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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동처녀 Sep 03. 2017

파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파리지앵과의 불꽃같았던 짧은 로맨스(?)


사진 찍어줄까요.

흰 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오른쪽 어깨에 DSLR 카메라를 걸친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태양이 나지막한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넘어가며 세느강에 반짝이는 보석을 흩뿌리는 듯한 8월의 오후 6시였다. 눈부심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무런 경계 없이 내 카메라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찰칵- 찰칵-. 사진 두 장을 찍고 난 뒤 나에게 카메라를 건네며 남자는 물었다. 이 다리 이름이 뭔지 알아요? 모른다고 답하자 그는 '퐁데자르(Pont des arts)', 예술의 다리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었다. 보통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몰려가는 '퐁뇌프'의 뜻은 '새 다리(New Bridge)'라며, 예술의 다리라는 이름이 훨씬 아름다운데 사람들은 그걸 모르고 그저 덧없는 유명세를 좋는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최근 퐁뇌프 다리에 매달던 자물쇠의 무게를 못이긴 철 구조물이 강 위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그래서 다리에 매달린 자물쇠들을 볼 수 없는 거라고 덧붙였다. 8월이 되면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 아래에 해변이 펼쳐진다는 것도 모르겠네요. 역시나 모른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원한다면 함께 내려가서 구경하자고 제안했다.


6개월치 짐을 꾸려 모국을 떠나온 지 한달 째. 나는 내가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하고 있었다. 인생에 큰 변화를 주면서까지 긴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만든 것은 5년 전 1개월간의 터키 여행이 남겨놓은 여운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길 위에 올라,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달리고 유프라테스 강의 야경을 보며 전통주인 라크를 마시던 그 시간들은 20년이라는 나의 짧은 생에 굵은 나이테를 남겼다. 웃고 울고 절망하고 환호했던 그 한 달이 남긴 감정의 깊이를 여행 이후 5년이 지나도록 흉내조차 내지 못했다는 것, 그것이 직장생활 내내 나를 옭아매던 강박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시 그런 시간을 찾겠다며 떠나온 여행에서 나는 너무나도 단조롭게 시간과 돈만 축내고 있었다. 일단 몸이 달랐다. 퇴사 선물로 중증 거북목이라는 병을 받은 나의 몸은 8kg 배낭에 쉽게 무너졌다. 도시에서 도시로 한 번 이동이라도 하고 나면 하루를 꼬박 쉬어야 했다.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우선순위를 세우고 추려내야 했던 예전과 달리 궁금한 것도 없었다. "이제 나는 아무도 없고, 가진 것도 없이, 여행 가방과 책 상자 하나를 들고 별다른 호기심도 없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삶이란 말인가?" 라고 적었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소설 '말테의 수기' 속 말테와 같은 심정이었다. 심지어 나에게는 책 상자도 없었다. 텍스트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을 한껏 흡수하고 오겠다며 책을 챙기지 않았던 당초 포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빈 일기장을 앞에 놓고 나는 책이나 한 권 가져올 걸 후회하며 긴 시간을 처리하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건 남자 - 편의상 그를 A라 칭하겠다 - 는 그런 나에게 신선한 사건이었다. 전날 슈퍼마켓에서 나에게 말을 걸었던 30대 초반의 남자 파리지앵과 대비되며 A는 이유없이 나의 신뢰를 샀다. 그 젊은 남자는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자 자기가 한국 친구가 많아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카카오톡도 한다고 자랑했다. 그는 카카오톡 친구를 맺자며 오늘 저녁 8시면 일이 끝나니, 함께 술을 마시든 야경을 구경하든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가 스마트폰을 열어 자신의 카카오톡 메신저 창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한국인 여성들과의 대화가 가득했다. 주로 그가 보낸 메시지였고, 중간중간 그가 보낸 하트 이모티콘이 보였다. 이 친구들 중에는 나를 보러 파리에 다시 와서 며칠간 우리 집에서 지내다 간 사람도 있어. 친구로 지내다 이렇게 가끔 로맨틱한 사이가 되기도 했단다. 그 말이 유혹의 문구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 야릇한 미소를 짓는 그의 앞에서는 웃어주었지만 나의 기분은 끔찍했다. 그날 저녁과 다음날 아침까지 그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왔고, 나는 그를 차단했다.

