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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Mar 02. 2019

배와 예술이 만들어지는 조선소 | 속초 칠성조선소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 [강원] 어디가시나들 Season 1

<어디가시나들>은 서울토박이&경기토박이로 자란 두 가시나들의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평일엔 도시에서 쳇바퀴를 굴리며 살다가, 주말이면 로컬 청년을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가시나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모든 용기 있는 시도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좋은 것들을 그러모읍니다. 



바다는 양면적이다. 인간이 일용할 양식을 제공해주는 성스럽고 고마운 곳이거나 변덕스럽게 바뀌는 거친 날씨로 생명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공간이거나. 서핑보드 위에서 파도를 잡아타고, 요트나 카누 같은 배를 타고 유유자적 수면 위를 누비는 적극적 놀이공간으로 인식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속초는 전쟁 이후 터전을 잃은 실향민이 모여드는 동네였다. 1952년 문을 연 속초시 교동의 칠성조선소는 함경도에서 내려온 최칠봉 할아버지가 세운 곳이다. 청초호와 맞닿은 곳에 위치해있다. 과거만해도 그 주변에 조선소가 빼곡해서 사람들은 그곳을 ‘조선소 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법이 바뀌고 시대가 바뀌면서 속초의 소규모 목선 제작 조선소는 강선, FRP 복합소재 선박 등을 만들고 수리하는 곳으로 바뀌다가 이제 하나 둘씩 문을 닫게 됐다. 


와이크래프트보츠, 아름다운 배를 만드는 곳

조선소 2대 아버지의 손글씨

목선을 만들던 할아버지의 뒤를 서울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이어받아 배를 고쳐주는 조선소로 운영하던 ‘조선소집’. 최윤성 작가는 이곳의 3대 손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 앞마당에서 배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지만 배를 만들고 싶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잊지 않았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목선 공정과 요트 디자인, 복합 소재에 관해 배웠다. 2013년 그와 아내 백은정 작가는 고향으로 돌아와 넓은 조선소 한 편에 ‘와이크래프트보츠’ 공장을 세웠다. 수상 레저문화를 한국에 보급하겠다는 목표로 와이크래프트보츠는 카누, 카약, 우든 보드 등 소형 레저 선박을 개발하고, 주문 제작, 판매한다. 카누는 강이나 호수에서 탈 수 있는 배로 가족 단위로 타도 괜찮고 초보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카약은 바다에서 탈 수 있는 1인용 보트다. 카누보다 경험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에 수상레저용 보트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와이크래프트보츠에서는 문화 저변을 넓히는 일도 함께 한다. 틈틈이 바다 카약킹 입문 강좌를 열고 우든 서프보드 제작 강좌 등도 기획하고 있다.

와이크래프트보츠에서는 만드는 카누와 카약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지는 유일한 레저 선박 제품이다. 대부분의 레저형 소형 선박은 외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금세 망가져버리는 저가 장비가 다수다. 부부가 만드는 레저 선박은 배를 만드는 사람과 타는 사람 모두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제대로 만든’ 배다. 씨카약 디자인 특허를 보유했으며, 2016년엔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전시했을 만큼 유려한 곡선이며 쨍한 색감이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아름답다. 

속초는 레저용 배를 타는 사람들에게 최적의 동네. 동해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고립되어 호수가 되어버린 석호, 영랑호와 청초호가 도시의 위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와이크래프트보츠 작업실에서 드르륵 한쪽 벽을 열면 청초호가 바로 연결된다. 작업하기 최적의 공간이다.

살던 집은 카페로, 조선소는 전시장으로, 마당에는 카누와 카약 공방이 들어섰다. 어선을 만들고 고치던 ‘칠성조선소’라는 공간의 목적은 달라졌지만 이곳의 이름과 역사와 정신은 여전하다. 여전히 칠성조선소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배를 만드는 곳이다. 


전국의 청년들을 속초로 불러모으는 음악, 영화, 예술

요즘 ‘속초에서 가볼 만한 곳’ 혹은 ‘속초 예쁜 카페’로 알려진 살롱 칠성조선소. 2013년 처음 공장을 세우고 운영을 시작한 다음 현재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에 꼽힐 정도로 자리매김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고성능 복합재료로 만드는 국내 최초의 레저 선박이었지만 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잘 팔리지 않아 공장 운영도 힘들었다. 조선소를 운영하던 부모님은 아예 낡은 건물을 허물고 싶어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어린 시절 추억이 오롯이 남아있는 공간을 살리고 싶었다. 2016 강원 생활문화 청년혁신가, 2017 지역혁신가에 차례로 선정돼 지원을 받았다.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주최한 지역혁신 사례발표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용기를 얻었다. 

올 1월 조선소 마당 한 켠 가족이 살던 옛집을 수리해 살롱으로 오픈했다. 옛 건물은 많이 허물지 않은 채 외관은 유지하고 내부는 트렌디한 카페 공간으로 단장했다. 건물은 작지만 바깥 공간은 넓다. 커다란 배가 드나들던 조선소 앞마당에는 이제 11시 대문을 열자마자 핸드폰을 든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이제는 전시장이 된 ‘칠성조선소’ 간판 앞에서 셀카를 찍는다. 호수를 바라보는 높이 자란 나무 아래 그늘 자리는 차지하기 쉽지 않지 않은 명당이다.

지난 5월, 칠성조선소에선 전국에서 음악 좀 듣는다는 사람들이 몰려온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다. 과거 최 대표가 락밴드를 했던 경험을 살려 현재도 음악가이고 과거에 음악가였던 옛 동료들과 만든 음악 파티였다. 축제의 계절, 서울 인근에서도 엄청나게 음악페스티벌이 열리는데 굳이 속초까지 사람들이 올까, 했는데 걱정은 기우였다. 민요록밴드 씽씽, 강산에, 새소년 등 멋진 가수들이 무대에 오른 1박 2일간의 축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다. 흥행에 힘입어 올가을에는 칠성조선소와 어울리는 컨셉의 작은 영화제도 계획 중이다. 

간판과 메뉴판 등 곳곳에서 눈에 띄는 멋드러진 폰트는 아버지의 흔적. 배 전면에 새겨 넣어 한눈에 봐도 어느 집에서 만든 배인지 알아볼 수 있어 배의 얼굴 격이었던 손글씨다. 이제는 살롱 칠성조선소를 대표하는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칠성조선소에서 만들어진 배는 여전히 이북 바다를 넘지 못했지만 그래도 66년째 칠성조선소는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이어지는 한 가족의 일터다. 속초에 남은 두 곳 중 하나, 유이한 조선소는 이제 멋진 배와 맛있는 커피, 즐거운 문화예술을 창조한다.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46번길 45

11:00~20:00 *수요일 휴무



서울에서 칠성조선소를 만날 수 있는 곳


한강예술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와이크래프보츠의 작품 ‘플레이스케이프’는 시민공원 이촌지구에서 만날 수 있다. 배의 구조를 감상할 수 있는 휴식공간이자 놀이시설로 목선을 제작하는 공정의 하나인 버드케이지(Birdcage)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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