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 [강원] 어디가시나들 Season 1
<어디가시나들>은 서울토박이&경기토박이로 자란 두 가시나들의 로컬 아카이빙 프로젝트입니다. 평일엔 도시에서 쳇바퀴를 굴리며 살다가, 주말이면 로컬 청년을 만나러 기차를 탑니다. 가시나들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밀레니얼의 모든 용기 있는 시도를 응원합니다.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좋은 것들을 그러모읍니다.
이화여대, 서강대 근처 서울 염리동에서 꽤나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던 카페였다. 비슷비슷한 커피를 파는 가게 사이에서 좋은 재료로 달지 않게 만들어 낸 밀크티를 파는 비단우유차의 음료는 독특했다. 주문을 해서 이 가게 음료를 맛보려는 사람도 많았다. 한창 장사가 잘 되어가고 있을 무렵 주인은 서울 가게의 문을 닫고 강원도로 왔다. 속초가 고향이라고 했다. 인스타그램에는 이렇게 적었다.
안녕하세요 비단우유차입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해드리게 되었어요... 비단우유차가 서울에서 속초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택배사업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왔는데요, 좋은 기회가 닿아 어렵게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공기 좋은 속초 한구석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제대로 음료를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중략) 비단우유차 염리동 매장은 2018년 2월 말일까지 운영할 예정입니다. 너무 빠르게 이사를 가게 되어 송구스럽습니다. 그동안 비단우유차 염리동매장을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시작을 기약하며 앞으로 새롭게 시작될 비단우유차의 행보를 기대해주세요:) 감사합니다. 2018.2.24@bidan_wyc
4일 뒤에 가게 문이 닫히고 다시 4월에 속초에서 문을 연다니! 갑작스러운 소식에 사람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즉각적인 자극이 아닌 안에서 오래 울리는 깊은 울림 Silky Moments”을 지향한다는 그들의 음료 맛을 떠올려보면 조금 이해가 된다. 덜 바쁘고 덜 혼잡한 지역에서 조금 더 천천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을 구축하고 음료를 맛보는 사람들도 그런 울림을 갖길 바라는 마음. 그래서 그들은 ‘쾌적한 삶,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지역으로 이전’을 결정하고 주5일 영업하는 드문 자영업자로, 접근성이 낮은 2층에 위치한 조금 불편한 가게로 속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사실 이곳은 카페 공간은 아니다. 즉석판매제조가공업으로 영업신고 되어있는 제조장이다. 따라서 이미 병입을 마친 완제품 형태의 제품 판매만 가능하다. 카페처럼 접객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뜻. 그래서 이곳에서 음료를 먹기 위해선 몇 가지 절차가 필요하다. ①‘휴게실’이라고 쓰인 공간에 들어가서 메뉴 설명을 읽고, 마음을 정한다 ②탁상 위에 있는 만년필로 먹고 싶은 음료의 종류, 용량, 개수를 주문서에 잘 적는다 ③다시 밖으로 나와 마치 옛날 전당포처럼 생긴 주문실에 가서 띵동 하고 벨을 울린다 ④주문서를 금속 플레이트에 올리고 기다리면 어딘가에 숨어있던 주인이 밖으로 나와 종이를 챙겨간다 ⑤안에 있는 냉장고에서 꺼내온 차가운 음료를 전달 받는다. 이제 음료를 다시 회의실로 가져가 등받이 없는 길쭉한 의자에 나란히 앉아서 마시고 갈지, 손에 들고 나가 홀짝홀짝 들이키며 속초 여행을 계속할지 고민은 나의 몫이다.
이곳을 찾으려면 ‘삼화제재소’ 간판이 크게 달린 건물을 찾는 편이 빠르다. 1988년 등기에 오른 나이 많은 건물의 계단을 올라 2층에 오르면 아주 오래된 옛날 학교를 떠올리게 하는 밝은 갈색의 나무 문이 나온다. 전체적으로 공간을 휘감고 있는 건 영화 <첨밀밀>의 노래, <중경삼림>, <화양연화>의 무드. 누군가 만나 이야기하다가 왕가위 감독을 좋아한다면 꼭 속초의 비단우유차를 다음 여행지로 권유해주길. 익숙한 지역성이 전부가 아니라 뚜렷한 취향이 중심이 되는 좋은 공간이 지역에 하나 더 늘었다. 덕분에 새로움을 찾는 청년들이 속초에 갈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강원도 속초시 중앙로 54번길 9
11:00~19:00 *월, 화요일 휴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