파리에 사는 남자들에 대한 첫 이미지가 이렇게 안 좋았던 것과 달리, 흰 백발에 노교수같은 외모의 그는 젠틀한 이미지여서 나를 안심시켰다. 그는 중국의 한 이름난 대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강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고 전 세계의 학교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의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파리지앵들이 2달간 긴 바캉스를 떠나고 타지인들이 파리를 무단 점령하는 8월 중반, 그는 내 도시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A를 따라 퐁데자르 아래로 내려가자 그가 말한 대로 '파리 플라쥬(파리의 해변)'가 눈 앞에 펼쳐졌다. 세느강이 마치 바다라도 된다는 듯 강둑에는 모래사장이 깔려있었다. 중간중간 키가 큰 야자수를 가져다놓고 그 아래에는 파라솔과 선베드를 비치해 놓았는데, 사람들은 그 위에 수영복만 입고 누워 선탠을 하고 있었다. 그 어설픔에 웃음이 났다. 다만 힙합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는 젊은 흑인 무리가 흥을 달구었고, 홍학 튜브로 장식한 바들이 선명한 네온사인으로 여름밤을 밝히면서 점차 해변가의 분위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혼자라면 내려가보지 않았을 그 다리 아래의 예상치 못한 풍경에 나는 속으로 그래, 이게 여행이지 - 하고 환호했다. 4년간 고생해서 모은 돈으로 큰 결심하고 떠나온 여행길에서 누구나 다 찍는 에펠탑이나 노트르담 사진이나 몇장 남기고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쯤 나에게 찾아온 우연이기에 마치 운명처럼 느껴졌다. A와의 운명이 아니라, 이 여행과 나 사이의 운명. 내가 신을 그렇게 대충 믿었는데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며 나보다 보폭이 큰 A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다.


저녁 8시가 넘어가면서 태양이 자취를 감추고, 건물들에 하나 둘 주황색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세느강 너머 아주 작게 보이는 에펠탑의 꼭대기에도 불이 들어왔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에서 뿜어져나오는 빛 같아요, 내가 말하자 그는 매우 귀여운 표현이라며 나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웃더니 잠시 강변에 앉아 경치를 감상하자고 했다.

... 프랑스어를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 하나를 기술로서 습득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돼. 프랑스라는 문화를 통째로 받아들여야만 진짜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말할 수 있어. 파리 플라쥬라는 하나의 현상 안에도 프랑스인에게 굉장히 중요한 바캉스라는 개념이 들어있잖아. 프랑스인들은 공식적으로 두달 간 바캉스를 가지만, 여전히 기간을 더 늘려달라고 많은 국민들이 시위 중이야. 물론 이제는 많은 유럽 국가들이 이렇게 긴 휴가를 가지만, 이 움직임은 프랑스에서 출발했어. 1930년대 좌파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대적인 사회 혁신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이뤄낸 성과였지. 그 전에는 우리도 아시아 국가들처럼 휴가가 굉장히 짧았어. 이제 프랑스인들에게는 여가생활이라는 개념이 정말 중요해. 사랑이나 가족처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지. 무언가를 보고 읽고 생각하는 활동을 이어가는 것에 대해서도 굉장히 큰 의미를 부여해.

이런 문화적인 배경이 있어야 진정한 이해가 가능한 것이 프랑스어야. 그래서 아시아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친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더라. 내가 지금 일하는 중국 대학교는 전국에서 공부를 잘 한다는 수재들이 몰려오는 곳이거든. 근데 다들 대학에 들어오기까지 암기만 해 왔기에 내가 내주는 과제와 시험 방식을 어려워하고 어색해 하는 것이 보여. 바캉스에 대해 자유롭게 서술하라는 시험을 내 봤는데, '시험 범위에 없었는데요'라는 항의를 들었어. 주제를 주고 발표를 시켰더니, 주제에 대해 연구해 온 것을 기반으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암기한 것을 그냥 읊더라고. 추가 질문을 던지자 교실 앞에서 스마트폰을 뒤적이는 학생도 있었어.

그는 한국 학생들도 분위기가 비슷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최상위권 대학교로 여겨지는 학교 중 하나를 졸업했지만, 나의 대학생활 역시 교수님의 모든 말을 그대로 받아적고 그대로 암기했다가 시험지에 풀어놓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까지만 달달 외우는 공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는 수험 기간을 연장하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대학 공부에 크게 실망해서, 성적을 포기했다. 대신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연애나 하면서 이건 세상 공부라고 합리화했다.

