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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ee Feb 02. 2024

사람은 의지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성인이 되고 나서 과거의 나의 환경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내가 이러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또는 이러한 환경 덕에 하는 생각 말이다. 그때의 환경과 사건들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생각하다 보면 사람은 낱개의 조각들이 모여 형성되는 모자이크 같은 존재이기보다는 어떠한 연속된 흐름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흐르는 강 같은 존재 같다는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크고 작은 물줄기들이 모여 큰 강을 이루고 다시 세세한 줄기로 갈라지기도 하는 강물. 사람이 내리는 선택들과 외부 요소들이 모여 만드는 거대한 흐름을 안고 산다. 한 사람의 인생은 연속적이고 휩쓸리기 쉬우며 멈추기 어려운 강물 같다.



과거로 거슬러 기억을 떠올려보면 나는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왔다. 당시엔 4인가족이 딱 들어가는 작은 자동차였지만 우리 가족은 매 주말마다 나들이를 갔다. 엄마께서는 바깥음식을 먹이기보다는 늘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부모님의 자식교육에 대한 열정은 누구 못지않으셨다. 우리는 충청도의 작은 마을에 살았음에도 부모님은 당신들께서 찾으실 수 있는 정보들을 열심히 찾아주셨고 지원해 주셨다. 단과학원이나 과외선생이 거의 없었던 그 동네에서, 어머니께서는 마침 당시 온라인 교육이 막 태동할 때라 컴퓨터 한 대로 내가 누릴 수 있는 교육의 질을 높여주셨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 우리 가족은 아버지 직장과 다소 멀지만 교육을 위해 'ㅇㅇ면 ㅁㅁ리'에서 'AA시 BB동'으로 이사했다. 그때 나는 더 큰 세상을 처음 경험했고 너무나도 즐겁고 기뻤다. 그 동네에는 아파트 동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 있었으며 아파트 층도 5층이 끝이 아니라 이십몇 층까지 되기도 하였다. 교실의 반은 3반까지가 아니라 8반, 10반이 넘어가기도 하였다. 나는 영어학원도 열심히 다녔고 배우고 싶었던 수영과 통기타도 배웠다. 그때 더 확장된 기회들을 접할 수 있었음에 지금도 나는 부모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그때의 부모님의 결정이 아니었다면 나는 내가 그토록 가고 싶었던, 지금은 나의 모교가 된 과학고등학교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경험은 원하는 대학 진학에 도움을 주었고, 그 후에 내가 접하는 경험과 경력에도 계속 영향을 주었다.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던 어린 나에게 환경은 의지보다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성장해 나가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되었을 때부터는 의지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저녁을 먹고 숙제를 할지,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갈지 결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서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진로를 선택하는 것까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기로 앞에 나는 수없이 놓여졌다. 과거, 열의에 차 있던 고등학교 시절에는 개인의 의지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으며 그 선택과 책임을 모두 내가 져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치열한 경쟁의 분위기 속에서 24시간을 살아가고 노력해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믿을 구석이 나 자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내 의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쉴틈을 주지 않았고 한계로 몰아붙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여러 시도와 그에 따른 결과를 놓고 스스로 반추하는 여유를 가지며 생각을 태도를 바꿔나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절에는 여유를 가지라는 말을 누군가가 내게 진심을 담아 해 주었더라도 나는 분명 사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즈음 나는 여러 경험을 거치며 나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바쳐도 의지대로 되지 않을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많은 것이 선택이었다. 누가 나에게 의무라며 강요하는 것도 없었고,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는 그런 일상이었다. 점심시간에 급식실로 가야 한다는 종이 울리지도 않았고, 수업에 나가지 않아도 아무도 무엇이라 하지 않는 그런 신분.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의지가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환경이 내게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나는 가능한 나를 좋은 환경에 두고 좋은 영향을 받고 싶었다. 예를 들면 동아리를 선택할 때에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내가 만나고 싶고,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들어갔다. 그리고 늘 지방에서 살았던 나는 그 나라의 중심에서 살아보고 싶어 1년간 휴학계를 내고 서울과 미국 워싱턴 D.C. 에서 합숙하면서 교육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에 지원하였다. 환경이 내게 미치는 중요성을 인지하고 나니 선택의 기준이 달라졌고 더 겸손해졌다. 그리고 그런 기회를 잡기 위해 더 적극적인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요즘은 다른 종류의 의지와 환경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의지와 환경'이라는 단어를 보고 20대에는 주로 학업과 직업적 성취에 대한 것을 주로 생각했다면 지금은 삶 전반에 대한 것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매일 저녁 더 가벼운 식사를 하는 것도 의지이고, 헬스장에 나가는 것도 환경조성과 의지가 필요하다. 부모님을 자주 뵐 수 있도록 환경을 구축하거나 의지를 갖는 것도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포함된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나의 의지가 무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의지에는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과거에는 더 큰 성취를 위해 좋은 환경을 찾아다녔다면 지금은 의지를 덜 쓰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또한 환경조성에 포함하게 되었다. 인내심을 불필요하게 시험하거나 의지를 낭비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아껴둔 의지는 중요한 곳에서 발휘하게 된다. 예를 들면 매일 운동을 가기 어려우면 운동클럽에 가입하거나, 소액의 돈을 걸고 하는 챌린지를 하는 것이다. 건강한 식습관을 위해 장을 볼 때에는 라면 같은 가공식품을 아예 집에 들여두지 않기도 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자연식을 미리 주말에 손질해 둬 바쁜 주중에 먹을 수 있게 해 두는 식이다. 그리고 요즘은 의지라는 것은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육체적인 것도 큰 영향을 준다는 생각을 한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 귀가하면 세수조차 하기 싫어지는 것처럼, 전날 늦게 자면 피곤해 다음날 아침식사는 거르고 출근하게 되는 것처럼.



이러한 태도로 지낸다면 예전 같은 폭발적인 의지를 더 이상 내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내가 의지를 불태웠던 시기는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을 위해 집중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였다. 어느 정도로 할 수 있는지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적어도 그 정도의 집중과 노력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잔잔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하기 위한 때를 계속 만들어가고 준비해나가고 있다.



어릴 때의 나는 열정, 의지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건 오만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결과보다 잘 나오지 않을 때 그만큼 나 자신에게 자주, 크게 실망하였다. 환경의 영향과 나의 한계들을 인정하니, 실패하거나 잘못되었더라도 나의 의지로 인해 발생한 부분은 반성하고 그 외의 부분은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고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더 내가 행복할 수 있는 환경에서, 내가 가진 적절한 의지와 노력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나갈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열정과 의지는 사람을 정말 멋지고 빛나게 만들지만 그것이 나중에 자신을 데게 하는 무기가 않도록, 현명하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번 곱씹어본다.



마지막으로, 한계를 인정했을 때 내게 찾아온 축복 중 하나는 오만함을 덜어내고 세상을 좀 더 사랑스럽게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계를 인정하고 오늘 더 겸손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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