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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캐쳐 Jun 09. 2022

일상을 손에 넣지 못한 사람들의 꿈같은 이야기<브로커>

세상에 버려지는 사람들이 없어지길 바라며




POINT 1. 대안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가족 영화를 많이 만든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나 보는 가족 구성원의 형태가 아니다.


막장 드라마에서 볼 법한 족보 구성의 가족들이 등장하거나

#바닷마을다이어리


혹은 남보다 못한 핏줄

#아무도모른다


또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들이 등장해서 동고동락하며

#어느가족


우리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가족의 모습을 그린다.



감독은 영화를 통해


"꼭 피를 나눈 친부모, 친자식 집단만을 온전한 형태의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오만을 거두고, 어느 한쪽이 없거나 모자라더라도 마음을 나누고 책임을 지는 어떤 형태의 집단도 온전한 가족으로 바라보라."

고 말하는 것 같다.




(*아래에서부터 <브로커> 스포일러성 줄거리와 느낀 점이 가득합니다.

영화 관람 후 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브로커>도 위의 영화들과 비슷한 선상에 있다.


이 영화의 시작은 비가 억수같이 오는 아주 추운 날


아기의 엄마, 소영(아이유)이 자신의 아이 '우성'을 한 교회의 베이비 박스 밖에다 버리고



이를 차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잠복 형사 수진은

아이가 얼어 죽을까 봐 베이비 박스 안으로 옮겨주고



수진의 손에 의해 베이비 박스 안에 들어온 아이를

교회에서 일하는 남자와 세탁소를 운영하는 남자가 발견한다.

선량한 사람들인가 했더니,

이들은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기를 입양 절차를 거치지 않고 불법적으로 거래하는 인신매매범이다.


다음날, 아이의 엄마가 갑작스레 교회에 나타나 아이를 찾자


둘은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아이의 엄마를 만나 상황을 설명한다.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 엄마는 아기를 되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이가 좋은 환경의 가정에 잘 팔릴 수 있게끔 그들과 동행한다.















POINT 2. 형편없는 사람들

얼핏 남이 보기엔 가족 같은 모습의 세 사람은


모두 가족에게서 버려졌거나 떠나온 사람들이다.





소영(이지은/아이유)


우성이(아기)의 엄마 수영은 불법 성매매를 하다 임신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책임지지 않고 험한 말을 하며 뺏어가려는 생부를 살인한 범죄자다.

빛나는 별이 되어 멀리 날아가라는 뜻으로 '우성'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지만

몸가짐을 함부로하고, 함부로 새 생명을 갖고, 이를 책임지지 않는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끝내고선, 또 그 아이를 혼자 감당할 수 없어서 길에다 아이를 함부로 버린.

인생의 모든 것에 함부로고 무책임한 여자다.  

모성애가 부족해 아이를 버리고도 미안해하는 구석을 조금도 보이지 않던 이 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상현, 동수와 자신의 아이를 팔기 위해 떠나는 여정에서 조금씩 변한다.

그리고 드디어 우성이를 친자식처럼 잘 대해줄 양부모가 되어 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아기를 보자마자 "수유를 해도 되냐"라 묻느 양어머니가 되고 싶은 여자.


영화는 그 여자가 수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소영의 실루엣을 보여주지만

표정을 자세히 보여주지는 않는데 나는 울컥했다.

아마도 소영이도 속으로 울고 있었을 것 같았다.

아마도 소영은 우성에게 한 번도 모유를 먹여본 적이 없는듯하다.

우성을 저들에게 보내면 다시는 자신이 엄마로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아쉬움과 그전에 그렇게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밀려들었을 것 같다.


"우리가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라고 말하는 그녀의 씁쓸한 말만이 유일하게 책임감 있는 말이었다.





상현(송강호)


자신의 과거 신분을 세탁하듯

동네에서 작은 세탁소를 운영한다.

아마도 과거에 잦은 범죄를 저지르고 결국 감옥에 수감되자

지쳐버린 가족에게서조차 버림받은 듯하다.

버려진 아기를 훔쳐서 돈을 받고 파는 주제에

사람 좋은 척 허허실실 웃으며 '선의'라는 말도 거리낌 없이 입에 올린다.

그러면서도

잠을 자면

자신의 딸과 부인, 셋이서 단란하게 여행을 갔던 예전의 행복했던 날을 꿈에서 만나고는

현실에서 다시 그런 날이 오기를 소망한다.

우성이를 비싼 값에 넘길 수 있게 된 뒤, 다시 본인의 가정을 되찾으려는 기쁜 마음으로 딸을 만나러 나간 날.

그는 딸에게서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 달라는 슬픈 진심을 듣고야 만다.


어디서 그랬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다고."


글로 보면 정말 나쁜 사람인데,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 중 가장 인간적인 말투와 표정과 공감 능력을 보여줘서 영화를 보는 사람과 내적 친밀감을 형성하는 인물이다.


딸에게서 다시 나타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홀로 식당에 남겨져

먼 산을 보며 딸이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모습에 내 가슴이 시큰한 걸 보니

영화를 보는 동안 그와 많이 가까워진 것 같은 게 확실하다.