선생이 말한 것을 외워서 풀어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 프랑스에서 그런 답안지는 0점이야. 오히려 선생의 논리를 완벽히 깨부수는 답안지가 높은 점수를 받지. 그런데, 중국에서 학생들이 제출하는 답안지들에는 내가 한 말들만 그대로 적혀있어. 예외가 없더라고.

나는 그런 교육 방식이 삶의 태도로까지 연결된다고 생각해. 넌 혹시 술은 마시니? 다행이다. 내가 이번에 중국에서 수업 종강 파티를 열었는데, 남녀를 불문하고 학생들이 아무도 술을 마시려고 하지를 않는 거야. 원래 너희끼리 놀 때도 이렇게 안 마시니, 하고 물으니 그렇대. 심지어 대학생들이 섹스도 안 한대! 인생에서 술과 섹스 두 가지를 빼고 무슨 재미로 살지?

그의 말에 씁쓸하게 웃으며 나는 중국인 학생들이 그렇게 답답한 줄은 몰랐다고, 대학때 교환학생으로 만났던 중국인 친구들은 클럽 죽순이 죽돌이가 많았기에 다들 잘 노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그 친구들은 그래도 좀 낫네, 하고 그는 덧붙였다.



하늘이라는 캔버스에 풀어진 남색 물감이 붉은 기운을 덮어버릴 즈음, 우리는 걸어서 파리 시내로 나가보기로 했다. 파리에 도착한 지 사흘 째. 소문으로만 무성하게 들었던 소매치기와 강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야경 한 번 구경을 못 해본 터였기에 나는 한껏 신이 났다. 세느강변에서 올라와 불꺼진 튈르리 가든 옆을 지나자 환하게 불을 켜고 밤을 반기는 루브르 박물관이 나타났다. 단체 관광버스와 긴 줄이 어설픈 장식처럼 늘어져있는 낮의 루브르와 달랐다. 중앙에 자리잡은 피라미드가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밤의 루브르는 그 앞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도시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잖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비밀 장소는 바로 저 공원이야. 코미디 프랑세즈라는 유서 깊은 희극 공연장 옆에 자리잡고 있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원이란다. 원한다면 내일 공원이 문을 열었을 때 같이 와 볼래?

그는 역시나 원한다면 - 이라는 단서를 달고 나에게 다음날의 여행을 제안했다. 당연히 나는 오케이, 하고 답했고 그와 나는 가로등이 켜진 파리의 밤거리를 걸었다. 오페라 건물을 향해 뻗어있는 대로변에 있는 가게들은 전부 문을 닫은 채 간판만 공허하게 빛나고 있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을 피해 무단횡단을 하며 오페라 가까이 가자 A가 말했다. 아마 여기서 사람들이 탱고를 추고 있을텐데.

A의 말대로 오페라 건물 앞에서는 짙은 목소리의 여가수가 부르는 샹송에 맞추어 커플들이 탱고를 추고 있었다. 빵빵 - 소리를 내며 달리는 차 소리를 덮어버리는 멜랑콜리한 음악은 슬프면서도 사무치게 아름다웠다. 말도 안 되는 풍경에 나는 작게 탄식을 내질렀다. 행복하니.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A는, 네가 행복하다니 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남녀 혹은 동성으로 이뤄진 커플들은 볼을 맞대고 한 손으로는 허리를, 한 손으로는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자세히 봐봐. 남자는 몸을 세우고 여자는 몸을 뒤로 빼서 A자 형태를 만들고 있지. 남자의 움직임보다 여자의 발동작, 허리의 움직임이 훨씬 중요한 춤이 탱고라는 춤이야. 노골적인 동작이 하나도 없는데도 숨막히게 섹시하지.

춤을 추는 사람들의 표정은 즐겁다기보단 진지했다. 잠깐의 쉬는 시간 그들의 얼굴에 떠오른, 과하지 않은 행복감이 나의 마음까지 전달됐다. 너무나도 진부한 표현이지만,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 - 우디 앨런 영화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밤이 내려앉은 오페라 앞에서 펼쳐진 탱고 공연은 그렇게 현실감 없는 풍경이었다.

