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엄마로서 심리치료와 미술교육을 통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양육이론은 실제와 차이가 나는 부분도 상당수 있었다. 다행히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며 함께하는 체험 덕분으로 그 차이를 메워갈 수 있는 중이다. 더없이 감사한 일이다.
나는 일하고 공부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았다. 한창 직장생활로 바쁘고 아이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소원은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잠만 실컷 자는 것이었다. 공부를 하며 일과 양육, 세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다보니 에피소드도 참 많다. 어느날 대학원 수업시간에 책가방을 열어보니 책은 온데간데 없고 고구마와 귤, 그리고 과자와 함께 다 터져버린 요구르트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어찌나 화가나던지 그 때는 마치 아이들이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순간 원망섞인 말들이 방언처럼 입에서 튀어나오기도 했었다. 뒤늦게 요구르트 국물로 늘어붙어 버린 아이들이 직접 쓴 카드와 그림을 보며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엄마를 주려고 자기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엄마 가방에 모조리 채워넣었었나보다. 하필이면 요구르트가 터져버려서 결론이 새드앤딩으로 끝나버렸지만 말이다.
그 때 다니던 회사가 아동 출판회사였는데 회사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았던 때라 회사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조근와 야근은 당연한 것이었고 심각한 구조조정으로 모든 직원들은 일당백 정도의 업무는 기본이었던 그 시절 직장생활 한가지도 나에게는 버거운 시기였었던 것같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가장 미안했던 시간들이다.
엄마가 늦는 날이면 아이는아빠와 놀다가 이불도 제대로 피지 않은 방바닥에 그냥 잠들어있었다. 신생아부터 두아이의 목욕은 아이아빠가 담당해왔었다.아이들이 조금 크면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또 다른 힘든 일들이 발생하긴 매 한가지이다. 그래서 자녀양육은 끝이 없다고 했던가?
지금은 그 시절 마음 한 구석 못 처럼 박혀있던 나의 아이들과함께 할 수 있는 미술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땐 나의 원대한 꿈과 포부를 접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난이도가 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만방자함을 신께서 눈치채셨는지 하루하루가 난관이 아닌 날이 없었다. 그렇게 6개월 1년..시간이 흐르고 내 인생에서 지금의 시절이 없었다면 참으로 기고만장한 삶을 살았겠구나 싶다. 같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엄마들을 이해하게되는 계기가 되었고 어떠한 책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던 궁금증들은 수많은 아이들의 그림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터득하게되는 시간들이었다. 돈도 벌며 임상경험도 쌓고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 아닌가?
문득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볼때면 내 옆에 있어 주어서 그저 고맙다는 생각이 뿐이다.아이들이 있어서 힘을 내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
아무도 알아줄것같지 않은 힘든 시기에 자녀를 기르며 자기 계발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엄마들...
아이를 키우다보면 우리아인 왜그런건지 궁금할 때가 많다. 혹시 내가 더 많이 사랑해주지 못해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달라고 안해도 알아서 챙겨주시는 서비스같다.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는 마법같은 거울은 없다지만 조금이라도 아이의 마음을이해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굳이 심리라는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아이가 즐겁게 미술을 하다보면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융jung은 "어린이를 키우는 교육과정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지만 영혼을 살찌우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따뜻함"이다 라고 했다. 엄마와 형성된 유대감은 평생 아이의 정서상태를 결정한다.
우리 아이의 영유아기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 더 잘 키워보고 싶은 마음이다. 지금 힘들더라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기임을 기억하고 아낌없이 사랑해야겠다.
교수님이나 박사님들처럼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내용은 아니지만 미술교육현장에 있으면서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아동학과 심리치료의 관점에서 적어가려고 한다. 혹시누군가 단 한 사람에게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