그러나 영화는 결코 선량한 시민인 척하는 가면을 쓴 범죄자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

또 어디선가 살인을 하고 도망 다니며 자취를 감춘 상현의 마지막 모습도

그저 뉴스의 한 보도로만 알려준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잔인한 진실을 보여주는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동수(강동원)

동수는 어릴 때 보육원 앞에 버려졌다.

우성이처럼.

"꼭 다시 찾으러 올게"라는 엄마의 거짓 편지와 함께.

형편없는 어른들 중 제일 순수한 마음을 가졌다.

통상 40명 중 3명이 겨우 지킨다는 그 편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거나

혹은 자신의 엄마는 그 3명안에 드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간절함을 가진 측은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반복될 때마다 실망감도 늘어났을 것이고

못난 부모를 향한 분노도 증폭됐을 것이다.


아마 교회의 베이비 박스에 담긴 아이들을 볼 때마다, 제일 많이 화나고 슬픈 사람은 동수였을 것이다.

그랬던 그는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의 엄마의 모습과 비슷할 소영과 동행하며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버렸을 이유를 찾고, 아직도 자신을 찾지 못하는 이유를 추측하며 분노를 서서히 녹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행복한 동행자들과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보는 꿈도 조심스레 꿔본다.

마음에 위안을 얻고서 아이만 비싼 값에 팔고 나면 행복해질 것 같다.


아이를 좋은 양부모에게 팔러 나간 날

자신을 팔아버린 소영에 의해 현행범으로 혼자 체포된다.

죄명은 인신매매.


형법


제289조(인신매매)


①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② 추행, 간음, 결혼 또는 영리의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을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④ 국외에 이송할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하거나 매매된 사람을 국외로 이송한 사람도 제3항과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형편없는 사람들에게

맘 편한 행복은 허락되지 않는다.







POINT 3. 태어나줘서 고마워.



사람을 두고 1000만원에서 4000만원까지 액수가 왔다 갔다 한다.

심지어 흥정에 할부까지 어른들의 조악한 저울질성 말 같지도 않은 말도 왔다 갔다 한다.

버려진 아기를 더 좋은 환경으로 비싼 값을 받고 보내주고자 하는 일당들.

드디어 우성이 양부모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들을 만났다.

우성이를 보내기 하루 전날.

그들의 동행이 끝나기 전날.

잠들기 전 소영의 입으로 부끄럽지만 그들이 듣고 싶었던 말을 한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이를 팔기 하루 전에 하는 말 치고 참 안 어울리는 말이다.


그런데 그들도 버려진 어른들이라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해서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태어나줘서 고마워"였던 것 같다.






유튜브에서 여러 평을 보면


고레에다 히로카즈답지 않게 너무 직접적으로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졌다고 아쉽다는 말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정말 잘 만든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버려진 모든 사람들을 향해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을


5번 반복해서 또렷하게 외친 진심이


닿았길 바란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나을 때가 있고


한 번의 행동보다 백 마디 말이 나을 때가 있는데.


후자를 선택한 것 같다.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취재하면서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는데"였고,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팠다고 한다.


아마도 감독은


이 영화를 보고 많은 공감을 했을 세상에 버려진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공들의 저 한마디에 자신의 이름을 대입해 보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소영이 "태어나줘서 고맙다"고 서로를 향해 외친 말은 100번을 되뇌였다고 해도 과하지 않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POINT 4. 관찰자 혹은 우리들


나는 영화를 보기 전까지 수진과 같은 사람이었다.




"버릴 거면 낳지를 말아야지."



어릴 때 이런 스토리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엄마가 너는 엄마가 널 버리면 나중에 찾아올 거냐

고 물으면

"절대 찾아가지 않는다. 엄마가 나를 버렸듯, 나도 버려진 순간부터 엄마를 버리고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정조차 화가 나서 저렇게 말했다.

엄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년"이라고 말을 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 부모에게서 버려진 사람들이 친부모를 향한 분노는 공감이 됐는데 그런 부모를 찾는 노력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도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너무 밉지만 자신을 버린 이유를 듣고 싶었을 것 같다.

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리워했을 것 같다.

그게 참 마음이 아팠다.

버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이해하는 마음.




수진도 아마 나 같은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소영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목적은 인신매매범 사람 브로커들을 현행범으로 체포하는 것이다.

미행을 하던 중 아이의 엄마는 살인범이라는 것까지 알게 되자 더 큰 한탕을 위해 야망을 키운다.

그들을 미행하며 잠복수사하는 동안 그들의 기이한 행동에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때마다 체포 기회를 놓쳐 답답함과 조급함으로 인류애를 잃고 브로커보다 더 브로커 같은 모습으로 변해간다.

수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도청하며 듣는 세 형편없는 사람들의 대화에 묘하게 설득되고 있다.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버리는 사람들의 사연 그리고 마음.

그렇게 그녀가 범죄자를 대하는 방식도 변한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도 변한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버릴 거면 낳지를 말아야지"란 마음은 여전하다.

하지만 전에 이해하지 못했던 버려진 사람들의 애달픈 마음은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껴서

앞으로 세상에 버려지는 사람들이 점점 더 줄어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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