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면서 깨달은 것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나이 한 살 더 먹었을 뿐인데 앞자리 숫자가 바뀐 체감이 컸다. 나이로 스스로를 제한하는 생각이나 행동을 싶지 않아 나이를 세지 않은지 몇 년 되었다. 하지만 입학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의 나이를 물어볼 때마다 움찔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고 나이를 공개할 때면 20대 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맨 나중에 답하곤 했다. 사람들의 조금 놀라는 기색을 보는 걸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어서였다. 입학한 지 4년 차인 지금은 이제 아무렇지 않고 당당하게 지내고 있지만.

나이가 바뀌면서 알게 된 좋은 점도 있다. 그걸 깨닫게 되면서 학교생활은 물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바뀌었다. 그것은 바로 "유한함과 한계"를 인지하게 된 것이다. 내게 주어진 시간, 내 몸이 견뎌낼 수 있는 체력, 기억력, 정신적 에너지, 인간관계, 부모님의 시간의 유한함을 인지하게 되었고 한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슈퍼맨처럼 무한한 체력과 에너지, 영원한 삶이 주어지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그 삶에는 선택의 가치가 결여되기 쉬울 것이다. 언제든 무제한으로 고를 수 있는 뷔페 같은 인생. 음식을 다 고를 수 있고 언제든지 리필할 수 있으니 음식 하나하나를 귀하게 여기며 먹지 못하게 된다. 반면, 유한함과 한계는 선택과 집중을 하게 만든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에 나의 자원을 집중하게 만든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무슨 맛을 먹을지 한참을 고르는 아이처럼.

20대 때에는 밤을 새도 다음날 피곤하지 않았고 책도 한번 보면 잘 기억했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인간관계를 넓게 확장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게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뭐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선택을 할 때에 나의 조건 중에 제한요소가 되는 것은 거의 없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조건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른이 될 즈음, 조금씩 체력이 감소하는 것이 느껴졌고 예전보다 체지방이 잘 붙기 시작했다. 기억력도 감소한 것이 느껴졌다. 예전엔 한 번 보아도 외워졌다면 지금은 3번, 4번 반복해 보아야 외워졌다. 시험기간에 전보다 나빠진 신체적 능력을 느끼며 공부할 때 특히 속상했다.

학교에 입학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인간이 갖고 있는 이러한 유한함과 한계는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인정하고 나니, 이를 늦추거나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다. 공부할 때에는 암기를 돕는 툴을 활용하거나 출퇴근 시간에 강의녹음을 들으며 운전하고, 시험기간에 밤새지 않기 위해 공부를 좀 더 일찍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체력 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되어 잠을 더 일찍 자려고 하고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먹는 것도 더 신경 써서 좋은 것만을 먹으려고 한다. 시간적으로, 육체적으로 무리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되니 삶이 더 여유롭고 윤택해졌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 또한 유한함을 알게 되면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밀도 있게 보내려고 하게 되었다. 부모님께 더 많이 표현하고 사랑한다고 말한다. 인간관계에서도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관계확장을 위한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내게 더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다.

유한함과 한계 때문에 오히려 나의 삶은 더 윤택해졌고 더 만족스러워졌다. 내 주위에 나를 소모시키는 것들이 줄어들고 더 소중한 것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리고 더 겸손해졌고 타인에 대한 이해의 범위가 넓어졌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깨달아가는 것이 생기는 것이 신기하다. 앞으로의 삶의 태도가 또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