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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Feb 17. 2018

남의집 취향투자2

취향이 빛나는 밤에

경복궁 역에서 내려 먹자골목을 지나 서촌으로 진입한다. 서촌 특유의 나즈막한 한적함을 음미하며 배회하다가 자연스레 통인시장에 들어선다. 엽전 몇개 들고 기름 떡볶이며, 닭강정, 식혜 등등으로 심심한 입을 달래다 보면 서촌의 끄트머리로 통하는 골목에 마주선다.


그 길로 쭉 오르다 보면 인왕산이 병풍마냥 넓다랗게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 오래된 연립주택들이 툭툭 놓여져 있다. 서촌의 끝자락과 인왕산의 시작점, 그곳에 11채의 옥인연립이 30년째 자리를 잡고 있다.



이곳에서도 인왕산과 가장 가깝게 그리고 높은 곳에 위치한 옥인연립, 그것도 맨꼭대기층에 장인성, 이현주 호스트가 살고 있다. 아니 살기보다 이 동네를 누리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던 이 오래된 연립주택에 부러 터를 잡고 서울 사대문 일대를 내려다 보며 인왕산을 등지는 이 동네를 얻었다. 그리고 70년대에 머물러 있는 집안 내부를 그들의 취향으로 가득히 채웠다. 두 부부은 이를 취향투자라 부른다.



두 부부의 취향투자 이야기를 듣기 위해 5명이 이곳을 찾았다. 먼저 이집의 문을 두드린 여러 낯선 이들 중에 호스트와 취향이 맞는 이들이 함께 했다. 이 집의 마스코트 고양이이자 막내인, 영국이도 이들을 반겼다. 넓은 창으로 쏟아지는 느즈막한 오후의 햇살이 가득한 거실에 생면부지의 이들이 모여 앉아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이 집에 대한 이야기는 몇년전 다음의 스토리볼에서 연재되었고, 이를 통해 두 부부는 많은 팬들이 보유했다. (아쉽게도 스토리볼 서비스가 종료되며 해당 포스팅은 자취를 감추었다 한다) 그때 옥인연립에 관심을 가졌던 분들 중에 남의집으로 참석하신 분도 있었다.



각자의 커리어가 있는 부부가 만들어 가는 공간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이 곳에서 찾기 위해 오신 분도 있었다. 두 개별 객체가 부부라는 연합된 형태로 사는 공간에, 관상용 인테리어가 아닌 생활 밀착형 인테리어가 주는 삶의 표정이 궁금하다는 손님.


두 부부께 남의집 호스트 참석을 부탁드리기 위해 처음 이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였던 점은 멋진 인테리어보다는 각자의 취향이 균형감 있게 공간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였다.


둘 중에 한명의 선호도로 공간이 구성되거나, 육아와 함께 모두의 취향이 깡그리 날라가는 것이 보통의 집이건만 이 집엔 장인성, 이현주 호스트 각자의 취향이 존중받으며 서로의 영역을 지키고 있었다. 이것이 두 부부의 관계를 방증하는걸까? 라는 주제넘는 추측도 곁들여 봤다.



손님들의 수줍은 팬심 고백을 곁들인 자기소개를 마치고 두 호스트의 소개가 이어졌다. 호스트의 소개는 아래 동영상을 통해 직접 육성으로 감상해 보시라~


호스트 소개 영상


호스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집에 대한 궁금증이 배가된다. 이어서 장인성 호스트가 직접 하우스 투어를 진행해 주셨다. 리모델링을 하기 전 옥인연립의 원래 구조부터 설명하며 before&after 로 머릿 속에서 이 집의 설계 도면이 사사삭 그려졌다.



이 집은 유난히 천장이 높다. 덕분에 특유의 공간감을 가질 수 있었고, 이것이 두 부부가 이집을 택했던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 공간을 바꾸고 싶다면 면적이 큰 것부터 건드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장인성 호스트.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구를 몇개 교체할 예산을 모아서 바닥이나 벽면 등을 손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팁을 전해주었다.



