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데이 에세이 30. 생리
10월에 출산 예정인, 이제 배가 꽤나 불룩해진 친구가 있다. 몸이 무거워져서 힘들겠다는 카톡을 했는데, 그 친구가 이런 대답을 했다.
"임신을 해서 가장 좋은 점은 생리를 안 한다는 점이야"
몸이 무거운 친구한테 이런 위로를 받다니 이상했지만, 마침 오랜만에 생리통에 주말 내내 집에 꼼짝 않고 있던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생리에 대해서는 한쪽 성밖에 공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김훈의 '언니의 폐경'이 그 문학성에도 불구하고, 여자들에게 꽤나 비판을 받았었는데, 그건 생리를 마치 오르가슴처럼 표현한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혈이 많을 때 울컥 쏟아져 나오는, 소위 말하는 '굴'낳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소설과 같은 '뜨겁게 밀려 나온다'는 표현보단 정말 불쾌한 느낌이다.
생리는 여자들에게 참 애증의 존재다. 제때 안 하면 불안하고, 하면 짜증 난다. 단순히 그 생리 주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앞에 찾아오는 생리 전 증후군 등 한 달의 반은 생리와 관련한 호르몬의 변화가 날뛰곤 한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생리는 정말 지긋지긋하다. 나는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앓고 있어서, 어렸을 때부터 산부인과에 다녔다. 그 영향인지 컨디션이 안 좋거나, 좀 무리를 하면 하혈을 하기 일 수였고, 남들보다 주기도 길고, 양도 너무너무 많았다. 어느 정도냐면 보통 양이 많은 2일째는 하루 종일 오버나이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면 여자들은 어머 세상에, 남자들은 그게 뭔데 하겠지만...) 물론 내가 부주의한 편이기도 하지만, 혹시나 화장실 갈 타이밍을 놓치면, 생리양 때문에 피가 새는 경우도 빈번했다.
자주 실수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알 정도로 생리가 샜던 두 번의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중학생 시절의 기억이다. 그때가 아마 할머니 49재였는데, 옅은 색 반바지를 입고 원불교 교당에 갔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놓쳤다. 아마 처음 가보는 종교적 분위기에 압도당했던 것 같기도 하고, 생리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창피했었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되어서 앞으로 나가 절을 했는데, 절을 끝내고 자리에 돌아오자마자 아빠는 꽤나 화나 보였다. 의아해하고 있을 때 큰엄마가 헐레벌떡 나한테 와서 본인 카디건을 둘러주었다. "아이고.. 뒤에.. 아이참.. 그게 샌 거 같아."
하, 황급히 화장실에 가서 살펴보니, 갈색 생리혈 자국이 엉덩이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렇게 피 얼룩이 묻은 채로 엉덩이를 삐죽 내밀고 절을 했으니 아빠가 꽤나 당황했었던 것 같다. 그날 엄마가 잠깐 몸이 안 좋으셔서 참석을 못했었는데, 아빠가 나중에 엄마를 질책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아빠에겐 생리란 것 자체가 뭔가 말할 수 없고, 보여서는 안 될 것을 보인 큰 실수라고 생각하신 듯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생리라서 화장실에 가겠다 또는 그 생리를 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두 번째는 성인이 된 후다. 외근을 나갔다가 중요한 회의에 참석했는데, 격론이 길어졌고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놓쳤다. 그러다가 싸한 기분에 바지를 보니, 꽤나 심하게 생리가 샌 상황이었다. 심지어 의자에도 묻어있었다. 같이 외근 갔던 40대 남자 차장님께 몰래 양해를 구하고 회의를 중간에 빠져나왔다. 공중 화장실에서 피 묻은 바지에 급하게 물로 자국을 지웠다. 다행히 진한 바지를 입어서 티가 많이 나진 않았지만 꽤나 끔찍한 기억이지만, 다행히 남자 차장님이 웃으며 넘기고, 걱정해주는 정도로 마무리됐다. "생리가 00 씨 잘못도 아닌데요."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건 모두 내 부주의로 발생한 실수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시간이 지나면서 생리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있었고, 문제를 해결할 때 이게 잘못이 아니라 실수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물론 어른이 되어 좀 더 뻔뻔해진 것일 수도 있지만, 이는 사회적 변화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생리는 굳이 감춰야 하거나 창피한 것이 아니라 생리를 생리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대표적으로 생리대 광고가 바뀌었다. 생리대 광고임에도 '매직' '그날' 등 우회적인 표현을 쓰고, 생리 주기를 티 내지 않고 평소처럼 활기차게 행동해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또 심지어 생리대가 잘 흡수된다는 것을 표현할 때도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 물로 그 흡수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젠 그런 금기가 깨지고 있다. 생리를 생리라 표현하고, 빨간색이 등장했다. 깨끗하고 맑게라는 슬로건보다는 여성의 몸의 변화를 인지하라는 것이 메인 슬로건이 되었다.
또 생각해보면 TV에 나오는 딱 달라붙는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아이돌이나 예능에 많이 나왔던 수영장 에피소드에 나온 출연자들 중에 누구 한 명은 생리 중이었을 텐데 그들은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변화가 보인다. 전현직 여자 스포츠 선수들이 출연하는 '노는 언니' 프로그램에선 얼마 전 여자 선수들의 생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시합날 또는 연습 중 겪게 되는 몸의 변화와 또 생리대, 생리혈을 숨겨야 하는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많은 여자들이 공감할 수 있었다. 이는 유튜브의 발전과도 많이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많은 유튜버들은 자신의 사생활을 콘텐츠화한다. 그 속에 생리는 당연히 이야깃거리가 될 수밖에 없고, 수군거리던 이야기들이 당당히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물론 아직도 생리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닫혀 있는 부분이 있다. 대표적으로 여자가 예민하면 "너 생리해"라는 식의 비꼬는 어법을 쓰는 경우가 있다.
이게 진짜 너의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걱정된다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 예민하고, 섬세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생리라는 여성들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비꼬는 말이다. 또한 생리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을 배려할 생각보단, 평가 대상으로 여기고 가볍게 생각하는 편견도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생리는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여자의 삶에 굉장히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정리하면서 우스갯소리로 여자들이 싫어하는 것이 남자들의 군대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데 남자들에게 군대란 개인별로 다른 고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공감할 수 있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에, 좋은 얘기 소재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이야기는 다른 쪽의 공감대를 사기 어렵기 때문에 자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일 뿐이다. 사실 대부분의 여자들도 생리 이야기를 하면 한 세월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남자들의 군대 얘기처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기 보단 사회적으로는 해서는 안 되는 분위기라서 못하는 것일 뿐이다. 웃긴 상상이지만 언젠간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가 여자들이 생리 이야기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그 정도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있길 바란다.
출처 :
https://m.khan.co.kr/view.html?art_id=202005281109002#c2b
https://www.yna.co.kr/view/AKR20170803152600797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6272
먼- 데이 에세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