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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ad Feb 23. 2020

마지막이지만 지금 여기 우리

집으로 친구들을 초대해 요리를 해줬다. 시은의 계획이었다.  친구들을 같이 만날 때도 나를 포함해 세 명 이상은 잘 만나지 않는데 모이기 전부터 걱정이 앞섰다. 사람이 너무 붐비면 앉을 자리도 없을 테고, 공용 공간에서 시끄러우면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나는 한두 명만 초대하고 싶었건만 결국 모인 건 네 명이었다. 모두 우리에게 소소하고 큰 도움을 주고, 외로움을 덜어주고 잘 챙겨준 친구들이었다.

재료를 사서 주방에 들어섰을 때 이미 집에 사는 세 명의 다른 사람들이 요리를 거하게 하고 있었다. 다 같이 감자를 튀기고, 고기를 굽고 야채를 볶아 그들의 햄버거를 만들었다. 우리는 식탁 한구석에서 재료를 다듬으며 저 친구들이 오늘 파티를 하지는 않겠지 걱정했다. 그리고 알엘리와 곤조, 이반과 도포르토에게 다급하게 문자를 했다. 최대한 천천히 오라고. 머리가 아팠다. 나는 사실 이런 상황을 예견했고 걱정했다. 걱정이 너무 많아 늘 어지럽다.

처음에 나와 같이 혼란스러워하던 시은은 그 친구들이 각자 방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면서 우리의 공간이 생기자 가벼운 마음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나 이제 재밌어지기 시작했어. 언니, 너무 걱정 하지마. 우리가 주눅들 필요 없다고.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 내 표정에서 무한한 걱정이 드러나는 모양이었다. 일을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온 곤조가 제일 먼저 집에 도착했다. 나는 마늘만 까고선 부산스러운 주방을 시은에게 맡기고 곤조와 함께 나가 맥주를 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몰랐다 하면서 변명 비슷한 걸 늘어놓았다.

돌아오니 시은은 요리를 거의 끝낸 모양이었다. 마늘과 고추기름을 내 간장을 졸여 만든 볶음밥, 소시지와 피망, 양파를 잘게 썰어 케첩으로 양념한 소시지 야채 볶음. 그리고 대망의 라따뚜이. 가지, 치즈, 호박 그리고 토마토를 모양새 좋게 냄비에 가득 담아 약한 불에서 졸여냈다. 오븐이 고장 났지만 시은은 역시 요리에 재주가 있었다. 맛있게 만든 것 같아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며 내가 뭘 하려 하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언닌 물 한 방울도 묻히지마! 하면서. 오늘 마지막 날이니까 친구들이랑 기분 좋게 놀라고. 혼란스럽던 마음에서 걱정이 조금씩 덜어지기 시작했다.

곧이어 알렐리가 도착했고, 도포르토와 이반도 작은 캔 12개의 맥주를 한박스 가져왔다. 다 모이자 거짓말처럼 사람들이 주방에서 각자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있던 의자는 네 개 밖에 없었지만, 집 구석구석 찾아보니 자그마한 의자가 곳곳에 있어 다행히 모두 한 식탁에 둘러앉을 수 있었다. 요리를 식탁 한가운데 올려두고 각자 먹고 싶은 만큼 덜었다. 친구들에게 대접하는 자리니만큼 많이 먹고 싶었지만 조금씩만 접시에 올렸다. 라따뚜이가 굉장했다. 집에 가서 또 해줘야 해, 하면서 나는 맛보는 정도로만 만족했다. 모두 맛있게 먹었다. 제대로 된 한식을 대접한 건 아니었지만, 시은의 요리 솜씨 덕에 냄비에는 밥 한 톨 남아있지 않았다.

밥을 다 먹고선 나는 방으로 잠깐 올라갔다. 멕시코에 가져온 외장하드 케이블을 잃어버렸는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 주변에 물어봤더니 도포르토에게 같은 게 있었다. 그가 가져와 준 케이블로 여기서 찍은 사진을 모두 백업받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맥주를 한잔했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나 어딘가 허했던 걸까. 나는 방으로 돌아와 한참 나가지 못했다. 사진을 옮기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러다, 오늘은 이 친구들을 만나는 마지막 날일 텐데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싶어 마음을 잡고 내려갔다. 주방엔 아무도 없었다.