인왕산을 바라보는 부엌과 그 옆에 위치한 고양이 공간. 이 집에는 고양이 4마리가 함께 살고 있다. 그들의 취향도 존중하여 고양이 텐트며 붙박이 장 화장실도 만들고 방의 문에는 고양이 전용 출입구도 있다.



안방에는 책이 가득하다. 그 안쪽으로는 히노끼 욕조가 놓여져 있어서 인왕산 자락을 바라보며 노천욕을 즐길 수 있게 해 두었다. 이를 본 손님들은 환호했다. 열광적인 환호를 담느라 정작 히노끼 욕조를 사진에 담지 못했다. 궁금하신 분들께 쏘리, 마음의 눈으로 히노끼 탕을 그려 보시길.



하우스 투어를 이렇게 글과 사진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영상으로 전하는 게 낫겠다 싶어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도 간단하게 편집해 보았다. 이럴꺼면 처음부터 동영상을 보여줄 것이지! 랄 수도 있겠다. 동영상과 더불어 글과 사진으로도 좀더 농밀하게 현장을 전하고 싶은 문지기의 배려라고나 할까?


하우스투어 영상


하우스 투어를 마치고 나니 어느덧 옥인연립에 밤이 찾아왔다. 서울의 야경을 배경 삼아 이현주 호스트가 정성스레 준비한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장인성 호스트께서 배달의 민족 마케팅을 담당하시기에 처음엔 배달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안드렸으나 직접 음식을 만들어서 대접하고 싶다는 이현주 호스트의 바람으로 이렇게 근사한 저녁상이 차려졌다. 해산물 리조또에 연어를 곁들이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손님들이 모두 여성분들이여서 그런지 이현주 호스트가 지닌 특유의 걸크러쉬 매력에 손님들이 더 마음을 열고 본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이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게 하려고 진행자로서 참여한 나는 되도록 뒤로 빠져서 호스트가 직접 손님들과 교감할 수 있게 했다.



그동안 난 식사에 집중해 해물 리조또를 음미했다. 정말 맛있었다! 한 그릇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호스트 몰래 부엌으로 가서 남아있던 리조또 여분을 전부 해치웠다. 호스트가 손님들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한 나의 배려라고 하면 믿어 주시겠지? 나중에 듣기론 '문지기가 잘 먹어서 이뻤다.' 며 이현주 호스트가 날 칭찬했다더라.



배를 든든히 채우고선 장인성 호스트가 준비한 취향투자 스토리를 전했다. 옥인연립에 찾아온 이야기부터 이 공간을 취향으로 채우며 체득한 공간 구성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해 주었다.




각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무언가 해야겠다는 것을 꿈꾸잖아요.
그것을 손쉽게 누릴 수 있게 공간을 꾸미는 거에요



취향을 공간에 반영하고 싶어도 본인의 취향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때문에 우선은 본인이 집에서 하고 싶은 것들부터 정리하고, 그것을 손쉽게 누릴 수 있게 공간을 꾸미는 것이 취향투자의 시작.


취향을 공간에 녹이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 전수 영상


공간을 효율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은 면적이 큰 바닥, 벽, 천장 등 부터 손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부담스럽거나 불가할 경우엔 어찌할까? 장인성 호스트가 이에 대한 치트키(?)도 알려 주었는데 이것은 조명과 음악.


아무것도 안바꾸고 조명만 바꾸어도 공간 분위가가 확연히 달라진다고 한다. 거기에 공간을 채우는 공기같은 음악. 이 두 가지만 본인의 취향으로 손보면 공간은 달라진다.



못생긴 것은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라며 장인성 호스트가 강조한 것은 의외로 간단하면서 어려웠다. 보통 못생긴 물건들은 급해서 집안에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손님을 모시는데 수저랑 접시가 부족해서 급하게 아무거나 구입하게 되는 경우처럼 필요에 의해서 산 물건들은 잘 내버리지도 못한다. 때문에 못생긴 것들은 대부분 자주 쓰이는 물건들이다.


