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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우주 Mar 03. 2019

가끔 영화관에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부터 영화관에 가는 게 부담스러워졌다. 짧으면 90분 길면 2시간을 훌쩍 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검은색 장막 안에 갇힌 채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게 못 견디게 답답했다. 언제 생각해봐도 갑갑한 학창 시절에도 50분마다 얄팍한 쉬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었는데 이거 원, 나이 들수록 체감하는 시간의 속도가 바투게 느껴지면서 일분일초 흘러가는 게 아깝건만  과연 누군가의 추천이나 평론가의 한 문장 덕에 선택한 영화가 우연히 나의 뒤죽박죽인 취향과 잘 들어맞는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거지만 혹여 시계가 멈춘 게 아닐지 모를 정도로 지루한 영화를 억지로 보아야 한다면 그것은 마치 정신적으로 고문당하는 것처럼 잔인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은 집에서 아주 옛날에 개봉했으나 시간을 거슬러 여전히 빛나는 좋은 영화들을 엄청 편한 옷을 입고 가장 게으른 자세를 취한 채 중간중간 일시정지를 눌러 화장실도 총총 다녀오면서 IPTV를 통해 여유롭게 볼 수 있으니까 직접 영화관까지 행차해서 보는 영화의 경험은 더더욱 최상급을 지향하고 적어도 '좋다' 얘기할 만한 정도는 되어야 성이 풀리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다.


뭐 어쨌든 기나긴 문장을 요약하자면 요즘 대부분의 영화는 휴대폰이나 TV로 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나를 영화관으로 이끄는 몇몇 영화들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좋은 것은 점점 더 무언가 선택할 때 실패(크게 실망)할 확률이 줄어든다는 점. 물론 그만큼 옷장에 비슷한 옷과 신발이 늘어가고 있지만…

마음에 드는 영화를 볼 때 내가 취하는 특유의 포즈가 있다. 외투나 가방을 껴안으면서 의자 깊숙이 앉아있던 몸을 점점 스크린 가까이로 옮겨 화면을 향해 기울인다. 영화 속 스토리에 빠져들어 가다 보면 점점 등장인물과 나란히 앉아서 얘기 나누고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고 싶어진다. 할 수 만 있다면 커다란 화면 안으로 총총 걸어 들어가서 사랑스러운 인물들 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그래서 내가 적는 영화의 기록은 내가 기꺼이 몸을 기울인 사람들에 대한 아마 일방적이고 편향적이며 드문 것이 될 테다. 일방적인 팬으로서, 화면 가까이에 마음을 쏟은 영화들을 기록한다. 꾸준한 기록을 통해 불분명하고 혼란스러운 나의 취향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면 좋겠다. 어디에선가, 계속해서 몸을 기울이고 싶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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