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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Jun 15. 2018

탈출불가, 마카오 골목 탐험

카지노 빼고 마카오 100배 즐기기

카지노의 도시, 럭셔리한 호텔과 리조트, 라스베거스를 잇는 환락의 도시, 마카오.


관광분야에서만큼은 최첨단을 달리고있는 현대적인 이미지의 마카오의 이면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포르투갈 통치하의 '매캐니즈' 문화, 중국의 근현대적 모습이 숨어 있다.

도박 관련 수입이 마카오 GDP의 9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카지노 빼면 시체라고들 하지만, 사실 카지노를 빼고도 여행하기가 너무 좋은 곳이다. 특히, 시간은 넉넉하지 않지만 외국의 분위기, 여행의 느낌을 충분히 즐기고 싶은 여행자들에게 이 도시는 그야말로 안성맞춤이다.




1. 하루로는 아까운 '역사지구', 그 골목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곳, 눈부신 야경과 화려한 스카이라인으로 대표되는 타이파 섬과 달리, 본섬인 마카오 반도는 포르투갈 통치하의 유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카지노나 홍콩에서 놀다가 마카오 반도에는 당일치기 투어 정도로 다녀 가는데, 유럽과 중국의 모습을 한번에 담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의 이 곳에, 겨우 하루만 할애한다는건 안타깝기 그지 없는 일이다.


유럽에 왔나 잠시 착각할 수 있는 Macau heritage, China ⓒ제석천


'마카오 문화유산'의 대표 이미지인 성 바울 성당 Macau Ruins of St. Paul's Church 이나 마카오 최초의 성당인 성 도미니크 성당 Macau St. Dominic’s Church 은 의외로, 보고 나면 실망할 수도 있다. 사진으로 보았던 바로 그 이미지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마카오 역사지구의 진짜배기는 '골목길' 이다.


세나두 광장 근처로는 포르투갈 통치 시절 형성된 유럽식 돌길이 이어져있어, 마치 유럽 소도시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세나두 광장에서 언덕 위 몬테 요새Monte Fort 까지 이어진 포석길은 '외국' 느낌 한껏 만끽하며 쉬엄쉬엄 산책하기 적당하다.


자박자박, 또각또각,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자갈길을 걷는 도로시처럼, 두근두근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서쪽 마녀가 아니라 몬테 요새에 모셔진 성모 마리아님이 계시다.


한밤 중 닫힌 문틈으로, 마리아님 안녕하세요!


포석길을 따라 걸으며 광장을 중심으로 곳곳에 포진한 유적을 구경하다보면, 하루가 짧기만 하다. 언덕까지 빼곡하게 자리잡은 주택가 사이를 걷다보면 작은 식당이나 카페들이 들어서 있어 중간 중간 쉬어가기도 좋다.

몬테 요새에 가까워지면 경사가 가팔라져서 다소 다리가 아프긴 하다.


1980년대에 왔나 잠시 착각할 수 있는 마카오 골목길- Macau, China ⓒ제석천

포석길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골목풍경은 근대 중국식 건물들이다. 도대체 언제 지어진건지 알 수 없는 오래된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화려한 카지노 지구의 풍경이 마치 가상현실처럼 느껴진다.


좁은 땅에 비해 인구가 많고, 그래서 저렇게 허름한 집일지라도 임대료가 매우 비싸다고 한다. 오로지 관광수입에 의존할뿐, 직접 생산 가능한 공산품이 거의 없다보니 새로운 건물을 올리는 것도 쉽지 않은가보다. 습한 기후 때문에 창문 밖에 빼곡히 걸어놓은 빨래들까지 더해져 마치 1980년대쯔음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사는 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을 저 건물들이 여행자에게는 시선을 거둘 수 없는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나의 고향, 나의 집도 여행자의 시선에선 아름다울까. 편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서울의 아파트숲은, 이방인들에게 어떤 감상을 선사하게될까.

사는 사람은 고통, 보는 사람은 낭만... Macau, China ⓒ제석천



2. 하루 세끼로는 모자란 '마카오 골목 음식'


중국의 화려한 음식과 포르투갈 지배하의 역사가 만나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매캐니즈 Macanes 음식'을 만들었다. 그러나 비싸고 고급진, 유명 매캐니즈 레스토랑에 가지 않더라도 중국 본토의 그것과는 다른 마카오만의 음식이 도처에 널려 있다.


대표적인 매캐니즈 음식들, 샹그리아는 덤- Macau, China ⓒ제석천

매캐니즈 레스토랑은 블로그나 여행 앱의 후기를 참고하고 고르면 실패할 확률이 적다. 서양식처럼 너무 느끼하지도, 중국식처럼 너무 자극적이지만도 않아 우리 입맛에 딱이긴 하다. 물론 섬세한 메뉴선택은 필수...