다음날, 나는 약속 시간보다 20분쯤 일찍 미리 도착해 그 동네를 서성였다. 전날의 믿을 수 없던 그 경험들을 오늘도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가 나를 부지런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A는 조금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가 단골이라는 일식집에서 우리는 라멘과 교자를 시켰는데, 라멘과 교자 맛에는 일가견이 있는 나로서는 형편 없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맛이었다. 면이 붙어서 나온 라멘과, 두꺼운 물만두를 구운 것 같은 텁텁한 교자였다. 그러나 훌륭한 무료 가이드에게 그런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는 터. 나는 내가 밥을 사도 되겠냐고 물었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각각 11유로씩 내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그는 이 가게 근처에서부터 아주 흥미로운 골목들이 펼쳐진다며, '파사지(Passage)' 구경을 하자고 제안했다. 건물 사이에 만들어진 긴 터널같은 공간인 파사지는, 수백년의 전통을 가졌을뿐만 아니라 각 파사지마다 특징이 다르다는 설명이었다. 그의 말대로 어떤 파사지는 오래된 고서점들이 많았고, 어떤 파사지는 화가들의 아틀리에와 오래된 그림을 고치는 공방들이 가득했다. 와인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들이 즐비한 파사지도 있었고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의 파사지는 다양한 향신료와 향초를 파는 가게들이 들어서있었다.


분명 흥미로운 공간들이었지만 문제는 내가 파리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관광객이라는 점이었다. 아직 에펠탑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지 못한, 노트르담 대성당 한 번 들어가보지 않은 내가 작은 가게들이 가득한 골목들에 큰 흥미를 느끼기란 쉽지 않았다. 색다른 경험을 원하면서도 결국 나 역시 그저그런 관광객이구나 - 내가 원하는 파리 역시 남들이 원하던 그 파리구나.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품이 났다.

역시나 피곤해보이는 얼굴이었던 그는, 한 파사지에서 호텔을 발견하더니 원한다면 잠시 쉬었다 갈까? 라고 물었다. 뭐라고? 싫어! 라는 나의 대답에 그는 저 남자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나, 왜 저러지 하고 당황했냐며 웃더니 내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곧이어 차도를 건너는데 그는 이쪽으로 오라며 내 손목을 잡았다. 그렇게 한두 번 손목을 잡더니, 그는 내 어깨에 손을 얹고 이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는 그래도 기겁하지 않아서 좋다. 새로운 문화권을 여행할 때, 그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데 가장 중요한 태도 중 하나가 기겁하지 않는 것이야. 아시아 여자들이 종종, 그런 모습을 많이 보이곤 하는데 사실 파리에선 이렇게 팔을 잡는다거나 어깨에 손을 올리는 정도의 스킨십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친근감의 표시인데 괜히 오버해서 서로 친해질 기회를 놓쳐버리는 사람들이 많아. 나는 한번은 여행 중 베두인족 남자의 집에 머무를 일이 있었는데, 그 남자가 자기 가족들의 집에 나를 데려가던 날 집앞에서 깍지를 끼며 내 손을 잡는거야. 이렇게! 연인들이 하듯이. 소름이 끼쳤지만,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지. 알고보니 외부인이 갑자기 들어오면 가족들이 경계심 때문에 적대적으로 대할 수가 있어서, 자기와 가까운 친구라는 것을 보여주는 제스쳐였더라고.

그의 이 말에, 그리고 그의 나이에 나는 조금씩 불편해져가던 그의 스킨십에 대해 마음을 놓아보기로 했다. 그래, 팔을 잡은 거지 뽀뽀를 하려고 달려든 것이 아니니까. 어깨동무야 친구끼리 할 수 있는 거니까. 우리 할아버지 뻘의 70대 노인과의 신체적 접촉이 처음이라 불편했지만 그의 '새로운 문화 경험'이라는 단어가 나의 불편함을 억눌렀다. 여행을 떠나온 이유 중 하나가 나를 구속하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해방이기도 했기에. 이 불편함이 어쩌면 나에게는 깨버려야 할 하나의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런 스킨십들이 괜찮냐는 그에게 나는 오케이 - 라고 말해주었다.

