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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을읊다 May 26. 2024

강화도에서

전등사 남문을 빠져나오면서 내내 고민했다. 이 근방에서 점심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동막 해수욕장 근처에 있다는 로컬 맥주 브루어리에 가볼 것인가. 지도 앱에서 살펴보니 브루어리 방면으로 가는 버스는 몇 시에 도착한다는 말은 없고, 그저 '긴 대기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 '긴 대기 시간' 이후에 버스를 타면 그래봐야 30분도 안 걸릴 거리였다. 우선은 버스 정류장에 가보기로 했다. 버스가 금방 올지도 모를 일이니까. 하지만 버스 정보를 알려주는 전광판에 의하면 대략 2시간 후에나 버스가 출발할 예정이었다. 고민이 좀 더 깊어졌다. 배가 고프다. 점심시간의 한가운데였다. 그냥 근처 아무 데나 가서 밥을 먹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택시를 타고 브루어리에 가보기로 했다. 강화도에 언제 다시 오게 될지 알 수 없으니까.


택시에 타자마자 습관적으로 기사님에게 인사를 했는데, 기사님은 스피커폰으로 통화 중이었다. 통화가 끝난 후에는 라디오도 음악 소리도 없이 내내 고요했다. 택시는 구불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렸다. 이제 막 모내기가 끝난 논이 드문드문 나타났다. 어느 구간에서는 그런 논이 지평선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렇게 너른 평야를 본 건 정말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게 KTX를 타고 부산으로 내려가던 때였는지, 남편의 외조부상 때문에 진도까지 차를 타고 가는 머나먼 길에서였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그게 언제였더라, 하고 고민하는 사이 이내 평야는 지워지고 택시는 마니산 능선으로 올라섰다. 흐린 날이었고, 안개인지 구름인지 모를 것이 산을 감싸고 있었다. 굽이진 길에 느리게 가는 차 뒤로 바짝 붙어 가는 일이 반복됐다. 그런 차는 이내 어느 TV에 나왔다는 밥집, 혹은 펜션 방향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러고 나면 한동안은 속도를 낼 수 있었다. 산길이 끝남과 동시에 동막 해수욕장이 나타났다. 말이 해수욕장이지 이때껏 본 적 없는 거대한 갯벌이었다. 해변에서는 어린아이가 하늘색 플라스틱 양동이를 들고, 저런 걸로 정말 조개를 잡을 수 있을까 싶은 작은 삽으로 바닥을 파헤치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들은 마치 바닷물이 다시 여기까지 들어오길 기원하는 듯 보였다.


해변길을 따라 3, 4분을 더 가자 브루어리에 도착했다. 브루어리는 공사 중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기사님께 아무래도 영업을 안 하는 거 같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래도 안에서는 영업을 할 수도 있으니 가서 한번 물어보시라는 답을 들었다.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고 택시에서 내려 마당에서 공사 중인 인부들에게 다가갔다. 마침 눈이 마주친 인부는 금발 백인 아저씨였다. 굴하지 않고 한국어로 안에 영업 안 하느냐고 물었다. 금발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두 팔로 엑스자를 그려 보이며 다시 한번 안 하느냐고 물었다. 아저씨도 두 팔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이며 안 한다고 한국어로 답했다. 나는 고마울 일도 없으면서 감사하다고 답하고 다시 택시로 돌아갔다. 택시 기사님은 빙긋 웃으며 이제 어디로 가실 거냐고 물었다. 나는 온수리 성공회 성당으로 가자고 답했다. 이미 전날 갔던 곳이지만, 어차피 길을 헤매야 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택시는 왔던 길을 유턴해서 달렸다. 다시 뻘밭을 지나고, 산등성이를 넘고, 논이 끝없이 펼쳐진 평야를 지났다. 배가 무척 고팠다.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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