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 『처음 읽는 프랑스 현대철학』, 147-73.
롤랑 바르트(R. Barthes, 1915-1980)는 프랑스의 비평가이다. 그는 문학을 중심으로 많은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구조주의자인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호론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유를 확장하였다. 그의 관심사는 문학을 넘어 사진, 영화 등 대중문화까지 이어졌으며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면에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들춰내는 데에 관심하였다.
바르트의 생애
그의 특별함은 삶과 이론,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을 구분하지 않은 특성에 있다. 하여, 그의 사유와 지적 발전의 궤적을 살펴보려면 그의 삶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바르트는 첫 돌이 되기 전에 해군 중위였던 아버지가 전사하여 유년 시절을 어머니, 할머니, 이모의 품에서 자랐다. 그가 살았던 지역은 프랑스 남부의 바욘(Bayonne)이라는 작은 시골이었다. 바르트의 어머니는 교육을 위해 파리로 이주하여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그가 19세일 때 폐결핵이 발병하여 공부를 중단하고 2년간 피레네 산맥의 요양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후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소르본대학에 들어갔지만 폐결핵이 재발하여 7년간의 요양생활을 보낸다. 그리고 이 시기에 바르트의 지적 배경을 이루는 독서를 완성한다. 특히, 소쉬르의 기호론을 접하게 되어 기호론자 바르트가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학위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으로 진입하지는 못하였다. 다양한 지적 영역에서 독창적인 활동을 하였지만 정식 아카데미의 교수는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후 1976년, 62세에 동성애 파트너인 푸코(M. Foucault)의 추천으로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의 교수로 취임한다. 이듬해인 1977년 어머니의 사망은 그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슬픔을 사진론으로 승화시켜 쓴 책이 『밝은 방』이다.1 여기서 바르트는 사진의 푼크툼을 통하여 독자의 주관적 경험을 통한 정서를 표현한다.2 바르트는 이 푼크툼으로 어머니를 재회하는 엑스타시를 경험하지만 1980년 2월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겪고, 3월에 세상을 떠난다. 바르트의 죽음은 『밝은 방』에서 경험한 것과 달리 어머니를 상실한 슬픔을 이기지 못해 어머니를 따라간 것으로 여겨진다.
바르트의 육체적 삶
1)아버지
바르트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렇기에 그는 가부장적 권위를 경험하지 않았다. 또한 사유의 중심인 이성을 해체하는 데에 주력하는 모더니스트적 경향을 지닌 그는 아버지를 부드러운 중심으로 이해한다. 바르트에게 아버지는 어머니로 변형된 중심으로, 탈권위적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부드러운 중심이었다. 바르트는 어머니를 선함, 착함 등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엄격함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 양가성은 바르트의 사유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부드러운 사유이다. 이는 아버지의 부재로 어머니의 부드러움을 중심으로 형성된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바욘
바르트가 유년을 보낸 장소인 바욘은 바르트에게 추억의 장소이다. 그는 파리와 바욘을 비교하였다. 파리는 시끄럽고 쁘띠 부르주아의 이기적인 일상으로 가득한 곳이다. 바르트는 파리가 잃어버린 ‘냄새’를 바욘에서 찾고자 한다. 또한 바욘은 고유한 마을이며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마을이다. 이런 바욘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고독한 동시에 사방으로 열려 있는 장소라 칭한다. 이는 바르트 자신의 주체성이기도 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동시에 모든 곳에 속하는 경계선에서 부유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또한 바욘으로 가는 길 중 산길을 선호하였다. 산길을 통해 모든 것들과 감각적 교류를 하고 자신의 육체를 발견하는 모험을 하게 된다. 이 산길의 매력은 독서의 매력이기도 하다. 독서는 ‘목적을 지닌 독서’와 ‘욕망을 위한 독서’ 두 가지가 있다. 욕망을 통해 즐거움을 획득하는 경험은 ‘육체적인 것, ‘상상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아무도 소비하려 하지 않고 나와 대상 사이에서만 생성되고 경험되는 감각적 소통이다. 바욘의 산길에서 경험한 바르트의 즐거움은 독서를 통한 의미 생성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3)병
바르트는 폐결핵을 평생 앓았다. 이 육체적 사건은 바르트와 내밀한 관계를 맺어 그의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쳤다. 토도로프(T. Todorov)는 바르트의 지적 활동을 ‘카멜레온 같다’고 하였다. 그는 기호론, 일상문화비평, 문학비평, 회화, 사진, 영화, 음악 등에 이르는 전방위적 예술비평 등 자본주의 문화의 모든 영역을 섭렵하였다. 이는 자본주의의 비판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상품으로 소화시키는 자본주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기민한 전략이기도 하다. 즉, 하나의 이론이 시장에서 유행으로 자리하기 전에 새로운 이론의 패러다임으로 신속하게 이동한 것이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바르트는 프랑스 지성계의 중심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지만 병으로 인해 그 욕망이 좌절되었다. 때문에 바르트는 주류 학자들의 담론에서 거리두기를 시도하였다. 이런 엘리트적 욕망과 관련하여 바르트의 콤플렉스가 이해되기도 한다.