그는 반대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식품은 못생겨도 되고, 자주 쓰는 물건들이 예쁘고 좋은 것들이여야 한다. 필요에 의해서 구입해 두었더라도 이쁘지 않다면 과감히 버리고 예쁜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이야기.



이런 주옥같은 이야기들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서 아래에 올린다. 공간과 취향에 관심있는 지인들이 있다면 널리 공유해 주어 이 땅에 예쁘고 취향이 그득한 집들이 넘쳐나길! 그리고 그들이 모두 남의집 호스트가 되는 아름다운 그림.


집을 예쁘게 만드는 것에 대한 노하우 영상


호스트의 이야기를 마친 후엔 손님들 각자의 공간, 취향 이야기를 한창 나누었다. 할머니가 사용하시던 자개 가구들로 공간을 꾸며서 에어비엔비를 호스트하는 분의 이야기, 후암동 빌라를 구매해 본인의 취향을 담아 공간을 가꾸는 과정에 있는 분의 경험담 등등.


이렇게 호스트와 손님들이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고, 이를 공간에 담는 과정을 응원해 주며 2017년 12월 23일의 밤을 함께 보냈다. 서로의 나이, 하는 일 등은 대화를 이어가는 데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를 살고 있는 각자가 관심있고 빠져 있는 취향에만 오롯이 집중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이버 예약에 남긴 손님의 남의집 후기


"문지기님의 취향은 뭐에요?" 라는 장인성 호스트의 질문에 위스키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굳게 닫혀 있던 그의 보물상자가 열렸다. 그곳엔 각종 독주들이 즐비했다. 히비키와 아르벡을 스트레이트 잔에 각각 따라주며 맛보라는 그에게 한번더 반했다.


히비키가 잔에 담기는 찰나


손님들을 배웅하고 나서 두 호스트분들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남의집을 마치면 으레 호스트들이 어떻게 느끼셨는지 피드백을 받고, 남의집에 참여해 주신 감사의 마음을 전하곤 한다.  


장인성 호스트의 경우 배달의 민족 마케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보니 새로운 사람들과 업무와 무관하게 편한 관계를 맺을 기회가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남의집을 통해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의 새로운 만남이 유쾌하고 좋았다고 한다.


업무적으로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는 위치에 있다보면 편하게 사람을 사귀는 게 쉽지 않다는 건 짐작했다. 한데 그럼에도 그런 분들에게 편하게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싶은 니즈가 유효하다는 것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하기사, 그들도 사람인지라 새로운 관계를 통해 얻어지는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할테지. 이렇게 여타의 이해 관계를 떠나 본인과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고 사귈 수 있다는 것이 남의집 호스트를 하게 되는 동인이 되겠다는 인사이트를 얻었다.


영국아, 또 보자!


글을 맺으며 좀 다른 이야기를 덧해 보자면, 앞에서 한창 취향과 공간 이야기를 전했건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게 느낀 바는 이들의 부부관계였다.


단지 몇시간을 옆에서 지켜본 것으로만 예단하기는 무리지만, 비단 취향뿐만 아니라 각자의 일, 취미, 인간관계 등등을 존중해 주며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받아 부부가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를 '동반성장'이라 표현하고 싶으나 뭔가 정치구호같아서 저어하게 된다. 만 그런 부부관계가 부러웠다.


배우자의 이상형보다는 부부관계의 이상형부터 고민해 보자는 생각을 처음으로 품게 된 이번 남의집은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다. 남의집을 운영하며 접하게 되는 다양한 집, 호스트, 취향의 맛이 생각보다 달다. 이것이 내가 남의집을 이어가는 원동력 중의 하나일게다. 그러니 또 다른 호스트의 집 초인종을 누르러 갈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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