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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길성 May 25. 2024

할아버지 껌딱지

할아버지 육아 이야기

     첫돌이 지나자 손자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돌이 되기 전에는 무슨 말을 하면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세상 만물을 '어 어'소리와 손가락으로 하나로 표현하던 아이였다. 첫 생일이 지나면서 태도가 급작스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감춰 두었던 신통력으로 다시 태어난 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빛이다. 부쩍 늘어난 옹알이에 호기심으로 가득한 초롱초롱한 눈빛은 신통방통하기만 하다. 불과 며칠 만에 벌어진 기적 같은 일이다. 그런 손자가 할아버지는 참으로 대견스럽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면 으레 겪는 일이긴 하다. 부모는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다. 손자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는 할아버지가 그렇다. 못 찾던 사물을 갑자기 찾아내는 손자에 화들짝 놀라 거짓말처럼 늘어놓게 된다. 아이의 평이한 몸짓이나 행동 하나가 달라져도 호들갑을 떨고 만다. 손주에게만 느낄 수 있는 유별난 감흥이다.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내리사랑에 의한 애틋한 감정이다. 혈육의 끈에 연결된 남다른 애착 때문이다. 할아버지 껌딱지에 콩깍지가 씔 수밖에 없는 이유다. 평상심을 잃고 착각 속에 빠져 살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아이 발육에 좋다는 생각에 짝짜꿍 놀이를 자주 한다. 반복하면 아이가 흥을 내며 잘 따라 하기도 한다. 한데 녀석이 좀처럼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단순한 동작이지만 따라 하기 복잡했는지 흥미를 잃었나 싶었다. 껌딱지 할아버지가 없었던 어느 날이다. 녀석이 할머니 앞에서 혼자 죔 죔 흉내를 내더라는 것이다. 다음 날 할머니에게 피운 재롱을 껌딱지에게 주문했다. 죔 죔 시늉을 내는 녀석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모른다. 애절한 마음에 감격하여 나도 모르게 반가운 눈물이 흘러나왔다.


     손자와 놀이는 지속됐다. 인사하는 법도 알려주고 눈을 맞춰 윙크를 하는 법을 가르쳤다. 녀석은 가르친 스킨십을 따라 흉내를 내는 재미가 붙는 중이다.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한 아이라서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었다. 지나는 사람만 보면 웃으면서 손을 내미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라는 말을 하면 자동으로 손을 들고 웃어주는 손자다. 칭찬에 신이 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귀여운 녀석이 뿌듯하니 고맙다. 아이를 안아 쌓인 피로가 살살 녹는 애간장으로 풀리는 것만 같다.


     손을 벌려 안아 달라는 싸인은 할아버지에게만 하는 신호다. 투수와 포수가 주고받는 싸인처럼 껌딱지와 할아버지가 통하는 싸인이다. 둘 사이에 주고받는 싸인은 최근에 또 바뀌었다. 눈을 마주치면 손을 들어 안으라는 동작이 응석으로 바뀌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을 틈조차 허용되지 않는 생떼로 변한 것이다. 껌딱지 마음대로 아무 싸인이나 수시로 바꿔도 괜찮을 만큼 친밀한 관계가 된 셈이다. 녀석이 할아버지 껌딱지가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이 아닐까.


     껌딱지에게 자발적 포로를 자청한 할아버지다. 무조건 지지해 주는 열성 펜이고 싶었다. 든든하게 안기고 기댈 언덕이길 원했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언덕에서 마음대로 노는 손자를 얼마나 간절하게 그렸는지 모른다. 모처럼 그런 삶이 현실에 펼쳐지고 있다. 삶의 활력소가 다시 찾아온 것이다. 황금기 인생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기쁨이나 즐거움은 꿈처럼 잠시 뿐이다. 벅차고 설렌 기분은 더 쉽게 사그라든다. 껌딱지가 품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면 기억 속으로 금방 사라진다.


     31년 교직생활을 접은 지 8년 째다. 연금생활로 뒷전에 물러앉아 허무한 시간만 축내는 일상이 아니었나 싶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게 주된 일과였다. 테니스와 당구, 여행도 시간 나면 즐겼다. 요리나 경매처럼 생경한 공부를 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늘 삶이 느슨하고 밋밋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변화와 성장에 필요한 긴장과 설렘을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인생 후반전에 지루하고 무료함을 달래는 절호의 계기가 육아가 아니었을까.


      두 딸에게 3명의 손주가 그 주역이다. 할아버지 인생 영화에 활력소가 되고 감동과 보람을 느끼게 해 준 주인공들이다. 손주들 육아에서 정작 많이 배우고 깨달은 행운아가 할아버지다. 새삼 삶의 지혜를 얻고 혜택을 입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신에 가까운 순수한 자아를 대하면서 회한을 느꼈고,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인생을 뉘우치도 했다. 육아와 일로 아픔과 갈등을 겪고 살아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엄혹한 현실의 안타까움과 뼈저린 성찰을 경험하기도 했다.


      육아처럼 힘든 일은 없다. 온갖 희생과 인내로 온전한 아이를 지켜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는데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야 하니 더욱 어려운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고 누구나 힘들어하는 일이니 진짜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이다. 할아버지 육아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성취가 그런 것은 아닐까. 껌딱지와 함께 있는 동안은 성장 놀이에 빠진 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껌딱지와 내리사랑에 흠뻑 빠져 있을 때처럼 내 인생에서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없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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