4)성정체성
바르트의 성정체성은 호모섹슈얼리티였다. 이 성정체성은 바르트의 부드러운 사유, 비폭력적 사유로 연결된다. 이는 동성애가 부드럽다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애가 본질적으로 폭력과 연관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해야 한다. 역사, 정치의 관점에서 이성애는 정상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생산력을 갖는 결혼제도로 직결되었다. 이렇게 동성애는 목적이 개입된 영역이 아니라 무목적적으로 내재한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더불어 바르트가 코드3로 지칭한 쁘띠 부르주아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코드적 이론으로 제시한 것도 동성애를 비정상적인 성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다. 부르주아 문화의 도덕적 폭력은 정상/비정상의 영역을 구분하려는 시도였기에 바르트는 이 동성애적 부드러움의 담론을 통해 저항하고자 한 것이다.
바르트의 지성적 삶
바르트는 “구조주의적 행위란 무엇인가?”라는 짧은 논문에서 자신이 걸어온 지적 과정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첫 단계는 ‘테러리스트의 시기’이다. 바르트는 소쉬르의 기호론을 프랑스 쁘띠 부르주아의 일상 문화 속으로 확대시켜 그 신화성을 드러내려고 하였다. 곧 이는 일상에서 문화로 구현되는 모든 영역(음식, 의상, 광고, 종교 등)이 자연현상으로 위장되어 변화가 불가한 고착된 문화 이데올로기를 기호론을 통해 비판하고 해체하려는 시도이다. 이 주제에 관련한 바르트의 글은 『신화학』 으로 출간되었다.4 두 번째 단계는 ‘기호 시스템에의 도취 시기’이다. 테러리스트 시기가 신화를 구축하는 코드를 폭파하려는 시도였다면 도취 시기는 역으로 코드체제에 스스로 도취된 작업의 시기였다. 이렇게 기호 체제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유희의 대상이 되었다. 바르트는 ‘분류의 즐거움’을 수행하며 코드에 대한 일방적인 비판을 중단하고 조직적인 분류를 통해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은 『모드의 체계』이다.5 세 번째 단계는 ‘기호와의 유희 시기’이다. 바르트는 이를 ‘에고이스트의 단계’로 명명하였다. 『밝은 방』에서 바르트는 이론적 언어와 표현적 언어의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표현하고 싶었지만 수행하는 과정에서 욕망이 실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 딜레마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글쓰기로 바르트적 표현 언어의 텍스트를 낳았다. 이 시기의 작업은 『기호의 제국』,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텍스트의 즐거움』 등이 있다.
바르트의 경력은 어머니의 죽음을 분기점으로 다시 나뉜다. 곧, 어머니의 죽음 이전에 세 단계가 있었다면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두 단계가 있다. 어머니의 생전에 바르트의 관심사가 욕망과 즐거움이었다면,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는 죽음 연민, 애도 등이 주요 관심사로 자리하게 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바르트의 대표적인 에세이는 『밝은 방』이다. 바르트는 여기에서 죽은 어머니와 재회하려는 애도 작업을 기록하였다. 바르트의 또다른 글쓰기는 『애도 일기』이다.6 이 기록은 일기라기보다는 사진적 글쓰기 혹은 푼크툼적 글쓰기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바르트는 보는 주체인 ‘나’와 보여지는 객체인 ‘사진’의 권력적 시선관계를 푼크툼의 관점에서 전복시킨다. 이렇게 탈주체적 사진체험이 일어나 나는 보여지는 객체가 되고 사진은 응시하는 주체가 된다. 그의 삶과 연관하여 보자면, 바르트의 기록은 주체성을 잃어가는 애도의 슬픔이 드러나는 것이다. 『밝은 방』에서 바르트는 사진 이미지의 인덱스(index, 흔적 이미지)적 시간성에 집중하여 사진 속에 존재하는 과거에서 어머니를 재회하는 엑스터시를 경험한다. 말하자면, 바르트는 이 단계에서 애도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그러나 『애도 일기』에서 바르트는 애도작업이 삶 속에서 끝내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바르트의 상실의 고통은 죽음에 대해 고심하였던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1 Roland Barthes, Camera Lucida: Reflections on Photography, trans. Richard Howard (New York: Hill and Wang, 1981[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 (Paris: Gallimard, 1980]).
2 바르트는 사진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경험을 스투디움(Studium)과 푼크툼(Punctum)으로 양분한다. 스투디움은 사진에서 공통된 심상, 작가의 의도 등을 파악하려 하지만 푼크툼은 독자의 주관적인 개별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양자는 상호관련적이다. 푼크툼은 스투디움을 해체 전복시키며 생성된다. 바르트는 이런 푼크툼을 이미지 체험이 아니라 존재론적 체험으로 이해한다.
3 바르트는 인간을 ‘기호적 인간’, 즉 대상과 자신 사이에 기호를 생산하여 그 의미를 상호 소통하는 존재로 보았다. 여기에서 기호와 의미가 형성되는 과정은 고정된 코드(규범)가 없다. 기호와 의미는 대상과 인간의 욕망 관계를 따라 생성된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기호와 의미의 생성이 차단된다. 기호를 통한 소통은 욕망의 표현이 아닌 지배와 권력의 위장이다. 이 코드 시스템을 해체 전복시켜 기호의 자유, 곧 본래적 의미 생성을 회복하는 행위를 ‘탈코드적 행위’라 부른다. 바르트의 다양한 글쓰기는 탈코드 작업을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이론적 실천 행위이기도 하다.(165)
4 Roland Barthes, Mythologies (Paris: Seuil, 1957).
5 Idem, Système de la mode (Paris: Seuil, 1967).
6 Idem, Journal de deuil :26 octobre 1977-15 septembre 1979 (Paris: Seuil : Imec, c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