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화가 보고 싶은 날은 정말로 그 영화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경우와, 근심 걱정이 많아 잠시 내려놓고 정신을 다른데 쏟으려는 경우 두 가지로 나뉜다. 후자의 영화를 볼 때 주로 선호하는 것은 지브리 애니메이션이다. 시간상으로도 2시간을 넘는 경우가 없고, 플롯이 과도하게 복잡하지 않으며, 마지막은 분명 해피 엔딩일 것이다. 그림과 음악이 아름다운 것도 한몫한다. 보통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몇 번이고 돌려 본다. 그러다 얼마 전에 <천공의 성 라퓨타>를 보았는데, 그게 무척 마음에 들어서 지브리의 초기 애니메이션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제는 1989년에 제작된 <마녀 배달부 키키>를 보았다. 재미의 측면에서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약간 갸웃하는 면이 있지만, 묘하게 마음에 남는 점이 있어서 기록해 두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이 시작하자마자 '마녀의 피를 물려받은 여자 아이는 13살이 되면 독립하여 다른 마을에 정착해야 한다'는 설정이 훅 들어온다. '키키'는 아직 빗자루를 타고 나는 재주밖에 없는 초보 마녀지만 열세 살이 되어 검은 고양이 '지지'와 함께 고향 마을 떠난다. 키키가 고향 마을을 떠나 정착을 시도하는 '코리코 마을'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위치한 큰 마을이다. 자동차도 많고 트램이 다니며, 대형 마트 같은 것도 있다. 낯선 마을에서 키키는 친절한 빵집 부부의 도움으로 방 한 칸을 얻는다. 그리고 날 수 있다는 장점을 이용해 일종의 택배업(?)을 시작한다. 날아다닌다 한들 배달 일은 고되다. 부탁받은 물건을 떨어 트리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에 흠뻑 젖기도 한다. 본의 아니게 노동자의 고단함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키키의 마음에 그늘을 드리우는 일은 따로 있다. 키키가 마녀이기에 앞서 열세 살 여자아이라는 점이다. 또래 아이들이 화사한 옷을 입고 친구들과 시끄럽게 어울리는 동안, 키키는 마녀의 복장인 검은 옷 한 벌로 지내야 한다. 화려한 구두에 끌리지만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대하는 남자아이에게 쌀쌀맞게 굴다가, 그의 친절함에 마음이 풀렸다가, 그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에 문득 얄미워지는 그런 나이다. 그런 와중에 직업에 대한 고민 - 에 더해 생계에 대한 고민 - 도 함께 해야 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런 불안한 마음은 키키의 마력이 약해져서 날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엄마가 물려준 빗자루도 부러지고, 고양이 지지와도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게 된다. 이쯤 되면 키키는 마녀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평범한 열세 살 여자아이의 삶을 살아가는 게 더 행복한 것은 아닐까 싶어 진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키키의 유일한 재능은 '하늘을 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재능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 특별하다. 키키의 친구가 된 톰보가 처음 키키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키키가 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톰보는 자전거에 프로펠러와 날개를 달아서 날아 보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나타난 비행선의 존재에 감탄하고, 비행선에 타보고 싶어 한다. 다시 말해, 날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뿐인가. 숲에 사는 화가 우르슬라는 키키가 나는 모습에 영감을 받아 멋진 작품을 그린다. 막상 키키는 나는 것 외에 다른 재주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얼마나 굉장한 재능인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 내내 안타까웠다.
엔딩에 이르면 지브리 애니메이션답게, 키키는 마력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대신 결국 친구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슬럼프를 이겨낸다. 마녀로서 자리 잡기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고향의 가족들에게 편지로 안부를 전하며 이런 말을 남긴다.
가끔 우울하기도 하지만, 나는 괜찮습니다.
키키가 마냥 행복한 소녀 거나 완벽한 마녀가 아니어서 응원하게 된다. 키키의 모습에 나의 모습과, 자신의 자리에서 분투하는 여자 친구들과, 후배들의 모습을 겹쳐 보게 된다. 가끔 우울하기는 해도 우리는 서로의 '비행'에 감탄하는 사이니까. 그러니까 괜찮다고, 몇 번이고 다독여 주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