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준혁 Nov 16. 2023

환자, 718번

꿈에서 마주한 현실에 관한 기록

Photo by Marcelo Leal on Unsplash


해안선 근처 멀지 않은 바다에서 작은 뗏목 하나가 발견되었다. 배라고 하기에는 무척이나 초라한 모습의 부유물 위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중년의 남자가 쓰러진 채 얹혀 있었고, 얼마나 오래 표류했던 것인지 붉게 익은 피부는 여기저기 갈라지고 벗겨져 그간의 고생을 짐작게 했다.


남자는 육지에 도착한 후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다. 외부의 접촉은 엄격하게 통제되었고 의료진의 분주한 움직임과 기자들의 초조한 기다림이 대비되며 일종의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의료진을 대표해 병원장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우리 병원에 도착한 신원미상자 관련하여 보고를 드립니다. 우선 편의상 입원일인 7월 18일, 네, 오늘이죠. 오늘 날짜를 따서 718번 환자라고 부르겠습니다. 718번 환자는 아직 의식불명 상태로 신원 확인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만 타박상과 화상 외에 특별한 외상이 없고 정밀검진 결과도 이상이 없으므로 조만간 의식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어떤 겁니까?”


성격 급한 기자 하나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가 주변 다른 기자들의 눈총을 받았다. 그냥 받아쓰라는 듯이.


“다만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718번 환자의 치아에는 교정기가 부착되어 있었는데요, 일반적으로 교정기에 사용하는 재료와 다른 것 같아서 저희가 조사를 해보니, 좀 이상하지만, 비접촉식 결제 카드에 들어가는 칩과 코일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활용을 한 게 아니라면 굳이 이런 걸 교정기에 사용할 일이 없을텐데요, 자세한 사항은 저희가 관련 기관에 이미 확인 요청을 드린 상태입니다.”


“재활용이요?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하셔야죠. 의사시잖아요.”


아까 그 기자였다. 신용카드에 쓰이는 코일을 하필 교정기로 재활용한다니, 병원장의 상상이 지나친 것 같았다.


무슨 목적으로 이런 재료를 교정기로 사용한 것인지, 정말 치아 교정에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이런 이상한 교정기를 달고 있는 이방인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그 자리의 누구도 답을 내지 못한 채로 추측만 무성한 기자회견이 마무리되었다.




여느 사회면의 이슈들이 그렇듯 그날 이후 가십성의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온라인 기사의 댓글창과 각종 커뮤니티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이런저런 디자인을 강조한 카드를 남발하는 탓에 유행에 민감한 이들이 소품처럼 여겨 발급만 받고 실제 사용하지 않는다거나, 간편 결제 수단으로 인해 실물 카드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거나 하는 이유를 들며 낭비되는 자원이 많음을 지적하는 방구석 전문가들의 평론이 넘쳐났다. 대부분 직관에 의존한 주장일 뿐이었으나 여론의 마중물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자원 재활용의 획기적인 아이디어라는 의견에 이어 우리도 얼른 도입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급진적인 이도 있었던 반면, 인체 유해성 검증은 된 것인지 물으며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다수였다. 718번 환자가 어디서 왔는지,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왜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었는지 등등 수면 아래에 있는 이야기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도 가끔 있었으나 이내 교정기 논란에 묻혀버렸다.


가십에서 논란으로, 논란에서 싸움으로 변질되어 버린 여론이 또 다른 가십을 좇아갈 무렵, 드디어 718번 환자는 의식을 회복하였고 서툴게나마 영어를 사용할 수 있었기에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법무부에서 파견된 조사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그저 ‘어떤 나라’에서 왔다고만 소개한 그는 자국의 혹독한 환경을 피해 무작정 바다로 떠났다가 여기까지 밀려오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혹독한 환경이라는 게 바로 문제의 교정기와 관련이 있었다.


교정기에 관해서는 말하기를 다소 주저하는 눈치였는데, 자세한 사정을 알아야 체류 자격을 심사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그는 결심한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것은 형벌이었다. 나는 어떤 나라에서 범죄자로 낙인 찍혔다. 너무 가혹하다. 그 형벌은.”


억울하다는 듯 자신을 변호하며 이어진 문장들 속에는 ‘말’,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등장했다. 718번 환자는 상대방에 대한 폭언, 반복적인 악성 민원 등 우리나라에서 흔히 ‘갑질’이라고 부르는 사건의 가해자였다.


그가 말한 바에 따르면 어떤 나라에서는 모든 갑질 사건 가해자의 치아에 비접촉식 결제 모듈을 부착하고 해당 결제 모듈을 제외한 모든 결제 수단을 차단한 후 가해자를 석방한다. 현금 결제나 가족과 지인 등의 대리 결제도 엄격히 통제되며, 처벌이 잘 이행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감찰관이 항상 동행한다고도 했다.


가해자는 결제를 하기 위해 치아를 결제 단말기에 가져다대야 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종업원에게 인사를 하는 것 같다고 하여 ‘공손한 교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억울하다. 어떤 나라에는 공무원이 매우 부족하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작은 부탁은 무시한다. 그들에게는 작은 일. 보통 공무원에게 부탁하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는 큰 일. 그래서 나는 부탁을 반복했을 뿐이다. 수치스럽다. 물건을 살 때마다. 이렇게 10년을 살아야 한다. 못한다.”


무례한 사람에게 예절을 강제하는 방법으로 교화를 시도한다는 점이 조사관의 흥미를 끌었으나 그뿐이었다. 정치적인 박해의 피해자가 아니라 스스로 범죄자였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과 범죄의 유형이 마침 우리나라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갑질’인 이상 체류를 허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갑질의 가해자라고 단정짓기에도 모호한 측면이 있어보였다. 추가 조사를 기약하며 조사관은 발걸음을 돌렸다.


언론은 열광했고 사람들은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그럴 줄 알았다느니 하는 시답잖은 선지자들을 지나, 국적을 숨기는 것은 외교 분쟁을 염려한 정부의 눈속임이라는 음모론자들을 넘으면, 조속한 추방을 요구하는 사람들과 인권을 침해하는 야만스러운 장치부터 제거하고 보자는 사람들의 전쟁터가 있었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혼란스러웠다. 우리는 과연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어떻게 합의에 이를 수 있는가.




머리가 아파오던 그때, 문득 정신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 다행스러웠다가 곧 침울한 기분이 들었다. 과연 현실은 꿈 보다 나을까. 여전히 여기저기서 자행되는 약자를 향한 폭력은 시스템을 교묘히 파고들어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어떤 나라의 공손한 교정이든, 병원의 치료와 처방이든,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외면하다 지난 2023년 7월 18일에 선명하게 새겨진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타인의 삶에 무감각해져야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조작된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위정자들은 언제쯤 깨달을 수 있을까. 공감과 배려가 실질적인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설계된 세상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 주저하는 사이에 가해자도 피해자도 환자가 되어 표류하고 있다.




2023년 11월 16일 미디엄에 발행한 원문 링크를 첨부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불편한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