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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석천 Nov 26. 2018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곰손으로 밥 해먹기

파리를 저렴하게 여행하는 백패커를 위한 안내서 (1)

시작은 '돈을 아끼자' 였다.


여담이지만, 나는 파리의 '노동관' 혹은 '일에 대한 태도'를 가장 사랑한다. 프랑스 혁명에서 쟁취한 노동자들의 권리를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노동력과 그 가치를 존중한다.


여행자로써 조금 안타까운건,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노동력이 많이 들어간 제품과 서비스일수록 '비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일정 부분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서 식당의 음식도 매우 비싸다. 원래 파리 물가가 비싸기도 한데, 직접 해먹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비싸다. 한국에서는 가끔 해먹는 것보다 식당 가서 먹는게 싸게 먹힌다 싶을 때도 있었는데, 파리는 전혀 아니다.


루브르도 두세번 가보고 싶고, 오르세도 한번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 이왕 파리에 온 김에 근교도 가보고 싶은데, 물가 높기로 유명한 파리의 식당은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마침 숙소에 주방도 딸려 있겠다, 식당 밥값과 비교하면 아름다우리만치 저렴하고 다양한 식재료들을 십분 활용하여 밥을 해먹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내가 원래 요리를 잘하는건 절대 아니다! 한국에서는 한달에 한끼도 잘 안 해 먹는 똥손...



눈이 즐거운 파리의 외식 생활. 그러나 입과 지갑은 슬프기 그지없었으니... Paris, France ⓒ제석천

프랑스가 미식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실상 입맛 까다롭지 않은 내가 느끼기엔 그저 그랬다. 내가 입이 고급지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죽기 전에 꼭 한번은 가보고싶은 레스토랑이 있다면 하루 한끼 정도는 괜찮겠지만, 삼시 세끼를 식당에서 해결하긴 다소 고역이었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너무 느끼해서... 빵집 만큼은 논외다. 동네 빵집 크로아상도 아주아주 수준급이므로, 평소 빵순이라 자부한다면 빵은 원없이 먹고 와야 한다!



밥 해먹기의 전제 조건이 하나 있다. '외곽에 있는 주방이 딸린 숙소'에 묵어야 한다는 것. 같은 마트 같은 제품일지라도 외곽으로 갈수록 가격이 싸지기 때문이다. 중심지로 이동할때 시간이 조금 걸리는건 아쉽지만 그 대신 한국에서보다도 더 저렴하게, 매일같이, 스테이크를 구워 먹을 수도 있다.


바구니인듯 카트인듯 바구니인 카트를 끌고 총천연 컬러푸드가 가득한 마트에서 장을 보자 Paris, France ⓒ제석천

외곽 베드타운의 아파트로 숙소를 잡았던 덕분에, 근처 대형마트는 꽤나 저렴했다. 특히 목축업이 발달한 프랑스 특성상 질 좋은 소고기를 아주 아주 저렴하게 구매해서 자주 고기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마트에서 숙소까지 장본 걸 옮길 땐 튼튼한 나의 캐리어를 이용했다. 통통통 털털털 거리는 내 캐리어를 온 동네 사람들이 쳐다보는건 좀 부끄러웠지만. TV에서 유명 셰프들이나 사용할만한 유럽식 식재료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장보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과였다. 다른 현지인들은 뭘 많이 사나~ 슬쩍 엿보면서, 괜히 따라 사보기도 하고. 셀 수 없이 다양한- 듣도 보도 못한 치즈와 와인을 고르는 재미도 쏠쏠했다.


주말에는 알록달록 유럽식 장이 선다 Paris, France ⓒ제석천

베드타운에 거처를 마련한건 신의 한수였다. 주말 아침이면 형형색색의 과일과 야채를 판매하는 장이 섰다. 확실히 마트에서 본 것들과는 싱싱함이 달랐다. 게다가 어찌나 가지런히 진열을 해놓았는지... 컬러풀한 차양과 과일색들이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다가가 한알을 집어들게 만든다. 주말 장터에서도 예술혼이 불타 오르는 파리다.



지글지글, 커다란 스테이크와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한 야채 볶기 Paris, France ⓒ제석천

좁지만 훌륭한 유럽식 부엌에서 스테이크를 굽고, 우리나라에서 소주 사듯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와인으로 훌륭한 소스도 끓여본다. 영양소 밸런스를 위해 야채도 함께 볶아 접시에 내면 그럴듯한 한 끼 완성이다. 식당에서 먹는 값에 비하면 반값도 안 되는 돈으로 2~3인분을 요리할 수 있다.

파스타 면도 다양하고 소스용 식재료들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어, 파스타 해 먹기도 좋다. 이미 완성된 소스도 아주 다양하게 나와있어서 귀찮을 땐 시판용 소스로 툭툭! 가볍게 볶으면 한 끼 해결이다.


요리 실력이 없어도 재료가 훌륭하니, 결과물도 훌륭! Paris, France ⓒ제석천


여기에 프랑스 본토 맥주나 3~5유로대의 와인을 곁들이면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진짜 프렌치 (가정식) 디너를 즐길 수 있다.

오늘의 여행을 되새김질하며 십여 종류의 치즈를 늘어놓고 남은 와인을 해치우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한국에서 못먹던 와인과 맥주 골라가며 먹다보니... 병 버리는 것도 일일세... Paris, France ⓒ제석천


미식의 나라에서 이게 무슨 짓이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미슐랭 가이드에 나온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한 끼보다, 마트에서 돌돌이 끌고 장 봐서 5유로짜리 와인과 함께 한 한끼가 더 기억에 남는다.


창문 활짝 열고 파리의 밤공기를 함께 마시면서. 윗집과 아랫집에서 솔솔 풍겨오는 남의 집 밥 냄새도 맡으면서.


지금 이 와인을 넘기는 순간 만큼은, 여기에서 평생을 살아갈, 파리지앵인척 하면서.


그렇게 즐겼던 파리 집밥이 단연코 파리 여행 최고의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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