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엄마가 한숨처럼 뱉은 말에 시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함께 저녁을 들던 중이었다. 평소 실내에서 입던 옷 위로 두 겹을 더 걸치고 있던 나와 남편은 참지 못하고 소리 내어 웃었다. 벽을 부순 장본인이 시엄마와 시아빠, 두 분인 탓이다.
작년 11월, 한국에서 미국으로 돌아온 나와 남편은 자연스레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제지받았다. 흔히 미국에서는 실외에서 신던 신발을 신고 집안에 드나들지만, 한국과 마찬가지로 신발을 벗어 버릇하던 시가인지라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선 순간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는 말 그대로 공사판이 펼쳐져 있었다.
카펫이 다 뜯긴 계단
사태를 설명해 준 건 가방 옮기는 걸 도와준 시동생이었다. 집 공사가 시작된 건 나와 남편이 한국에 있던 9월이었다. 본래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마무리하는 걸 목표로 지층 외벽을 부쉈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자재 수급이 늦어지면서 새 벽 세우는 일이 미루어졌다. 일꾼만 고용한 채 자재가 오기까지 마냥 기다리기도 뭐하니 다른 부술 곳도 부순 참이라고 했다.
그 부순 곳이라는 게 하필 위층 외벽이었다. 해서 시가는 벽 네 개가 다 남은 방에 있을 때를 빼면 머리 위에 천장은 있는데 바깥바람이 그대로 들어오는 실내 아닌 실내가 되어있었다. 공사하시는 분들이 두터운 비닐로 나름대로 바람을 막는다고 여기저기 덧대기는 했으나 진짜 벽에 비할 바가 아니라 나와 남편은 한국서 롱 패딩 사온 걸 천만다행으로 여겼다.
벽이 없는 생활은 크리스마스를 훌쩍 넘어 1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2월 들어서는 넓어진 공간에 페인트칠 등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톱밥이며 기존 천정 마무리를 긁어낸 먼지가 오만군데 날아다니고 못이며 깨진 유리, 투박한 나무 조각 따위가 심심찮게 굴러다녀서 방문 바로 앞까지 신발을 신고 다녀야 한다.
천장 칠까지 마친 위층
지금 공사 중인 곳은 운동실과 가족실로 각각 아래층과 위층에서 가장 넓은 공간이라 모든 게 더 오래 걸리는 것 같다. 왕왕 전선을 새로 배치한다고 전기를 내려 두어야 하고, 인부가 부산하게 오가는 과정에서 수도 및 인터넷 선을 건드리거나 해서 물이 새거나 인터넷이 아주 끊어지거나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벽과 천정 칠이 마무리되고 바닥에 카펫이며 고무 등 공간의 용도에 따라 깔리는 것이 코앞에 다가오고 있어서 신이 난다. 다만 이 두 공간이 마무리되고 나면 끝이 아니고 시엄마와 시아빠의 침실과 부엌을 갈아엎을 거라고 하니 앞으로도 집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날 까지는 한참 멀었다.
운동실 바닥 선정을 위한 책자
남편이 지금 시가로 이사 온 건 세 살 때 일이다. 그때부터 단 한 번도 이사 없이 살았다고 하니 시가는 못해도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는 집이 둘로 분리되어 아래층 일부는 세를 줄 수 있도록 되어있는 구조로 되어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화재 사고가 나서 집이 타버린 이웃이 한동안 세 들어 살기도 했고. 그 집 아이들과 이 집 아이들이 또래라 자주 형제처럼 어울렸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는 동안 집은 그 안에 사는 가족처럼 조금씩 조금씩 모습을 달리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필요한 공간이 늘자 집을 둘로 나누던 벽을 허물어 온전한 한 채로 만든 게 시작이었다. 막내가 초등학생이던 즈음에는 벽난로에 멋진 대리석을 두르면서 거실과 부엌, 가족실을 나누던 벽도 허물어 하나의 큰 공간으로 합했다. 벽을 부수는 과정에서 막내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주먹을 써보겠다고 나섰다가 제 손을 잡고 끙끙대는 영상이 남아있는데 귀엽고 웃기다. 벽은 당연히 금도 가지 않았다.
텔레비전과 소파가 놓여있던 아래층의 옛 놀이방은 아이들이 자라는 것에 맞추어 점차 온갖 운동기구가 든 운동실로 변했다. 뒤뜰을 향해 나와있던 발코니 아래로 유리 벽을 둘러 낸 썬룸이 들어섰고 썬룸 안에는 자쿠지가 놓였다. 나중에 안방 창 앞에 새 발코니가 생기면서 자쿠지가 그리 옮겨지고서는 탁구대가 자리를 대신했다. 썬룸에 시멘트를 깐 건 지금은 돌아가신 남편의 외할아버지로 시멘트가 굳기 전에 애들을 불러 손바닥을 찍게 해서 다섯 살 난 남편 손바닥 자국이 오래 남아있었다.
한때 어린 아들 셋이 나누어 썼던 작은 침실은 안방에 딸린 옷방으로 변했다. 안방 화장실에는 작은 사우나와 커다란 욕조가 더해졌다. 큰딸이 쓰던 방은 딸의 독립과 함께 커다란 침대를 들여 손님이 오면 머물 수 있게 내어주는 방이 되었다. 뒤뜰의 숲이 정리되고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설계해 지은 닭장이 섰다. 집안 사업이 커지면서 길 건너에 사업장이 더해졌다. 사업장 구석구석도 온 식구의 의견과 손길이 닿았다.
내가 남편의 집에서 보낸 첫여름, 남편은 집 여기저기를 보여주며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줬다. 키를 잰 흔적이며 갓 바른 시멘트에 찍은 손자국으로 시작해 지금은 사라진 벽에 빨래바구니 타고 계단을 내려가는 놀이로 낸 구멍.......나는 그렇게 들은 이야기와 남편의 어린 시절이 담긴 홈 비디오를 통해 조금씩 집의 옛날 모습을 가늠해보고는 했다. 손때 묻은 집안 곳곳이 이야기와 함께 살피면 더 새롭고 정감 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내가 알던 시가 모습도 옛것이 되어가는 게 아쉽고 재미있다. 시엄마와 시아빠의 계획에 따르면 아예 지붕 구조까지 바꿔가며 실내에 있던 벽과 기둥을 치우기도 할 거라고 하는데, 어디까지 달라질지도 좀 궁금하다. 여섯 아이를 키울 때는 늘 공간이 부족했는데 다 떠날 때가 되니까 집만 커진다면서도 인테리어에 열심인 시엄마를 보고 있으면 더더욱.
바라건대 내년 겨울이 오기 전에는 모든 공사가 끝나면 좋겠다. 벽 없는 크리스마스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