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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림캐쳐 Oct 10. 2020

자소서만 10년째 쓰는 중 3회-경험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 복학왕으로 학교 복귀

지원 분야와 관련하여 특정 영역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경험에 대해 서술하시오.  

나는 수많은 PD 중 '드라마 PD'가 되고 싶었다.

예능은 잘 만들 자신이 없었고,

다큐멘터리는 진짜 현실을 찍는 척하는 것이 싫었다.

사실은 PD의 연출이 들어갈 수밖에 없고, 그것이 PD의 역할인데

진짜인 척하는 것이 거짓말을 싫어하는 어린 나이의 내가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대놓고 '허구'이니까.

사람들에게 "저 거짓말하는 중입니다!"하고 말하면서 허구 세상을 연출한다는 것이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분명, SBS의 예능 프로그램 조연출 모집 공고에 지원했는데 막상 들어가서 맡게 된 프로그램은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케이블 방송의 리얼 버라이어티 패션 프로그램이었다. 

이유는 내가 여자라서 지방 숙박 촬영이 필수인 SBS 프로그램 조연출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 조연출이 구해지기 전까지는 두 프로그램을 함께 도와주며 경험을 쌓으라고.

SBS 프로그램을 맡게 되어 왔다고 자랑하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지금 보면 취업사기인데 나는 돌아가기엔 집도 구했고, 늦어버렸다.

그리고 케이블방송 프로그램 조연출이 된 것 마저도 좋았다.

이렇게 경험을 쌓다 보면 드라마 PD로 가는 길로 연결되는 줄 알았다.



나를 면접 본 PD가 내 사수 PD가 되었다.

사무실을 돌며 인사를 하는데 PD들은 온통 남자였고, 작가들은 온통 여자였다.

작가가 아닌 여자는 나뿐이었다.

그래서 PD 선배들은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여자 후배 AD를 많이 챙겨줬고

작가들은 틈나면 비상구로 불러 훈수를 뒀다.

촬영이 없는 날 치마를 입고 가면 PD가 왜 치마를 입고 오느냐

면접 때 들은 대로 시간 맞춰 퇴근을 했더니

왜 일찍 퇴근을 하냐고.

참 싫었다.

하지만 이때 많이 혼나며 배운 예절 교육 덕분에

이후 어느 회사에 가서도 예의를 갖춘 센스 있는 신입사원으로 예쁨 받았다.


나의 일주일은 매우 바빴다.

매일 아침엔 제일 먼저 출근했다. 내가 출근하기 전까지 편집을 하면서 담배를 태우고

종이컵에 버린 가래 섞인 담배꽁초를 쓰레기통에 비우는 것.

(제일 싫어하는 일이었다)


월요일

주말 동안 지방 촬영을 하고 온 선배들의 테이프를 뜨는 일(컴퓨터로 옮기는 일)

지금은 메모리카드에 담지만 그땐 테이프로 촬영을 해서

테이프 녹화 영상을 컴퓨터 파일로 옮기는 것이 일이었다.

영상이 깨지거나 오디오가 녹음이 안 된 경우를 이때 발견해서 추가 혹은 보충 촬영 여부를 빠르게 판단하는 첫 단계다. 그래서 웬만하면 영상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방송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종종

"목욕탕 욕조에 물이 다 찰 때까지 지켜보는 일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어떤 PD 선배는 자막을 위해 프리뷰를 요청해서 테이프를 뜰 때 영상 속 인물이 말하는 것을 받아 적는 일도 해야 했다.

아침에 테이프를 돌려놓고 내 프로그램 자료 조사를 하고

촬영 구성안을 보며 촬영 장비 및 협찬품 등을 준비.

화요일과 수요일

촬영을 하러 나가는 날 (힘들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요일)

촬영 후, 혼자 사무실에 돌아와 테이프를 뜨고 목요일에 선배가 편집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편집 순서에 맞게 컷 편집해서 분류해놓기

목요일

하루 종일 편집하는 선배 옆에 앉아 편집하는 것 배우기

금요일

다음 주 촬영 회의를 하고 자막, 마스터 편집, 믹싱 등 후반 작업


공식적으로 주 5일이지만 주말에도 자주 나가서 나머지 일을 했다.

열심히 일을 하면 일주일이 금방 가서 사실 뿌듯함을 느낄 시간조차 없었다.

편집실에서 수백 번 반복해서 본 영상이지만 TV 본방송 시간에 내가 촬영한 프로그램이 나오면 꼭 본방사수를 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 이름 세 글자가 엔딩 크레딧에 올라가는 것을 볼 때마다 감격스러웠다.

정작 학교에서 열심히 배운 편집기술을 써보지 못해도 좋았다.

내가 진짜 꿈의 현장에 와있는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일주일 내내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없어도 일을 하기 위한 내 일주일이 소중했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렀고

개편시즌이 되어 내가 맡은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좋아서 확장 편성되었다.

그래서 좀 더 업그레이드된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스탭을 A, B팀으로 나누어 진행했다. 

후배 조연출도 생기고 새로운 PD와 팀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여자 PD에 고향까지 같으니 금방 친해졌다. 그분과 일하며 참 많은 것을 배웠다.

프로그램으로선 잘 된 일이었는데

팀이 나뉘면서 PD 간의 협력이 아닌 경쟁구도가 만들어졌고 나는 중간에서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나는 회식 때마다 불려 다녔다.

어린 여자 조연출이라서.


잊을 수 없는 회식자리가 있다.

다른 팀이 된 사수 PD와 내 사수의 사수 PD가 나를 비롯 20대 여자 작가들만 회식자리에 불렀다.

나는 다음날 촬영 핑계로 빠지려고 했지만 강압적인 분위기로 촬영 준비를 끝내고 늦게 참석했다.

후반 작업을 하며 아는 얼굴들도 있었다.

내가 갔더니 술 몇 잔을 마시고선 노래방에 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노래방을 갔더니 음악 작업을 하며 자주 봤던 20대 중반의 여성분이 섹시한 팝송을 불렀다.

그리고 내 사수의 사수인 PD는 나와 작가들을 향해 음악에 맞는 춤을 추라고 하더니

나이 든 대표를 향해 우리를 밀었다.

나는 화장실을 가는 척 나와 엉엉 울면서 사무실로 돌아가 촬영 장비를 챙기고 집으로 갔다.


예전에 회사 단체회식에서 다른 프로그램 선배 조연출이 내게 여자 PD로 성공하려면 해야 하는

개 짖는 소리보다 못한 소리를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 기분 나쁜 날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내 월급마저

오랫동안 면접 때 협의한 금액이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가 어렵다는 핑계로 자꾸 부족한 금액이 들어왔다.

개편 후 프로그램이 확장이 되면서 분명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여러 가지 안 좋은 일을 겪으며 서울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채워갔다.

결국 내가 처음 부푼 꿈을 안고 간 꿈의 현장에서

안 좋은 기억들로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복학신청을 했다.

그토록 싫어했던 학교인데

왜 학교를 돈 주고 다니는지 알게 된 경험이었다.

그리고 서울에서 방송하고 온 선배로 

서울에서의 쭈글이 사연을 모르는 후배들 사이에선 친해지고 싶은 선배가 되었다.



회사 가장 막내에서 교내 가장 선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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