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8,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남프랑스에 조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거대한 영지가 있었고, 그 곳에 있는 성같은 집에서 살아왔다. 그녀에게는 네 명의 오빠가 있었다. 막내딸이었던 그녀는 공주처럼 자랐다.
어느 날 그녀의 집에 정원사로 들어온 한 남자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라벤더 밭이 넓게 펼쳐진 평화롭지만 단조로운 시골의 생활에서, 그녀에게 처음으로 찾아온 사랑의 감정이었다. 여자는 열일곱이었고, 남자는 스물 여덟이었다. 그들은 이내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그녀의 부모는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반대는 그들의 감정을 부추겼고, 사랑의 도피 끝에 두 사람은 그녀 부모의 인정을 받아냈다. 부모는 원치 않는 사위를 보는 것보다 사랑하는 막내 딸을 못 보는 것을 더 견디기 어려워했다.
두 사람에게는 초원 위 예쁜 별채가 주어졌고, 그 곳에서 매일같이 사랑을 속삭였다. 남자는 배우지 못했고 교양이 없었지만 그녀에게 헌신적이었다. 적어도, 남자가 그녀의 집에서 일해주던 하녀와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는. 하녀와 또 다른 빠져버린 남자는 그녀를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질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가끔은 물건을 집어던졌다. 어느 날, 그는 하녀와 함께 떠나겠다고 선언했고 감정적으로 그의 노예가 되어버린 여자는 자신이 집에서 나가주겠다고 이야기한다. 하녀와 함께 이 집에서 살라고, 대신 내 곁을 떠나지만 말아달라고.
초원 위 그림같은 집에서 여자를 내쫓고 하녀와 함께 아이까지 낳고 살던 남자는, 아이가 자라자 도시로 - 파리로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하녀와 남자 그리고 그들의 아이가 떠나버린 자리는 깨끗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자의 마음을 찢어놓은 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그 집에 남겨놓았다. 가령 냉장고 안의 먹던 잼, 쓰던 이불, 아이의 장난감과 귀퉁이가 깨진 그릇 같은 것들을.
홀로 남은 여자는 그 집에 다시 들어가서 남자의 흔적을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살기 시작했다. 보송보송한 솜털이 나 있던 그녀의 볼에는 주름살이 생기기 시작했고 세상 모든 것이 깨끗하게 보였던 눈 역시 침침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이들어갔고 냉장고 안에 있는 잼의 유통기한은 10년, 20년 전으로 점차 멀어져갔지만 그녀는 그 모든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작고 아름다웠던 초원 위 집은 근대사 박물관의 수장고처럼 그리 오래되지 않은 옛 물건들로 가득차게 되었다. 그녀는 이제 그 집 한가운데 앉아 옛 생각을 하며 뜨개질을 하는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가 떠나던 날 멈춰버린 시계가 여전히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동안 프로방스의 사계는 수십번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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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다고 - 나는 생각했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실연 박물관에 오니 얼마 전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다. 실연 박물관보다 그녀의 그 작은 집이 더 실연 박물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실연 박물관 내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그녀의 집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실연은 내가 잘 감당하지 못하는 주제 중 하나라서, 실연에 대처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또 다시 옛날의 그 어리던 나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