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 이해'라는 영역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덕분에 오랜 시간 동안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한 철학이나 문학에도 기웃대었고, 뇌과학에도 흥미가 있으며, 심지어 점성술에도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 그렇게 내면을 파고들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나의 외면에는 정말 관심이 없구나, 하고. 옷장에는 무채색과 베이지색의 옷이 한가득이다. 옷을 사러 야심 차게 매장에 가면 옷을 입을수록 내 몸의 단점만 자꾸 눈에 띄어서 결국 아무것도 못 산 채로 돌아오곤 한다. 화장품도 몇 년 전에 산 건지 모를 색조 화장품을 영원히 쓰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도 그중 뭐가 나에게 어울리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다. 그래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는 퍼스널 컬러 진단이다.
포털에서 '퍼스널 컬러 진단'을 검색해 보면 뜻밖에 관련 업체가 수두룩하다. 그중에서 어떤 곳이 괜찮은 곳인지 알 수는 없다. 일단은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 중 리뷰 수가 충분히 많고 평이 좋은 곳으로 가보기로 했다. 퍼스널 컬러와 골격 진단을 받아 보려고 했는데, 최근 침착맨 유튜브에 퍼스널 컬러 진단 편을 보고 흥미가 생긴 남편도 함께 받기 위해 퍼스널 컬러 진단만 신청했다. 우리는 둘 다 극히 내향적인 사람들이고 특히 처음 가는 매장 같은데서는 정말 무뚝뚝한 편이라, 우리를 진단해 주시는 컨설턴트 분이 너무 힘들어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다행히 컨설턴트는 전혀 어색한 티를 내지 않고 프로답게(?) 응해 주셨다.
처음에는 퍼스널 컬러가 무엇인지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 색색의 천을 얼굴 가까이 대어 보면서 어떤 색조와 명도와 채도가 어울리는지 점검하기 시작했다. 먼저 남편부터 진행했는데, 사실 나는 옆에서 봐도 잘 모르겠더라. 보다 보니 어떤 색은 분명히 어울린다 싶기도 했지만, 컨설턴트가 이 색을 대면 안색이 어때 보인다던가, 다크서클이 어때 보인다던가 하는 말을 해도 거의 차이점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진단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나 자신이기 때문에 더더욱 더 모르겠달까. 그런 데다가 컨설턴트의 말은 무척 빨랐고,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다 보니 발음이 뭉개지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TV를 보지 않기 때문에 연예인 이름을 언급할 때도 대체로 그게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대략 한 시간 만에 진단을 끝낸 컨설턴트는 진단 용지를 내밀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마 퍼스널 컬러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패션과 미용에 관심이 많고, 연예인들의 이름과 이미지를 훤히 꿰고 있는 사람들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눈썰미가 좋거나 그런 친구와 함께 가야 훨씬 재밌게 진단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어쨌거나 퍼스널 컬러 진단 결과 내 베스트 타입은 겨울 딥이었고, 세컨드는 겨울 브라이트, 최악은 가을 뮤트였다. 화려하고, 글로시하고, 글리터하고, 대비감이 분명하고, 큼직한 액세서리나 무늬가 어울린다고 한다. 노란색, 갈색, 코랄, 이런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솔직히 뜻밖이었다. 그런 화려하고 대담한 이미지가 나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므로 시도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흑백의 대비가 분명한 것은 제법 나에게 잘 맞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유독 정장이나 포멀 한 옷차림이 잘 어울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안경을 쓸 때도 아예 테가 까맣고 두께감이 좀 있는 게 나아 보였다. (정확히 사감 선생님 룩이다.) 그밖에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나와 어울릴 거라고 하는 저 색감이 나의 얼굴이나 몸에 얹혔을 때 어떻게 보일지 짐작도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퍼스널 컬러 진단 후 후유증이 생겼다. 첫 번째는 내 퍼스널 컬러와 맞지 않는다고 했던 색의 옷이나 머리색이 너무나 우중충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왜 저런 색감의 옷만 잔뜩 있나 싶은 옷장을 보며 한숨이 나온다. 천년만년 쓰고 있던 색조 화장품들도 전부 다 갖다 버려야 되게 생겼다. 그러다 보니 두 번째 후유증이 자연스레 따라오는데, 쇼핑이다. 이걸 사다 보니 저것도 사게 되고, 마침 이것도 할인 중이고, 어차피 뿌리 염색할 때가 되었으니 하는 김에 그냥 전체 염색을 해야겠다며 미용실 예약까지 했다. 그런 식으로 야금야금 돈을 쓴 후 정리해 보니 제법 큰 비용이 나갔다. 아마 조만간 남편과 쇼핑몰에 가서 어울린다고 했던 색의 옷을 입어 보며 정말인가 의심하고, 그중 몇 벌은 지르기도 할 것이다. 과연, 나의 외면에 관심을 기울이는 일에는 내면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드는구나. 그래도 평생 쳐다도 안 볼 것 같던 색상을 보며, 그 색을 걸친 나를 상상하는 일은 확실히 흥미롭다. 다음에는 골격 진단을 받아볼까, 아니면 메이크업 수업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