다만, 대부분 고급 레스토랑인 경우가 많아 여행자에겐 한두번이 고작인 호사.


그러나 '골목'에 들어서면, 또 다른 마카오식 맛집들이 즐비하다.


이것은 양식도 아니고 중식도 아녀- Macau, China ⓒ제석천

호텔 근처 골목을 헤매이다, 빵 냄새에 이끌리는대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사람들이 바글바글한 오래된 식당이랄까- 카페랄까- 정의할 수 없는 가게가 하나 나온다.


국수를 시켰는데 사골 국물에 햄이 떡하니-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입맛 당기는 매콤한 소스가 가득- 탕면인지 토마토면인지 알 수 없는 라면같은 국수에 계란 반숙- 이것은 중국식이라고 할 수도 없고 서양식이라고도 할 수 없지만, 아침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들러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 점원들은 아무도 영어를 모르지만 센스가넘쳐 다른 사람들이 먹는 메뉴를 손가락으로 가리켜가며 여행자들의 주문을 받다.

구미 당기는 퓨전 국수를 파는 가게이면서 빵은 또 얼마나 맛있게 구워내는지. 여행 마지막 날은 빵 굽는 창가에 멈춰 서 남은 잔돈 탈탈 털어 친구들과 종류별로 빵을 하나씩 입에 물었다.


그 뿐인가,


큰 골목에서 가지처럼 뻗어나온 샛길에는 군데 군데 노점이 하나씩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침에는 국수와 밥을, 저녁에는 꼬치구이와 술을 팔며 온 골목에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그야말로 '틈새시장'- Macau, China ⓒ제석천

아쉬운 것이라면... 이 도시는 모두 일찍 문을 닫는다는 것뿐... 이랄까. 야경 보겠다며 길을 나설 때만 해도 저쪽 골목 끝에서 맛있는 꼬치구이 냄새가 났었는데, 사진찍고 돌아오며 '맥주 한잔에 꼬치 하나 먹어볼까!' 하니 버얼써 테이블을 치우고 천막을 덮어버렸다.


전날 밤의 한스러운 마음은 아침 노점 완탕면과 닭조림 덮밥으로 달래본다. 양도 수북 수북, 원하는 토핑(?)을 고르고 밥/국수 중 뭘 고를까 한참 고민하다 밥을 선택하니, 맛깔스러운 채소과 함께 즉석에서 볶아준다. 동네 아저씨들 전부가 한그릇씩 먹고 있는 완탕면은, 어제 카페에서처럼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주문한다. 외국인 손님이 방문해준 것이 신기하고 즐거운듯, 영어를 전혀 모르는 할머니 사장님과 점원 아들은 얼굴에 만연한 웃음을 띄운채 손짓발짓 섞어가며 우리의 주문을 돕는다.


역시나 서로 말 한마디 통하지 않아도 틀리지 않게 주문할 수 있는 것도 골목이 주는 신비로움이다.


딘타이펑 못지 않은 이 골목 노점 맛집- Macau, China ⓒ제석천


고급 식당에서 먹은 것보다 맛있는 이런 국물과, 밥을 추가로 시켜서 비벼먹을만큼 중독성있는 이런 소스라니! 최고의 맛집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는 그 말이 정답이다.


절대로, 마카오에서는, 골목을 기웃거려보지 않으면 안된다. 혹시 운명처럼, 내 마음 속 최고의 맛집과 맞닥뜨릴지도 모르니!



3. 눈에 다 담기 모자란 골목, 야경


화려한 타이파 섬들의 리조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비교도 안 되게 단출하지만 비교할 수 없이 멋진, 어두운 밤의 마카오 골목, 야경들.

유럽인듯 중국인듯 유럽같은- Macau, China ⓒ제석천


따각따각, 조금은 조심스럽게 한밤중의 포석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떤 골목은 유럽 같고, 또 어떤 골목은 중국 같고, 또 어떤 골목은 1980년대 서울 같고, 또 어떤 골목은... 또 어떤 골목이 나올까 어떤 야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동네 한바퀴도 금방이다. 리조트 하나가 이 동네 전체만큼 큰 저 타이파 지구에 비하면, 로비에 황금으로 치장한 몇억짜리 차가 전시되어 있는 화려함에 비하자면, 별것 아니어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유럽과 중국, 과거와 현재가 섞이지도 않고 적절히 버무려져 있는 이 풍경을 놓친 여행자에게는 후회만이 있으리...


마카오 유적지구의 번화가는 그리 크지 않아, 한참을 걷고 돌아다녀도 숙소로 돌아오기 어렵지 않다.


숙소로 오는 골목 안 허름한 주류판매점에서 편의점의 반값도 안 되는 가격으로 칭따오를 한 봉지 가득 사가지고 돌아오면,


이처럼 충만한 하루가 또 있겠는가!



마카오 골목길에
Cheers!

                  feat.맥주엔 육포골목 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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