 대학생들이 학과 관련 회사 인턴쉽에서 월급 60만 원을 받으며 일을 한다는 현실을 알까?
저자는 경제적 진실을 깨달아 청춘에게 당면한 경제적 문제의 해결책을 찾길 권유한다고 했다. 에필로그는 더 가관이다. 청춘은 끝내 이기리라고. 청춘이 백조라면, 그는 수면 위의 모습만 보는 듯하다. 아름답고, 순수한. 하지만, 우리 청춘은 그 아래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 치고 있다.
더 나은 행복과 자존감을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하루라도 젊은 시기에 재무 설계의 중요성을 간파해야 한다. 그게 경제적 청춘이 지녀야 할 재무 설계의 덕목이다.
그럼 그 재무 설계를 어떻게 해야 좋을까? 당연히 구체적인 방법은 책에 없다. 왜냐하면, 해결책은 우리에게 찾으라고 했으니. 그렇다면 저자의 '청춘이 현재에 중독되었다'는 분석은 과연 얼마나 현실성 있는 분석일까? 음, 한 인터넷 기사의 청춘 소비 분석보다 못하다.
소비에 실패할 여유가 없어 스파 브랜드의 옷에 좋은 아이템 하나를 매치하고, 자기 방도 가지기 힘들어 예쁜 카페를 소비하는 현실 등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간혹 몇 만 원의 소비에도 벌벌 떨며, '시발비용(스트레스 해소 비용)'이라는 말로 자조하는 우리다. 커피 안 먹는다고 차가 생기나 집이 생기나.
이게 우리 청춘이 직면한 경제 현실이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재무 관리를 하지 않고 남을 탓해 봤자 소용없다고 말하는 저자는 해결책을 주지 못할 거면, 청춘의 소비 현실이라도 좀 더 넓은 시야에서 복합적으로 인지하길.
... 모든 사람에게 노동의 기회를 줄 수 없고 상당수가 일자리를 잃는다면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복지'라는 문제가 언젠가는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알래스카 주가 석유 등 천연자원 수출로 번 돈을 기금으로 적립해 그 운용 수익을 주민에게 기본 소득으로 제공한다는 등의 예시를 보고, '기본 소득은 포퓰리즘이 아닐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경제학 식견을 배울 수 있어 교양서로서 이 책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청춘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청춘과 경제 그리고 기본소득에 대해 논하면서, 왜 모든 키워드가 다 들어간 성남시의 청년 배당과 서울시의 청년 수당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을까? 정치 이야기라서? 위 링크를 보면, 우리 청춘에 기본 소득을 제공한다는 이 두 정책에 대해 꽤 많은 댓글에 포퓰리즘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진짜 전문가의 의견이 궁금하다.
글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글을 발행하는 이유는 우리 청춘을 가볍게 말하는 이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토벤, 대통령의 정책, 4차 산업혁명, 민주주의 그리고 청춘. 좋은 단어를 다 버무린 책 속 어디에도 청춘을 위한 진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저자는 이렇게 마무리한다.
넘어서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고, 각자가 이 시대의 소명을 다해야 할 작은 영웅임을 명심해야 한다. 힘든 세상, 하루하루 책임감을 갖고 살아가는 청춘들이여. 그대가 바로 이 시대의 영웅이다.
영웅은 시대가 만든다. 좋지 못한 시절에 특히 영웅이 나오곤 하더라. 저자가 영웅이 아닌 시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어땠을까. 아쉽다. 나는 좋은 능력 하나쯤 있어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 삶은 바라지 않는다.
“첫째는 (좋은 책을) 읽게끔 해주는 것, 둘째는 안 읽게끔 해주는 것, 셋째는 읽은 척하게 해주는 것이다." - 이현우(로쟈)가 서평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