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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연아빠 Jun 11. 2023

미완성의 분가를 시작하다

한 번은 지옥에 있어보고 싶었다.

‘관사 못 들어가게 된 거니?

엄마 친구(목사)가 그러더라.

사람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이야.

더 좋은 일이 분명히 있을 거야.’


합격통지를 받고 본청에 인사를 갔을 때

내가 입주 가능한 13평형 관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분가를 바라던 내게 공무원 합격으로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했었다.

엄마 친구인 목사, 그분 말에 따라 나는 여전히 천국에 있었다.


첫 출근 일에 선임과 면담을 통해 관사 입주가 불가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관사는 직급이 높은 순서로 배정되었다.

방은 있었지만 9급 신규 공무원에게 배정될 방은 없었다.


‘가능하면 금 주 중에 회사 근처에 집을 알아보세요.

곧 결산에 예산 편성에 바빠질 테니

매일 대전까지 버스로 출퇴근하는 것은…’


내게 입주 가능한 관사가 있다고 이야기한

선임은 말 꼬리를 흘렸다.


‘걱정 감사합니다만 잘되었습니다.

제가 잠자리 바뀌면 잠을 잘 못 자요.

통근해 보고 정 어려우면 그때 알아보겠습니다.’

이 말을 밝은 분위기로 하기가 참 힘들었다.


곧이어 시작된 인수인계

분가 좌절로 인한 절망감은 금세 사라졌다.

예산편성 및 결산, 계약

그리고 민원접수와 서무…

인수인계 시에는 예산과 계약이 걱정되었지만

진짜 난관은 서무였다.

업무분장에 없는 모든 업무가 내 일이란 뜻임을

하루 만에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현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자 했다.

공무원 합격에 내 삶에서 처음으로 본

행복해하시던 어머니 모습을 떠올리며 말이다.   

이 상황을 불행이라 여긴다면 더 큰 재앙이 찾아올 것 같았다.


4일을 버티고 금요일에는 2시간 조퇴와 토요일 연가를 내고 집에 왔다.

(주 5일 근무제는 2005년 7월부터 시작되었고 당시 토요일은 근무일이었다.)

 

‘한 주간 고생 많았어.

회사에서 절대 남 탓하지 말고

항상 선한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로

업무를 하면 어떤 난관도 비켜갈 거다.’


‘엄마는 종교인이 되었으면 엄청 위인이 되었을 거야.

모든 게 긍정적이니 말이야.’

내 말투에는 짜증이 약 80% 담겨있었다.


‘다행으로 알아 이 것아.

내가 긍정적이니까 너희들 곁에 있는 거야.’


‘그래, 난 그게 엄마에게 가장 미안해.

그런데 엄마, 이제 그렇게 하지 마.

우린 다 컸어.

엄마가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하거나

애인이 생긴다고 해도 난 엄마 편이야.’


‘말이라도 고맙다.

너에게 물려줄 재산은 없어도 내 삶에

책임지고 사는 모습을 남겨주고 싶구나.

어서 식사해라.’


‘그려, 우리 어머니 대단하셔.

나도 뭐... 이제 생활비를 보탤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해.

긍정적으로 해볼게.’


그렇게 입사 후 2달이 지나고

내게 지옥행 초대권이 발급되었다.  

기관장이 바뀌고 관사 입주권이 주어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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