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토르 이야기
최근, 50일 넘게 이어지고 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창밖 빗소리가 bgm처럼 들린다. 수도권 최장기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2020년 여름 장마는 많은 인명피해와 산새태를 동반하고 있다.
#이_비의_이름은_장마가아니라_기후위기입니다.
그와 동시에 다시 주목받고 있는 기후위기 이슈. 그리고 위기 속 가장 큰 피해자는 '빈곤 계층'이란 말과 함께 대두된 '사회 불평등'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보며 지난해 4월에 다녀온 '몽골' 출장이 떠올랐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로 향한 출장. 몽골에서도 세계적 기후위기 중 하나인 '미세먼지'가 극심하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미세먼지에 휩싸인 도시빈민들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 기관이 하고 있는 일들을 취재하는 것이 미션이었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우리나라의 어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길게 늘어선 고층 빌딩, 백화점, 회사 , 도로 위 빽빽한 자동차들까지.
도시 외각으로 향할수록 이글루 집처럼 생긴 특이한 모습의 몽골 전통 가옥이 보이는데, 바로 '게르'이다.
3평 남짓한 동그란 게르 안에는 약 6~7명의 식구들이 함께 생활한다. 이 좁은 곳에서 어떻게 살까 싶지만, tv도 있고 침대도 있고, 삶에 꼭 필요한 가전과 가구들이 게르 안에 촘촘히 배치되어있다. 그리고 게르 한가운데 옛 영화에서나 보았던 화로가 놓여 있다. 나무나 석탄을 태워 열기를 내는 화로. 이것이 게르 안의 유일한 난방시설이자 불을 얻는 도구이다.
"도시의 부자들은 아파트에서 살아요. 아파트는 전기보일러도 있고 난방 시설도 잘 되어 있어서 이렇게 땔감을 때우지 않아도 되죠. 하지만 Gene(나의 영어 이름)도 본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게르에서 살고 있어요. 겨울이 긴 편이기 때문에 오랜 기간 석탄을 떼다 보니 연기도 나고 냄새도 나죠. 많은 아이들이 기관지 질병을 앓는 이유이기도 해요." 현지 동료 직원 데기(Degy)가 옆에서 설명을 해준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이, 몽골의 겨울은 매우 춥고 건조하다. 겨울에는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간다. 10월부터 4월까지 계속되는 긴 겨울을 나기 위해 화덕은 필수이다. 겨울이 끝나도, 요리를 하고 음식을 해 먹는 일상에서 불이 필요하기에 화로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몽골 시내를 자욱하게 메우는 미세먼지의 주범이
바로 이 화로라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취재 중에 만난
14살 중학생 소녀 투메(Tumee)는
너무나 가슴 아픈 말을 했다.
"선생님, 그거 아세요? 우리는 냄새로 서로가 어디에 사는지 알아요. 한 교실에서 같이 공부해도 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게르에 사는 친구를 구분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땔감 냄새'예요. 땔감을 태우면 연기랑 냄새가 나잖아요. 머리랑 옷, 가방에 깊게 배어서 씻어도 사라지지 않아요. 아무리 깨끗하고 예쁜 옷을 입고 있어도 냄새를 맡으면 다 알 수 있어요. 신기하죠?"
가난의 냄새는 짙게 남아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새긴다.
한 공간에서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세상의 희망을 배우기도 전에
가난을 마주하게 한다.
게르에 살며 석탄이나 나무를 때우는 집은 그나마 다행인 편이다.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형편인 사람들은 쓰레기를 주워다가 태운다고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5~10km 떨어진 외곽에 있는 '쓰레기 산(Trash dump)'이 그 중심지라는 말에, 우리 일행은 차를 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구불구불 게르촌을 지나서 언덕을 따라 달리다 보니, 회색빛의 커다란 언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까만 나무처럼 보이던 것들이 모두 쓰레기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곳은 시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처리장 같은 곳이다. 몽골에는 아직 쓰레기 처리 및 재활용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다 보니, 모든 쓰레기가 이곳에 켜켜이 쌓여있다. 도시 빈민 중에서도 가장 극빈층인 사람들은 이곳 근처에서 살며 쓰레기를 주워다가 연료로 태운다고 한다.
차에서 내려 잠시 바라보다 매캐한 연기 냄새와 먼지바람에 눈이 따가워서 금세 차로 몸을 숨겼다.
경제적 격차는 사는 곳뿐만 아니라,
겨울을 나는 방법도 바꾼다.
'에너지 불평등'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는 건
많은 몽골 사람들과 청소년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조금씩 변화를 위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우리 마을은 공기오염이 너무 심각해요. 하지만 이건 우리가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큰 문제예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해야 해요. 2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쓰레기 문제예요. 마을에 쓰레기 통도 없고 분리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쓰레기가 쌓여요. 두 번째는 오물 문제예요. 모든 집에서 사용한 물을 길가에 그냥 버려요. 땅 속에 스며든 오물은 냄새가 심하게 나고 유해한 질병들도 함께 생기기 쉬워요. 깨끗한 마을을 만들기 위해 우리부터 노력해야 해요." 중학생 답지 않은 투메의 똑 부러진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도시를 가득 메운 미세먼지, 일상의 터전을 앗아가는 홍수와 생명을 메마르게 하는 가뭄 등. 기후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작 이 글을 쓰는 나는, 하루에도 2~3잔의 커피를 사 마시며 일회용 컵과 빨대를 소비하고 있기에 참으로 부끄럽지만(...커피를 줄이자!)
게르촌의 한 가정을 방문했을 때, 2살 남짓한 아기를 만났었다. 꼬물꼬물 작은 속이 귀여웠던 아기는 낯선 손님인 내 손을 꼭 쥐고 작은 발로 총총히 따라 걸었다.
아이의 이름은 보자(Bojaa).
'빛나는 행복'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미래에는
미세 먼지가 걷히고 햇살이 비추길,
그래서 이름처럼 빛나는 행복을 누리고 살 길.
꼬옥 쥔 손에 간절한 바람을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