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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ryme Jan 23. 2019

가게를 열어 하루 손님 100명 모아보니

삶의 방식을 찾는 건 본능

앞으로 뭐 해먹고 살지?


나이를 불문하고 사람들이 모이면 결국 이 이야기가 꼭 나온다. 언젠가는 '내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아, 모르겠다"로 끝나는 이야기.


나도 늘 그랬다. 가끔 남들이 조금 놀랄 사고를 쳤으나, 조금 놀라고 말 정도인데다 오래 한다거나 이렇다할 성과를 낸 적이 없다. 그냥 혼자 노는 정도.

이번에는 '전시회'를 열었다. 에코백 전시회. 그것도 런던의 에코백 전시회. 런던에서 사온 에코백 21개에서 런던의 문화, 명소를 소개하는 콘셉트였다.  

@marryme.kam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전시회를 열었다. '어쩌다보니'가 몇 번이나 겹쳐 성사됐지만 멤버 모두 직장인이다보니 어려움도 많았다. 적지만 물건을 팔아본 것도 첫 경험이었다. 공간 디자인, 디스플레이, 진행까지 모두 서툴렀다.

런던의 모던함을 소개했던 벽면 @marryme.kam

하지만 의외로 결과가 좋았다. 전시회 준비에 들어간 비용을 생각하면 '손해'겠지만 감히 장사란 무엇인지, 브랜딩이란 무엇인지, 마케팅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일회성 프로젝트라 각종 비용을 제외하고 홍보, 마케팅, 브랜딩 등 관점에서만!!


전시회 성과  

(첫 번째 미숙함) 관람객 숫자를 정확하게 세지 못했지만 7시간 동안 100명 넘게 방문했다. 전시한 21개 가방별로 마련해뒀던 여분-이라고 해봐야 종류별로 5장 미만-중 꽤 많은 양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갔다. SNS에 전시회 피드백을 남기고 메시지로 에코백에 관심을 보여준 사람은 20명 남짓이었다.


누가 왔을까? : 홍보

방문 경로는 네 가지였다.  ①지나가다가 ②인스타그램 보고 ③브런치 또는 다음에 소개된 글 보고 ④ 전시회 멤버가 지인인 경우.


각각을 분석해보니 흥미로웠다.


①지나가다가: 전시회장 자체는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 인스타그램에서 아주 핫한 카페가 있었다. 이곳을 방문하러 온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전시회에도 왔다.

→상권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랜드마크가 중요하다. 사람들이 오고 싶은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게 단 하나라고 해도 좋은 시작이 된다.

이 카페 덕에 이 골목은 번화가가 아님에도 사람들이 북적인다. @marryme.kam

②인스타그램 보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었다. @madfortotebag 에코백에 미치다라는 뜻. 계정을 만들자마자 28명이 팔로우하긴 했지만 대부분 디지털 마케팅 관련 계정이었다. 전시회 당일까지 팔로워가 40여명에 불과했는데 의외로 인스타그램을 보고 왔다거나 친구가 인스타그램을 보고 알려줬다는 손님이 많았다.

→인스타그램을 보고 온 손님은 대부분 에코백을 좋아해서 일부러 찾아왔다. 인스타그램은 다른 사람의 선호를 알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대신 자신이 팔로우하는 사람이 소개하거나, 본인 스스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해서 알게 되기 때문에 취향이 뚜렷한 경우가 많다.  팔로우가 적어도 캡처해서 공유하는 경우가 많아 팔로우와 결과가 정비례하지 않는 게 특징.


③브런치 또는 다음에 소개된 글 보고: 브런치에 쓴 글이 다음과 모바일다음에 소개됐는데, 이를 보고 온 손님도 꽤 있었다. 에코백을 일부러 검색해볼 정도로 좋아하진 않지만 '런던'과 인연이 있거나 '전시회'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었다.

→좀 더 넓은 범위의 대중을 만나려면 (아직은) 포털사이트를 이길 플랫폼은 없다.

지인이 의리로 사준 에코백 @marryme.kam

④ 전시회 멤버가 지인: 대부분 가방을 구입했다. 지인의 깜찍한 도전을 격려하기 위해서 방문한 것이다. 지인이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에코백을 굳이 사진 않겠지만, 일반 고객과는 목적과 취향이 다르다.

→절대 지인에 의존하면 안된다. 장기적이든 단기적이든. 보험영업도 지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면 첫 한두 달이 지난 후 실적이 안 나온다고 한다. 나와 관계 없는 사람을 '개척'하는 게 중요하다.


누가 어떻게 왔는지 분석하다보니 또 다른 결론을 얻었다. '페이스북의 완패'.


