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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ting Dec 17. 2016

일기 쓰기가 어렵다

난 글쓰기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연필보다 샤프를, 샤프보다 펜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였을까?

대학교 수업에 노트보다 노트북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언제부터인지 '적는다'는 행동은 내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받아적거나 정리하는 수단으로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내용을 음미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휘갈겨 쓰는 데에 몰입되곤 했다.

어떨 때는 마치 머리와 손이 자존심을 걸고 스피드 경쟁하는 것 같을 정도로.


그런데 몇주 전 책상 서랍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어릴 때 썼던 일기장들을 발견했다.

삐뚤삐둘한 글씨로 날 것 같은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해놓은 글들을 보았을 때 (비록 당시의 기억은 없지만) 왜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논리적이지 않아도,

설득적이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포용해주고 웃어주고 싶었다.


지금의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나의 생각들이 기특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했다.

내가 제 3자가 되어 하늘로 떠올라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구경하는 기분이었다.


그 자리에서 몇 권의 일기장들을 다 읽어버린 후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가 너무 놀라버렸다.

아무런 외적인 목적 없이 (그것이 회사 일이든, 꿈에 대한 것이든, 관계든, 점심식사 메뉴든) 마지막으로 오롯이 내 생각에만 5분 이상 잠겨본 것이 언제였지?

그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의 머리와 마음은 항상 외부의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하고 대처하느라 고생하고 있었다.


'일기를 써야겠다'


다짐하고 책상 앞에 앉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첫 문장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당연히 나는 수영을 잘할꺼라고 생각하고 바다에 다이빙 했는데 막상 물 속에 들어가니 수영하는 법을 잊어버린것 같은 당황스러움이었다.


시장을 분석하고 새로운 전략을 세워서 실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정리하는 것은 멀티태스킹으로 진행할 수 있을만큼 익숙하면서도 정작 내 생각 하나만을 풀어내는 것이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글쓰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이 내용도 말로 했다면 10분도 안되는 시간에 훨씬 더 풍부하면서도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지금 한 시간 반이 넘게 이 짧은 글과 씨름하고 있다.

그럼에도 글로 남기는 생각은 꽤 오랜시간동안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은은히 그 자리에서 울리고 있을 것이라는 매력이 새롭게 느껴진다.


이제부터 틈틈이 생각을 글로 펼쳐놓는 놀이를 해봐야겠다.

해리포터에서 덤블도어 교수가 기억을 조금씩 꺼내 백업(?)하듯이,

어떨 땐 감정적이고 어떨 땐 뒤죽박죽이고 어떨 땐 논리적이고 어떨 땐 계몽적으로.. 최대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놀아보자.


특별한 주제 없이 긴장감없이 생각을 풀어놓다보면 미래에 쉴틈없는 현실의 긴장감 속에 지친 내가 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틈이 되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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