기나긴 파사지 투어의 끝에 도착한 코미디 프랑세즈 옆 공원은 문이 닫혀있어서 들어가 볼 수 없었다. 365일, 거의 열려있다는 공원이 유독 이날 보수를 위해 하루 문을 닫은 것이었다. 전날과 달리 모든 것이 조금씩 비틀리고 꼬여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역시 느꼈는지 왜 오늘 공사중이냐, 사전에 예고가 된 것이냐며 공원 관계자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그의 표정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찜찜하지만 견뎌보겠다는 마음으로 내 어깨 위에 얹어진 그의 팔의 무게를 감당했지만,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나의 주변을 스치는 사람들의 눈길이었다. 흑인, 백인, 아시아인 할 것 없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서양인 노인과 동양인 젊은 여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눈이 마주쳐도 그들이 눈을 피하지 않아서, 내가 먼저 눈을 피해야 했다. 나 역시 유럽 여행을 다니며 그러한 조합의 남녀를 볼 때마다 무슨 관계일까 생각하며, 속으로 불편했던 기억이 났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한 적 없었지만 아마도 돈과 성적인 관계로 얽혀있을 것이라고 재단하며 도덕적으로 비난했다.

그런 관계 안에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남녀의 구도에서 사회적 비난을 받는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에 가깝다는 점이 나의 불쾌한 기분을 배가시켰다. 갑자기 전 세계에서 몰려든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그들의 시선이라는 폭력에 노출된 나는 점점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때 목 뒤에 A의 손이 느껴졌다. 와, 부드러워라.

그 지점에서 나는 폭발했다. 프랑스에서는 정말로 친구들끼리 이런 스킨십을 한다고요? 남자인 친구들에게도? 이젠 못 믿겠어요. 너무 심하잖아. 아무리 문화권의 차이가 크다고 해도 이건 정말 이해를 못 하겠는데요. 나의 말에 그는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우리가 어제부터 만나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서로 좋은 감정을 교환했으니 이렇게 한 거지. 이건 문화권과는 별개의 문제야.

나는 A에게 그가 말하는 감정의 교환을 나는 느끼지 못했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같고 여행자이기에 친근감에 잘해주는 줄로만 알았지 그런 생각을 하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갑자기 10년은 더 늙은 표정으로, 네가 뭐 남자친구인지 뭔지 때문에 그런 답답한 태도를 보이나본데 - 솔직히 섹스 없이도 할 수 있는 스킨십이 얼마나 많은데 그러냐 - 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당신하고 그런 걸 해요! 나의 항의에 그는 왜 그렇게 당황하냐며 이렇게 말했다.

"Everything is under control!"

이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파리에 오기 전 봤던, '비포 선라이즈'의 여주인공인 배우 줄리 델피가 만든 파리지앵의 삶에 대한 영화 '파리에서의 이틀(Two Days in Paris)'에 나온 대사였기 때문이었다. 줄리 델피가 갑자기 택시 기사와 싸우거나 식당에서 만난 전남친과 싸우며 이 문장을 읊는데, 문장의 뜻과 달리 상황은 전혀 '컨트롤'되지 않아 나를 매우 웃게 했던 그 문장이었다. 이 말을, 직접 듣게 될 줄이야!

그는 저 말을 남기고는 늦어서 집에 가야겠다며, 내게 어색한 표정으로 이별을 고한 뒤 후다닥 사라졌다. 함께 여행한 친구와 이메일 혹은 페이스북 주소 교환도 없이 돌아선 것은 처음이었다. A가 떠나버린 뒤 낯선 버스 정류장에 앉아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난 이틀을 생각했다. 70대 노인이 20대인 나에게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었다. 거의 반백년의 세월 차이가 나는 어린 여성인 나와 이성 간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 무엇보다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그 용기는 어디에서 났을까 생각하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노인이 젊은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는 것에는 사실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도 부인과 25살 차이나는 연상연하 커플이지 않나, 이들에게 나이는 정말 아무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고. 나 역시 이미 성인이기 때문에, 나이가 얼마나 차이나건 그것은 당사자들의 문제일 뿐이었다. 다만 그가 과연 파리나 유럽에 사는 20대 여성들에게도 데이트를 신청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내가 아시아인 여성이어서 쉬울 거라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이것 역시 아시아인 여성인 나의 자격지심일 뿐일까.

신발 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며 혼자 생각에 잠겨있다보니 숙소로 가는 39번 버스가 도착했다. 교통카드를 꺼내다 무심결에 쳐다본 버스 광고판에는 활짝 웃는 여자 승무원이 에펠탑을 가리키는 사진과 함께 이런 문구가 적혀있었다.


"Welcome to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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