사실 전시회 홍보를 위해 가장 먼저 떠올린 플랫폼이 페이스북이었다. 광고비를 써 다양한 사람에게 전시회를 알리기로 했다.

좋아요 누른 건 다 내 지인이다. 광고 효과 제로. @marryme.kam

에코백과 전시회에 대한 콘텐츠를 만들었다. 20~40대, 패션과 여행에 관심 많은 남녀에게 도달되도록 광고를 설정했다.


하루에 1000원 정도 광고비를 집행했다. 너무 적은 금액을 쓴 게 패착이었을까. 분명 하루에 100명이 넘는 사람에게 도달했다고 하는데 실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좋아요나 댓글 같은 액션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marryme.kam

약 5000원 정도를 써서 851명에게 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게시물 참여 96은 모두 내 지인이 자발적으로 남긴 댓글이나 누른 좋아요였다.


사흘만에 광고를 중단했다. (덕분에 기준 광고 금액에 도달하지 않았고 광고비는 '아직' 청구되지 않았다.) 이제 페이스북은 정말 아무도 안 쓰는 걸까? 아니면 페이스북 광고 알고리즘을 좀 더 공부해야 하는 걸까?


왜 왔을까? : 브랜딩

앞서 말한대로 브런치(포털사이트)를 보고 온 사람과 인스타그램을 보고 온 사람은 이유가 달랐다.


브런치(포털사이트)를 보고 온 사람은 에코백보다는 런던에 관심이 있었다. 브런치 글이 에코백보다 런던을 소개하는데 더 집중했기 때문이다.

런던에 누구나 방문하는 명소에서 사온 에코백 @marryme.kam

"우리 애들이 영국에서 공부를 해서 런던의 에코백이 궁금했어요."

"앞으로 영국에 갈 예정이라 궁금해서 왔어요."


인스타그램은 에코백 이미지 위주로 콘텐츠를 작성했다. 런던보다는 '에코백'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았다. 사고 싶은 에코백을 미리 정해서 온 경우도 있었다. 전시회에 못 오지만 에코백만 따로 살 수 있냐는 문의도 많았다.


전시회라고 생각하고 온 사람과 팝업스토어라고 여긴 사람도 달랐다. 이 경우 지나가다가 들렀거나 미리 알고 왔거나는 상관없었다.


가방을 전시하는 게 주 목적이었기에 각 에코백에 설명을 붙였다. 에코백을 만든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설명했다. 에코백을 만든 서점이 있는 지역을 소개하기도 했다.

런던의 빈티지스러움이 잘 드러나는 쇼디치를 소개했다. @marryme.kam

전시회를 보러 온 사람들은 설명을 꼼꼼하게 읽었다.


사실 에코백 여분이 몇 장 없었기에 팝업스토어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팝업스토어라고 기대한 사람은 물건을 보는데 집중했다. 텍스트로 된 설명은 거의 읽지 않았다.


하지만 텍스트가 쓸모 없는 것은 아니었다. 스토리텔링을 했기 때문이다. 지인 중 한 명의 말이 가슴을 울렸다.


"만약 물건만 떼다 판다고 생각했으면 다른 사람에게 추천 안했을거야. 그런데 에코백을 매개로 런던을 소개하는 콘셉트가 좋았어. 런던을 여행했지만 이런 곳이 있는지 전혀 몰랐거든."


어떤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더라도 스토리텔링을 해야 한다.  내가 왜 이 물건이나 서비스를 고객에게 소개하는지, 이건 당신에게 어떤 좋은 가치를 가져다 줄지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누가 샀을까? : 마케팅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에코백을 사가는 손님을 보면서 많은 걸 배웠다.


가격보다 취향이 중요했다. 전시된 에코백 중 가장 저렴한 에코백은 의외로 안 팔렸다. 대신 가장 비싼 에코백은 제일 먼저 품절됐다. '가격 대비 예쁜' 제품도 잘 안 팔렸다. 잘 팔린 제품은 가격과 전혀 상관 관계가 없었다.

인기 많았던 에코백 3종 @marryme.kam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이 있었다. 에코백 자체는 대중적인 아이템이 아닐 수 있다. "에코백을 돈 주고 사?"라고 반문하는 사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에코백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범위를 좁히면 그 중에서도 인기 있는 제품이 있다. 전시한 에코백 종류가 21개였지만 다수가 좋아하는 에코백이 있었다. 심지어 똑같은 디자인에 색깔만 다른 경우 특정 색깔만 선호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존재했다. 대체 왜 좋아하는지 찾는 게 어려울 뿐.


이 작은 경험을 과연 일반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긴 했다. 심지어 프로도 아닌데 괜히 아는 척 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직접 사람을 모으고,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을 보고, 직접 말을 걸어본 경험에서 나온 생각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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