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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onderPaul Jun 29. 2024

길 위에서 룰루랄라

해외 출장 일정은 대체로 이른 새벽 시작했다. 사무실에 들러 직원들과 가벼운 일정 공유 미팅을 진행하고 마을로 들어가려면 적어도 두 시간쯤 여유를 두고 출발해야 했다. 가장 이른 아침을 맞이했던 출장지는 에티오피아 시다모 지역이었다. 숙소에서 사무실까지 한 시간 반, 사무실에서 마을까지 한 시간 넘게 이동하는 거리라 마을 도착 3시간 전에는 숙소에서 출발하느라 새벽 4시면 눈을 떴다. 몽롱한 상태로 3시간 동안 엉덩이가 욱신거리는 오프로드를 달리면 마을에 도착할 때쯤 정신이 맑아졌다.


처음으로 오프로드의 엉덩이 마사지를 받은 것은 부룬디에서였다. 산들의 나라라고 해도 될 듯한 부룬디의 비포장 산길은 내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드려줬다. 차 안에서 말을 하면 저절로 바이브레이션이 생기는 정도였는데, 덜덜거리는 산길을 달려 내린 후에는 다시 산길을 걸었다. 침대는 노쇠한 프레임이 삐걱거리는 데다 누우면 내 몸의 모양을 본 따려는 듯 쑤욱 자국이 남아서 숙면을 방해했다. 출장지에선 늘 깊은 잠을 못 자는 편이었는데, 낮에는 물리적으로 시달리고 밤에는 심리적으로 눌리는 중에도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낮에 만나는 상쾌한 공기와 서로를 배려하는 사람들의 다정함 덕분이었다. 


가장 심한 오프로드는 시에라리온에서 만났다. 프리타운에서 7시간을 달린 비포장 도로는 역대 최고 난도였다. 오프로드라고 하기엔 표현이 충분하지 않다. 1m마다 구덩이와 돌덩이가 나타난다. 연료통 2개짜리 4륜 구동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것 같은 험난한 길이었다. 도로 양 옆으로 발랑 뒤집어진 사고 차량들이 수시로 나타났다. 뒤집어진 차를 치울 생각이 없어서인지,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일부러 방치하는지 알 수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차들을 볼 때마다 제발 더 조심조심 운전해 주세요. 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어떤 거인이 도로 한가운데 바위를 집어던져 박아놓은 것 같은 말도 안 되는 길에선 오히려 헛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는데 차체가 덜덜 떨리는 바람에 내 웃음도 떨렸다.


아프리카 출장에서 야간 이동은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었지만 자칫 도로 사정이 도와주지 않으면 야간주행에 걸리기도 했다. 가장 운 나쁘게 걸렸던 나라가 하필 도로가 가장 험하고 가로등은 야박했던 시에라리온이었다. 해가 지기 전에 제발 프리타운에 닿기를 바랐지만 빨리 가고 싶다고 해서 빨리 달릴 수 없는 도로 사정 때문에 차는 중간에 밤을 맞이하고 말았다. 장거리 이동 때는 주로 쿨쿨 잠들어 버리는 편인데 그때는 잠도 오지 않았다. 차라리 눈을 감고 있으면 겁이 났을 텐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프리타운에 도착하자 교통체증마저 감사할 지경이었다. 광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프리타운에 도착한 첫날 혼을 쏙 빼놓았던 아비규환의 도로 사정마저 정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차 안이 가장 더웠던 건 도미니카공화국이었는데 우리가 탔던 차량 에어컨이 고장 나는 바람에 40도 가까이 되는 날에 꽉 끼어 앉은 서로의 열기까지 견뎌야 했다. 그래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 모든 구성원의 합이 좋았던 출장이라 차 안에서도 가장 많이 웃었는데 한 명이 웃으면 원하지 않아도 옆 사람의 진동이 내게 전달되는 바람에 저절로 웃음이 났다. 


하나씩 적어보면 길 위에서 특별한 기억을 많이 모았다. 그저 어디론가 가는 시간일 뿐인데 이렇게 특별한 기억이 될 줄 그때의 나도 몰랐다. 그러니까 목적지에서 뭘 했느냐만큼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도 중요하다. 이동은 생각보다 길고 오래 기억에 남으니까. 무엇이든 어디에서든 절정은 짧고 대부분의 시간은 과정과 이동에 속한다. 오늘도 과정이고 내일도 여정이다. 그 안에서 즐기는 방법을 많이 터득할수록 실망이 적은 인생이 되지 않을까. 요즘 밤산책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더 깊어졌다. 애초에 산책이란 걷고 있는 과정 자체가 목적이니까. 


사는 것도 그렇게 좀 해 보자. 목적지만 보면서 조급해하지 말고 긴장 풀고 길 위의 시간도 즐겨보자. 길 위에서 모은 기억을 즐겁게 돌아보는 오늘처럼, 언젠가 걸어온 길을 행복한 추억으로 돌아볼 먼 미래의 나를 위해 지금 걷는 길을 즐겨보자. 거친 오프로드의 기억들도 결국 다 좋았잖아. 그러니까 어깨좀 풀고 발걸음에 리듬을 실어 룰루랄라 걸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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