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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유정 Feb 26. 2021

슬픔공부 6_슬픔을 표현할 때

가장 용맹한 감정

아산에 가면,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길이 있다. 정유재란이 시작된 뒤 이순신은 선조의 출정 명령을 어겨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는다. 그리하여 그가 의금부(종각 부근)에서 출발해 아산에 들렀다가 남원, 구례 등을 거쳐 합천에 이르기까지 걸었던 길, 640여 km를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라고 한다. 그 코스에 있는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최근 복원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 중에서도 아산 구간은 좀 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장군이 백의종군 중 보름을 머물렀으며, 그 기간에 그는 모친의 죽음을 맞는 비통을 겪게 되었다. 먼 길을 가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82세의 노구로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오다가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만다. 어머니의 시신을 안고 통곡했던 장군은 아산의 곡교천 게바위 나루에서 사흘간 머물며 시신을 입관한 뒤, 7~8km 거리의 곡교천 상류인 중방포까지 배로 운구하고, 중방포에서 다시 육로로 본가까지 운구했다 한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그날의 슬픔을 이렇게 기록으로 남겼다.


"가슴이 찢어지게 비통하니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니 비는 거세지고 나는 몹시 지친 데다 남쪽으로 갈 일이 또한 급박하니 울부짖으며 곡을 하였다. 오직 어서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시대 인물로 드높임을 받았던 그가, 그것도 난중일기에 남긴 절절한 마음이다. 단 세 문장에 그의 통한이 느껴져 글을 읽는 시대 저편의 나에게도 슬픔이 물들어 왔다. 한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수집하는 여러 데이터들이 있지만, 나는 그 사람이 경험한 슬픔의 경로와 깊이를 찾아보는 편이다. 어떻게 슬픔의 구간에 닿게 되었으며 어떻게 그 기간을 지났는지를 살핀다. 인물이 가장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나름의 인물 연구 방식이다.


슬픔은 감정들 중에서도 나약함과 무기력함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가장 인간다운 감정이라고도 한다. 역으로 슬퍼해야 할 것에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비인간적이다'라고 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슬픔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그 무엇에도 읽히지 못했던 진짜 마음을 살필 수 있는 부분이 된다. 나는 그것을 '마음 씀의 스펙트럼'이라고 네이밍을 붙여보았다. 쉽게 말해 100의 마음값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100을 충분히 다 쓴다. 그렇다하더라도 [+1~+100]과 [-50~+50]은 경험차가 크게 다르다. 또한 어떤 경우는 100중에 50만 쓰는 경우도 있고 간혹 100의 천정을 뚫고 나간 특별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분노나 증오와 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감정들도 슬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슬픔이 역동성을 가지게 되면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은 더 거칠고 원초적이 된다. 더더욱 대상의 진면목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난중일기의 '일기다움'은 원균에 대한 이순신의 분노와 증오감이 여실히 표현된 부분에 있다고도 한다. '음흉', '흉측', '해괴', '간사' 등 정말 리얼한 감정의 단어들로 원균을 비난했다.) 그래서 세상이 각박해지면 사람들은 슬픔의 에너지로 변화를 꿈꾼다. 더 나은 이상을 그리며, 새로운 예술과 새 시대의 탄생을 잉태하게 된다. 수많은 문화나 성인들의 등장, 문명의 발전이 그래서 이 감정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슬픔에 젖어있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보통 선입견이 있다. 개인주의적이고 주변과 소통을 닫고 다소 독단적일 것이라고까지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슬픔 감정은 기쁨보다 훨씬 보편적인 감정이라고 정의한다. 슬픔을 겪은 사람은 타인의 슬픔에 반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알며, 위로하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적절한 위로를 받은 슬픔은 인생의 실패나 상처를 털고 다시 일어설 원동력이 된다. 그러니 사회 선순환 구조를 생각해본다면 '슬픔을 겪음'은 상호 연대의 인류에게 꼭 필요한 요소라 하겠다.


태어날 때의 울음을 기억할 것
웃음은 울음 뒤에 배우는 것
축하한다 삶의 완성자여
장렬한 사랑의 노동자여
 
-김선우, 고쳐 쓰는 묘비  


시인이 말했듯 태어날 때 우리는 울었다. 울음은 말을 배우기 전에 존재를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가장 거짓 없는 몸 마음이 하나 되는 방법. 그러니 슬퍼해도 좋다.


지금.. 잘 슬퍼하고 있는가.



슬픔공부5.

content : tvN 수요일은 음악프로(2019)  <이소라 레전드 무대>

comment : 소심한 것이 아니라 가장 용감한 사람   


[ 슬픔공부 글 목록]

1. 안 우는 어른이 되다.

2. 인상적인 눈물들

3. 슬픔이와의 대화

4. 정서 문맹에 대하여

5. 슬픔의 메뉴들

6. 슬픔을 표현할 때

7. 슬픔을 위로하는 법

8. 그래서, 무엇이 슬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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