친구들은 모두 바깥에 나가 장작불 둘레에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집에 사는 다른 사람들도 마침 파티를 하던 차라 바깥에 크게 음악을 틀고 모두 어울리고 있었다. 우린 없어도 되겠다, 싶을 만큼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게 이 친구들과 우리가 가까워질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을까. 나도 시은도 생각 외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들에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건지 이 친구들을 만날 때면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고 쌀쌀해서 금세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셨다. 무슨 대화를 했던 걸까. 나는 눈꺼풀이 무거웠다. 다음날 일을 가야 하는 도포르토와 종일 수업을 듣고 온 알엘리도 피곤해 보였지만 아무도 집에 가지는 않았다. 열두 시가 다 되어갔다. 집에 있던 맥주는 동이 났고, 마트에서 사 온 위스키를 조금씩 마셨는데 곤조는 아무래도 급하게 마신 모양인지 금세 취해버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스페인어로 하는 친구들에게 시은은 우리 집에선 스페인어 금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피곤해지는 게 당연하다. 강단 있게 말하는 그 애를 보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집에선 영어랑 한국어만 쓸 수 있어. 하자 친구들은 약간의 당혹감과 미안함을 보이면서 맞는 말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다 갑자기 살사를 추게 됐다. 쿠바에서 살사 학원을 가 보고 싶었는데, 그때 시은이 자기 친구들에게 배우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 친구들과 가까워지고 나니 왠지 춤을 배우기가 부끄러워져서 미뤄왔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멕시코 노래를 틀고 먼저 곤조와 알엘리가 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포르토가 시은에게 스텝을 알려주고 나는 남아있는 이반에게 끌려나갔다. 살사는 서로 손을 맞잡고 발을 굴리며 리듬을 느끼는 춤이다. 나는 춤을 굉장히 못 춘다. 이반의 몸짓을 어정쩡하게 따라 했는데 마치 부모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칭찬하듯 내가 조금만 잘 따라 해도 이반은 너무 잘 춘다며 탄성을 냈다. 그 애가 그렇게 북돋아 준 덕분인지 내 뻣뻣한 몸은 내 의사와는 달리 조금씩 자연스레 움직여지고 있었다. 손을 맞잡고 어색하게 리듬을 타는 게 금세 즐거워졌다. 결국 멕시코에서 살사를 한 번은 추고 가는구나, 친구들과 함께.

다음날도 다시 만나기로 한 알엘리가 택시를 잡아 집에 간 뒤, 약간의 적막이 찾아왔다. 그 새를 틈타 나는 친구들 사진을 찍었고,  그들에게 올해 새로 시작한 <지금 여기 우리> 작업에 대한 글도 받았다. 도포르토는 취해서 기괴한 그림을 그려냈고, 곤조는 취하기 전에 아주 긴 글을 스페인어와 영어로 꼼꼼히 써준 터였다. 과나후아토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 더 정이 든 이반은 뭐라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지만 너를 만나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고 행복했다는 걸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그 애는 산만 한 덩치로 자꾸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와 헤어질 때 보통 나는 보통 더 슬퍼하는 편이다. 정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늘 힘들었다. 성격을 좀 고치고 싶었다. 사랑하는 건 대체 좋은 게 뭔가. 이렇게 늘 아프기만 한데. 그런데 이 친구들과 헤어지는 순간에는 그와 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난 어차피 곧 떠날 사람이고 언제 만날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서인지 온전한 감정을 쏟지 못했던 것도 같다. 멕시코에 와서 이런저런 일들로 내 마음이 마냥 편치 않았던 것도 있었고. 그런데 이들이 주는 마음을 보고 있자니 자꾸 마음 한구석이 뭉클하고 미안해졌다

음악을 하는 도포르토와 이반은 최근 이탈리아 음악 감독을 만났다며, 아시아 투어를 간다면 한국에서 꼭 보자고 이야기했다. 이들과의 기약 없는 헤어짐이 슬프지 않은 건 내가 정을 덜 주었기 때문일까, 혹은 언젠가 만나리라 믿고 있기 때문일까. 정을 버리고 살 수 있게 해주세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해주세요라고 다짐했던 날들이 현실이 된 걸까. 앞으로 만날 이들과의 관계에도 내가 마음을 다 쏟지 못한다면, 정말 사랑이 없는 삶은 행복할 수 있을까.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생각하며, 어두컴컴한 새벽에 떠나는 이들을 한명 한명 마음을 다해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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