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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캐쳐 May 12. 2021

자소서만 10년째 쓰는 중 4회-가장 어려운 일

부딪히고, 부딪치며 처음으로 학생답게 보낸 학교 생활

지원자가 살아오면서 해결해야했던 가장 어려운 과제는 무엇입니까?

하 이질문.

진짜 어렵다.

질문이 어렵네요.

솔직히 인생이 다 어렵지, 가장 어려운걸 기억하면서 굳이 살겠는가.

매일 갱신되는데 말이다.

하지만 자소서에선 답해야지.

암.


나의 단골 답변 제목은 바로 이거다.

최고의 기회는 달콤한 지옥에서 온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명대사다.

나는 나의 힘든 시절을 달콤한 지옥이라 표현하며 최대한 긍정적인 아이인척한다.





조연출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아, 이래서 학교를 비싼 돈 주고 다니는 것이구나."

장학금을 받지 못하고 다녔던 나는 늘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교를 다니는 것에 불만이었다.


돈을 벌러 가는 것과 돈을 주러 가는 것은

엄연히 다를 수밖에 없음을 

박봉을 받고서야 알 수 있었다.


외주 프로덕션에서 짠내 나는 돈을 벌고 와선

'꼭 공중파 채널 PD가 되겠다'는 아직도 이루지 못한 큰 꿈이 생겼다.


내가 조연출을 하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만 나열했지만, 배운 것도 있고, 좋았던 기억들도 많았다. 

패션에 많이 관심은 있지만 타고난 감각이 없었던 나인데 프로그램 때문에 매주 패션, 헤어 디자이너를 만났고 그때 배운 것들이 참 재미있었다. 


일을 관두고 복학하기 전, 마침 휴학 중인 친구를 만났다.

지금도 제일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그 아이는 우리가 고등학생 때 잡지 에디터가 되기를 꿈꿨고, 

나는 PD가 되기를 꿈꿨다. 성격은 다르지만 당시 정보가 부족해서 흔히 꾸지 않는 꿈을 꾸는 공통점을 안고 친해졌었다. 지금도 우리는 직장 생활 외에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에 열심이고 배울점이 많은 좋은 친구다.

그때 그 친구는 패션잡지 엘르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매거진 대학생 기자단 1기로 활동 중이었다. 그래서 만나면 항상 인테리어가 예쁜 곳에서 만나 다양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주고 수다를 떨곤 했다. 

지금은 없는 <Elle at zine>이라는 엘르 온라인 매거진은 대학생을 대상으로 전국적으로 기자단을 모집했다. 

그때의 나도 패션 프로그램을 맡고 온 지 얼마 안 되어 있어서 관심이 생겼고, 복학하기 전까지 남은 시간엔 당시 친한 친구가 했던 대외 활동을 따라서 신청했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무사통과했고 기자단 활동을 했다.

15일 주기로 열댓 개의 키워드가 주어지는데, 키워드 두어 개를 골라서 기사를 작성해서 개인 홈페이지에 올리면 되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블로그를 개설했고, 비록 파워블로거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까지 잘 이용하고 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패션잡지 에디터로서는 영 소질이 없음과, 

디자인 감각은 꽝이고, 

10년 넘게 운영하는 블로그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많아야 200명을 넘지 않으니 

나라는 사람은 인플루언서가 될 정도의 매력이 있지는 않다는 것을.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몰라도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학교에 돌아와선

1, 2학년 때 흥청망청 노느라 놓쳤던 성적 관리를 하기 시작했고

각종 공모전에도 도전하기 위해 각각의 분야에서 뛰어나진 않더라도

열심히 할 친구들을 모았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자주 해서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만

이를 구체화하여 표현해 낼 그림 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사진을 잘 찍는 친구를 섭외했고, 그 친구는 디자이너 친구를 섭외해왔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평소 책과 영화를 많이 봐서 예술적 조예가 깊은 연영과 동생도 섭외를 했다.

그리고 우리 학과에서 가장 성실한 동기 오빠를 섭외했다.


우리는 자주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만날 때마다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갔다.

(위를 향했어야 했는데...)



첫 광고 공모전 도전은 보기 좋게 실패를 했다.


디자이너 친구는 우리의 형편없는 실력을 보곤 빠른 손절을 했다.

잘 지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은 네 명은 이제 다른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지방 방송국의 시청자 채널에 제출할 다큐멘터리를 하나 만들기로 했다.

네 사람의 아이디어 중 선택된 기획안은 내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내 기획안은 지금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뻔한 기획안이었던 것 같다.

선택된 기획안은 사진을 잘 찍는 아이의 것이었다.

사진만 잘 찍는 줄 알았는데

일상의 불편함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원인을 집요하게 찾아낸 기획안을 보고

그 친구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는 가난한 대학생들이었기 때문에 장비와 우리를 실을 소형차를 하루 동안 렌트했다. 

대여시간부터 반납 시간까지 꽉 채워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촬영했다.

고생해서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까지 끝낸 뒤 작품을 제출했고, 당선 소식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작품이 아닌, 그 아이의 작품.

지금도 그 작품이 왜 '우리'가 아닌 '너 혼자만'의 작품이냐는 것에 논란이 있다.


내 기억엔, 우리와 상의 없이 그 아이의 이름만 올려 제출한 비열한 녀석이다.

그 아이의 기억엔, 우리에게 물었는데 우리 이름을 올리지 말라고 했다고 한다.


스펙 한 줄이 아쉬운 대학생이 그랬을 리가 없지만,

그 이력을 증명서에 적지 않아도 지금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으니 쿨하게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 공모전에 입상하고 난 뒤, 학교 생활은 달라졌냐고?

전혀.

여전히 수강 신청을 하고,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고, 과제를 하고, 틈틈이 자격증을 땄다.

그럼에도 취업의 길은 멀고 멀게만 느껴졌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학과 게시판에

지방 메이저 방송국이 월 120만 원 급여 조건으로 스크립터를 구한다는 인턴 공고가 올라왔다.



나는 냉큼 지원을 했고, 두 번째 휴학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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