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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빵 Jul 23. 2020

한문실력이 형편없다

2020년 7월 23일의 기록

다시 임용공부를 하겠다고 달려들어 공부를 한 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었다. 한문을 7년 정도 놓고서 공부하지 않다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이니, 실력은 완전히 리셋되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 코로나로 인해 5월부터 시작된 올해 스터디. 한 여름에도 신나게 달려간다.




첫 스터디모르기에 그저 따라가리     


지금도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처음으로 김형술 교수가 진행하는 스터디에 참여할 때의 기억이다. 대학생 시절 외엔 교수님에게 배운 적이 없었다. 그 후로 4년 동안 임용을 준비하며 임고생들과 스터디를 할 뿐 수업에 들어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임용 준비를 하겠다고 했을 때 운이 좋게도 교수님이 진행하는 스터디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기초부터 하나하나 배운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문을 두드리고 스터디에 참여했었다. 

당연히 김형술 교수도 어느 날 갑자기 참여한 나를 보며 매우 황당했으리라. 그런데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스터디답게 첫 질문은 “몇 학번이예요?”라는 거였다. 그건 최소한의 연결고리를 확인하는 질문이었겠지. 그렇게 참옇나 스터디에서 나는 무작정 모든 걸 곱씹으며 들으려 무진 애를 썼다. 까먹은 한자가 태반이고 한시는 예전에 임용을 공부할 때에도 어렵기만 하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해석이 될 리는 만무했고 그저 교수님이 알려주는 방식대로 10%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은근히 ‘너무 초반부터 고난이도로 공부하다 보면 한문에 대해 재미를 느끼고 임용공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기 전에 제 풀에 지쳐버리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교육학에서 비고츠키는 근접발달영역(ZPD)을 강조하여 말한다. 각 학생마다 잠재적인 능력이 있기 때문에 교사가 그런 잠재적인 영역까지 박차고 나갈 수 있도록 요긴하게 도움을 주면 된다는 것이다. 그때 가장 중요한 건 잠재적인 능력이 과연 어디일까 하는 부분이다. 그 정도가 정확할 경우에 주는 도움은 학생이 한 걸음 더 박차고 나갈 수 있는 디딤돌이 되지만 너무 과도한 목표 설정은 오히려 학생의 능력 자체를 꺾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사의 기대수준은 너무도 높은데, 또는 수업의 수준은 너무도 높은데 자신의 실력이 따라가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흥미를 급속도로 잃어버리고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수업의 수준은 기본조차 되어 있지 않은 나에겐 너무도 어려웠지만 곧 마음을 바꾸고 수업에서 맘껏 유영하기로 했다. 그건 나의 실력을 꾸며대지 말자는 다짐에서 시작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그대로를 노출시키고 인정하며 하나씩이라도 배울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래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으니 남에게 잰 체 할 필요도 없으며, 남들 또한 나에게 잘 할 것이란 기대가 없으니 어설플지라도 그대로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 비고츠키의 ZPD는 학생과 교사의 역학관계를 중시한다. 어떻게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될 것인가?




몰라도 좋다     


그런 마음으로 2년 여 공부를 해왔고 올해에 이르렀다. 작년에 운 좋게도 임용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까지 얻기도 했지만 여전히 나의 실력은 형편 없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여전히 잘 해야 한다, 많이 알아야 한다와 같은 비합리적인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엔 스터디를 하면서 각자 준비해온 발표 내용이 끝나면 교수님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생소한 자료를 던져주며 풀어보라고 하신다. 생소한 문장이고 문제 또한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되지만 이 또한 임용시험의 예행연습이기에 싫진 않다. 10분의 시간 동안 해석을 하고 답까지 쓸 수 있도록 한다. 마치 임용시험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오늘 내준 문제에서 나는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10분간을 헤매야 했다.     


      

饑, 請粟於丕豹勸勿與, 公孫支百里傒請與, 而其說則各不同. 則曰: “更事耳, 不可不與.” 則曰: “夷吾得罪於君, 其百姓何罪?” 夫之言, 雖可猶爲圖後之利者也; 之言, 三代聖人救民之心也. 世知百里傒爲智謀之士, 而不知其用心之可重如此, 百里傒用心可重. -신정하, 『서암집(恕菴集)』 卷之十六 「평사(評史)」         


 

이 내용을 보는데 도무지 풀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크게는 세 부분이 막혀 해석이 되지 않았다. ‘비표권물여(丕豹勸勿與)’와 ‘갱(更)’과 ‘여(與)’를 어떻게 해석할지 몰랐던 것이다. 첫 부분이 해석이 되지 않아 막혔고 ‘여(與)’는 문장의 마지막에 쓰이면 ‘여(歟)’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의문’이나 ‘반어’의 뜻으로 쓰인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상태로 해석하려니 해석이 잘 되지 않았다. ‘갱(更)’의 경우도 흔히 ‘고치다’와 ‘다시’라는 의미로 쓰이기에 두 가지로 모두 해봤지만 그 또한 어색하기만 했던 것이다. 막힌 상태로 시간은 시간대로 보냈고 문제 또한 제대로 풀지 못했다. 

교수님이 낸 문제는 ‘용심지가중여차(用心之可重如此)의 구체적인 내용을 쓰시오’라는 것이었는데, 해석 또한 어설프게 되어 파악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히 ‘백성들을 살려야 한다’라고만 답을 써야 했다. 이것이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고 매우 답답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 장마로 비 오는 날이 계속 되고 있다. 한 여름인데 시원해서 좋다. 하지만 날씨처럼 실력은 오리무중.




한 걸음씩     


그렇다 오늘 나는 완전히 새가 되어야 했다. 그래서 문제를 직면하며 잔뜩 긴장하기만 했지 제대로 받아들이고 풀어볼 순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새로운 문장을 보며 해석해볼 수 있고 그나마 접근이라도 할 수 있는 건 2년 전 아무런 기초도 없던 시기를 당당하게 지나며 스터디를 통해 계속 한문과 함께 하는 재미를 맛보았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해석할 수 있는 기본기라도 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이해조차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실망만 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임용 시험을 여러 번 보며 느낀 그대로 새로운 문장을 접했을 때 컨디션이 좋을 땐 해석이 곧잘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땐 검은 건 그저 잉크가 말라버린 표지 정도로만 보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석이 잘 된다, 못 된다는 차이로 일희일비할 건 아니고,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여기서부터 인정하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진 해석이 잘 안 되어 절망할 때가 태반이지만 한문이 여전히 재밌고 이것저것 공부하고 싶은 게 많으니 말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한문의 늪에 푹 잠기더라도, 재밌으니 이 길로 계속 가보련다.           



▲ 아직 공부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많으니 그걸로 됐다. 하나하나 배우며 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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