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분가를 시작하다
한 번은 지옥에 있어보고 싶었다.
‘관사 못 들어가게 된 거니?
엄마 친구(목사)가 그러더라.
사람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이야.
더 좋은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합격통지를 받고 본청에 인사를 갔을 때
내가 입주 가능한 13평형 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분가를 바라던 내게 공무원 합격으로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했었다.
엄마 친구인 목사, 그분 말에 따라 나는 여전히 천국에 있었다.
첫 출근 일에 선임과 면담을 통해 관사 입주가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관사는 직급이 높은 순서로 배정되었다.
방은 있었지만 9급 신규 공무원에게 배정될 방은 없었다.
‘가능하면 금 주 중에 회사 근처에 집을 알아보세요.
곧 결산에 예산 편성에 바빠질 테니
매일 대전까지 버스로 출퇴근하는 것은…’
내게 입주 가능한 관사가 있다고 이야기한
선임은 말 꼬리를 흘렸다.
‘걱정 감사합니다만 잘되었습니다.
제가 잠자리 바뀌면 잠을 잘 못 자요.
통근해 보고 정 어려우면 그때 알아보겠습니다.’
이 말을 밝은 분위기로 하기가 참 힘들었다.
곧이어 시작된 인수인계
분가 좌절로 인한 절망감은 금세 사라졌다.
예산편성 및 결산, 계약
그리고 민원접수와 서무…
인수인계 시에는 예산과 계약이 걱정되었지만
진짜 난관은 서무였다.
업무분장에 없는 모든 업무가 내 일이란 뜻임을
하루 만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공무원 합격에 내 삶에서 처음으로 본
행복해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말이다.
이 상황을 불행이라 여긴다면 더 큰 재앙이 찾아올 것 같았다.
4일을 버티고 금요일에는 2시간 조퇴와 토요일 연가를 내고 집에 왔다.
(주 5일 근무제는 2005년 7월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토요일은 근무일이었다.)
‘한 주간 고생 많았어.
회사에서 절대 남 탓하지 말고
항상 선한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로
업무를 하면 어떤 난관도 비켜갈 거다.’
‘엄마는 종교인이 되었으면 엄청 위인이 되었을 거야.
모든 게 긍정적이니 말이야.’
내 말투에는 짜증이 약 80% 담겨있었다.
‘다행으로 알아 이 것아.
내가 긍정적이니까 너희들 곁에 있는 거야.’
‘그래, 난 그게 엄마에게 가장 미안해.
그런데 엄마, 이제 그렇게 하지 마.
우린 다 컸어.
엄마가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애인이 생긴다고 해도 난 엄마 편이야.’
‘말이라도 고맙다.
너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내 삶에
책임지고 사는 모습을 남겨주고 싶구나.
어서 식사해라.’
‘그려, 우리 어머니 대단하셔.
나도 뭐... 이제 생활비를 보탤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
긍정적으로 해볼게.’
그렇게 입사 후 2달이 지나고
내게 지옥행 초대권이 발급되었다.
기관장이 바뀌고 관사 입주권이 주어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