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
볕 따라 길가에 흩어진 낙엽들이 바스락 거리는 오후였다. 한동안 예민함에 좋아하던 커피와 음식들을 잘 먹지 못했던 세원은 이주를 고생하고서야 전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작업 중이던 프로젝트 하나를 끝내고, 멍하니 자리에 앉아 밖을 살피던 세원의 전화가 테이블 위에서 요란스레 울렸다.
“ 응. “
“ 잃어버린 여자 친구 좀 찾으려고. “
“ 그래서 찾았어? “
“ 이제야 목소리 듣네. “
투박한 척 다정한 지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원은 편하게 웃었다. “ 올해까지만 다니고 내년부턴 일 좀 쉬어. “ 오롯이 저를 걱정하는 지훈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원은 의자를 돌려 책상에 쌓인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겠다는 마음은 없었지만 들려오는 말만 들어도 아쉬움에 손가락이 절로 서류로 향했다.
“ 결혼하고도 너 이렇게 살면 나 돌아 버릴 거 같다. “
“ 조금 덜 한 직장으로 옮기는 건? “
“ 찬성. 근데 당장 이직은 말고, 못해도 6개월은 쉬어. “
“ 반년을? “
“ 길다 싶어? 일 할 때는 나날 개념도 없이 살면서. “
“ 말이 또 그렇게 되네. “
“ 대답 해. 그럴거야, 안 그럴거야. “
“ 할게. “
너무나 바쁜 직업이 너무나 괴롭던 최근이였다. 음악이 좋아 감독이 되었는데 좋아하는 일이 업이 되고보니 순간 순간 저주스러운 마음도 몰려오곤 했다. “ 퇴근은 언제 해? “ 지훈의 물음에 세원은 시계를 보며 대답했다.
“ 지금. 서둘러야 할 일은 다 끝내서 지금 가려고. “
“ 착하네. 그럼 집에 가서 쉬고 있어, 퇴근하면서 들깨 버섯탕 사 갈게. 자기 그거 좋아하잖아. 어, 나 들어 가봐야 겠다. 이따 전화할게. “
이따금씩 그런 생각이 든다. 지금처럼 무디고 이기적인 내 상황 앞에서도 오롯이 나를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이 남자의 사랑을 나는 온전히 받아도 되는 건지 싶어서.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안함이 커져버렸는데,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나의 치사한 마음 앞에서도 그는 미안하다는 말 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크게 듣고 있었다.
어떻게 모든 상황에서도 항상 내가 먼저 일 수 있을까. 순간 순간의 감정조차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 툭 하고 모난 말을 내뱉는 내 곁에 어떻게 당신이 우뚝 서 있는 걸까.
어떻게 당신은 나의 모든 걸 받아주고 한아름 안아주는걸까.
어떻게 당신은 하루도 변함없이 요동치는 내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주고 안아주는걸까.
어떻게 당신은 매일 내 옆에서 이다지도 고맙게 따듯하기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