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길성 May 18. 2024

첫돌을 맞는 손자에게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삶의 친구

     오늘은 손자가 세상에 태어나 첫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다. 백일날 손자에게 쓴 이후 두번째 보내는 첫돌 편지다. 하루가 멀다하고 함께 지내는 녀석인데 편지를 쓰려고 하니 조금 어색한 기분이다. 잘못으로 반성문을 쓰는 사람처럼 왠지 못마땅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왜냐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손자이기도 하지만, 손자를 돌봐야 하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안기는 걸 좋아하는 손자를 안고 있을 때가 가장 흐믓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안아주고 나면 허리와 어깨에 통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도야! 

    첫돌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를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을 대신하여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특히, 너 하나만 바라보고 희생해온 엄마 아빠에게 애썼다는 말을 먼저 전하고 싶구나. 그동안 너를 이뻐해준 고마운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이도가 주인공이 되기까지는 우여곡절도 있었다. 믿기지 않는 불운으로 조마조마했던 적이 있고, 열이 내리지 않아 지켜보는 가족들이 애를 태운 적도 있었다. 그런 네게 오늘처럼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첫돌을 맞게 되다니! 할아버지 마음이 몹시 기쁘구나.


    너는 탄생부터 신화 속 주인공처럼 태어났다. 집안에서 아이의 탄생을 학수고대하던 때였지. 탄생 예고편이 로또 복권으로 펼쳐졌는데, 펼쳐진 복권 속에 숨어있던 비밀의 주인공이 바로 너였단다. 할아버지는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당첨 행운을 얻은 사람처럼 기뻐했었지. 네 엄마 임신 소식에 감격하여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지. 아직도 깜짝 파티가 벌어진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구나. 그렇다고 탄생 예고편 너에 대한 서사가 순조로운 해피 엔딩으로 끝난 것은 아니란다.


     임신 265일 내내 뱃속에서 네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거꾸로 섰다 바로 섰다를 반복하고 있었다는구나. 아빠가 평소 잠자는 모습을 뱃속에서 네가 똑같이 흉내내고 있었다는구나. 지금도 잠버릇은 아빠를 닮아 엎드려 자는 버릇이 있지. 네가 세상 밖으로 나오던 오늘까지 너를 기다리던 이들에게 긴장하게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이란다. 너와 엄마의 무사 출생을 모두가 초조하게 기다려야만 했지. 그런 극적인 주인공으로 태어나서일까. 너는 소리에 매우 민감한 편이란다. '째깍째깍' 시계 소리를 유난히 좋아한단다. 


    너를 생각하면 2024년 1월 25일은 잊을 수 없는 날이란다. 네가 태어나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한 날이란다. 원인 불명의 급성 열성 혈관염을 앓았기 때문이었지. 흔치 않은 소아 증상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 가슴을 무척이나 졸였단다. 전문 담당 의사를 찾아 다행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 초기 진단과 나흘 동안의 입원 치료로 완치되어 천만다행이었다. 지금도 너를 보면 발을 만져주고 주물러 주는 것도 그 때를 잊지 못해서란다. 네가 건강을 회복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요즘 너는 아주 건강하게 잘 지내는 모습이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가리키는 놀이에 재미가 들려있지. 소리로 말하면 뭐든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신통방통한 녀석이지. 소리도 잘 지르고 옹알이도 잘하면서 아직 말문은 덜 트였다. 열심히 말공부를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 눈으로 힘들다는 표정만 짓고 있다. 혼자 서긴 하지만 걷는 건 불안하다. 어제 처음 '죔죔' 손 동작을 하기 시작했단다. 할아버지가 시키면 안 하던 녀석이 할머니에겐 어제 처음으로 보여줬다고 자랑을 하더구나.  


     할머니 할아버지는 네가 크는 모습을 보는 재미로 산다. 모든 게 낯설고 신기한 손자의 손가락을 따라다니는 것처럼 솔솔한 재미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이 들어 피곤하고 귀찮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지. 앞으로 네가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 할아버지도 좀 수월해지겠지. 너 혼자 밥 먹고 잠 자고 책도 읽을 때면 훨씬 편해지겠지. 할아버지가 사는 동안은 아무튼 아도가 아프거나 다치지 않고 컸으면 좋겠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손자가 아프거나 다치는 일처럼 속상하여 슬퍼할 일은 없을 테니까.


      너를 언제나 사랑하는 할아버지가. 


작가의 이전글 장미를 좋아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